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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말이겠지만, 메단은 자카르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자카르타는 인도네시아 수도답게 높은 건물을 쉽게 볼 수 있었다면, 메단은 대도시가 맞나 싶을 정도로 큰 건물은 거의 없었다. 또한 조금만 중심부에서 벗어나면 나무가 즐비하게 서있어 숲속의 도시를 연상케 했다. 일부러 녹지를 조성한 것도 아닌데 나무가 참 많았다.

일단 찬드라 집으로 가서 짐을 놓고 다시 나오기로 했다. 찬드라의 집은 공항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지도 밖에 있었다. 찬드라의 차를 타고 거리를 구경하는데 아직까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긴 메단에 도착한지 불과 1시간밖에 되지 않았으니 주변 환경이 쉽게 적응될 리 없었다.

어색하지만 즐거웠다. 다시 여행자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낯선 도시, 낯선 사람이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찬드라의 집은 혼자 지내기에도 매우 작은 편이었다. 머쓱한 표정으로 미리 나에게 양해를 구했다. 난 살짝 웃음을 지으며, 배낭여행자라 어디든 상관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집에서 잠깐 쉬다가 밖으로 나갔다. 한국에서 메단까지 이동하는데 거의 하루를 허비한 탓에 날은 벌써 저물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난 찬드라를 따라서 그의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잠깐이지만 찬드라 친구들이 있는 노래방에 가서 구경을 했다. 내가 갔던 곳은 규모가 꽤 커서 4~5층짜리 건물 전체가 노래방이었다. 아무튼 노래방에 있는데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 어색하기도 하고, 노래방에서 딱히 할 일이 없어 그냥 노래 부르는 걸 지켜보기만 했다. 신기했던 건 한국 노래를 포함한 다른 나라의 노래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긴, 우리나라 노래방에도 있으니 그리 신기한 건 아닌 것 같다.

이름도 기억 안 날 정도로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노래방에서 나왔다. 이제 완전히 어두워져 거리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다시 차를 타고 한참을 달렸다. 여기가 대체 어딘지 어디로 가는지 난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20여분 달려 어느 식당에 도착했다. 테이블의 반 이상은 야외에 있는 곳으로 일반적인 인도네시아의 식당이었다.


이미 앉아있던 인도네시아 4명과 함께 저녁을 먹게 되었다. 사실 재미있기는 했는데 너무 갑작스럽게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이동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일단 배고프니 저녁부터 시켰다. 이슬람이 강한 인도네시아에서는 돼지고기를 보기가 힘든 까닭에 대부분 닭을 먹는데 이날도 메뉴판에는 치킨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렇게 고민할 거리도 없었지만, 주변 사람에게 물어 확인했다.


인도네시아 스타일이라고 해서 손으로 먹었는데 생각보다 먹기 힘들었다. 밥을 손으로 오밀조밀 모아서 입에 깔끔하게 넣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밥을 제대로 모으지도 못해 거의 손에 붙은 밥알을 먹는 수준이었다. 보다 못한 한 친구는 숟가락을 가져다 사용하라고 했는데 난 오기가 생겨서인지 끝까지 손으로 먹었다.


마실 거리로 생각하고 주문한 건데 흡사 우리나라 팥빙수를 연상케 했다. 얼음에 딸기 시럽이 들었고, 옥수수도 들었다. 이름은 내가 기억하는 게 맞다면 ‘사랑부릉’으로 새집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너무 달아서 다 먹지도 못했다.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으레 물어보는 북한이라든가 삼성이나 엘지와 같은 한국 기업은 이제 익숙한 편인데도 꽤 많은 이야기가 오고갔다. 인도네시아에서 우리나라 기업의 이미지가 무척 좋은 모양이다.

저녁을 먹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이동하면서 심심하다 싶을 때쯤 찬드라와 대화를 나눴는데 중국어를 할 줄 알아서 그런지 한국어에 대한 이해가 무척 빨랐다. 가령 동이 동쪽이라고 말해주면 동대문은 ‘동쪽에 있는 문’이라고 이해할 정도로 한자를 통해 뜻을 유추하는 능력이 대단했다.

근데 생각보다 메단이 크긴 큰가 보다. 차로 30분이나 달려 어느 카페에 도착했다. 카페 분위기는 적당히 시끄러우면서 은은한 조명이 있어 상당히 좋았다. 다만, 아무도 술을 마시는 사람이 없었다.


이미 인도네시아 여행을 할 때 알았지만, 여기에선 밤에 맥주 마시는 일이 그리 흔하지 않다. 우리도 술을 마시기 위해 온 게 아니라 음료수를 마시러 온 거다. 원래는 여행의 첫날이니 맥주로 시작하려 했으나 인도네시아의 대표 맥주 빈땅이 떨어졌다는 이야기에 마지못해 음료수로 바꿨다. 잠시 후 아까 전에 저녁을 같이 먹었던 그 친구들이 도착했다.


음료수는 호리병에 담겨 나왔다. ‘딥 블루 씨’라는 이름답게 푸르스름한 색깔이 참 예뻤다.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무척 맛있다. 달콤했다. 비록 알콜은 아니었지만,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나는 혼자 마셨는데 다른 친구들은 술처럼 조그만 잔에 따라서 마시곤 했다.


그렇게 난 메단에 도착한 날, 처음 만난 인도네시아 사람들과 어울려 수다를 떨었다. 그것도 맥주가 아닌 음료수를 놓고서 말이다. 사진은 K-POP을 좋아한다는 종업원이 찍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