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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가 불편하지 않은 것을 보면 난 역시 아무데서나 잠을 잘 수 있나 보다. 여기가 정글만 아니었으면 아마 노숙자 꼴일 텐데. 천막에서 여러 번 잠에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을 때 일어났다. 밖으로 나가 기지개를 폈다.


게으름뱅이들과는 다르게 벌써부터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커피 한잔을 받아 들고, 계곡 앞으로 갔다. 시계가 없어 몇 시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선 시간이 중요치 않다. 여전히 시간관념은 무시되는 정글 한 가운데 있고, 따뜻한 커피가 내 손에 들려 있다는 점이 더 중요했다. 달달한 커피가 참 맛있다.


하나 둘씩 잠에서 깬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 계곡 앞으로 모여 들었다. 자리에 앉았지만 커피를 마시면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차게 흐르는 물소리가 더 시끄러웠다. 잠시 후 아침 식사였던 토스트를 배달해줬다. 아침을 먹고도 우리는 앉아서 수다를 떨거나 물에 몸을 담그는 것이 전부였다.


이런 여유가 있어서 좋다. 비싼 돈을 들여서 정글 트레킹을 참가했지만, 바쁘게 움직이는 일정이라면 오히려 싫었을 거다.


헨리는 스페인인 에스더와 네덜란드인 닉에게 재미있는 퀴즈를 내겠다며 끈을 가지고 왔다. 두 사람의 양팔에 끈을 묶고 다시 그 둘을 교차시켜 끈을 연결했다. 머리를 써서 빠져나오라는 건데 서로 발을 빼고, 끈을 머리 위로 올려 보아도 그대로였다. 닉과 에스더는 계속해서 허탈한 웃음만 짓고, 도무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아니, 정글은 뭐든지 가능해!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머리를 쓰라고.”

하지만 헨리의 외침에도 끝내 두 사람은 풀지 못했다. 가만, 이것도 내가 어렸을 때 어디선가 봤던 건데. 아무튼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짐을 챙겨 이동했다. 아직 마을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이 근처에 있는 폭포를 몇 군데 돌아봤다.


폭포에 들어가서 사진은 거의 없다. 주로 가까운 곳을 걸어서 이동해 2~3개의 폭포를 보고, 그 앞으로 다가가 마사지도 받는 식이었다. 폭포를 맞으며 웃다보니 정말 친구들과 함께 계곡에 놀러온 기분이 들 정도로 신났다.


우리보다 상류에 자리를 잡고 있던 여행자들은 벌써 하류로 내려갈 준비를 했다. 커다란 튜브를 엮어서 보트를 만들고, 그 위에 사람들이 반쯤 누워있는 자세를 취했다. 어린 아이들도 2명이나 있었는데 가족인 모양이다. 잠시 후 그들은 거친 물살을 헤치고 내려갔다. 태국이나 라오스에서도 뗏목이나 카약을 타고 이런 강을 따라 하류로 내려간 적은 몇 번 있는데도 무척 기대가 됐다.


우리는 앞서 내려간 팀보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헨리는 멋진 다이빙을 보여주겠다며, 돌 위나 반대편 중턱에서 뛰어내렸다. 어제는 힘들었지만, 오늘은 이렇게 하루 종일 물에 몸을 담그며 놀기만 했다.


어느 샌가 다가온 원숭이 무리들. 순식간에 수십 마리의 원숭이가 남은 바나나를 뒤져서 먹고 있었는데 멀리서 구경을 했다. 이 녀석들은 워낙 사나워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도 않았다.


함께 원숭이를 구경하다가 ‘정글 타투’를 하기 시작했다. 돌을 갈아 피부에 바르면 되는 정글식 타투였다.


헨리는 가만히 앉아 보라며 정글 타투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얼굴이 아닌 가슴에 손을 댔다. 그러더니 즉석에서 비키니를 그렸다. 어깨끈까지 섬세하게 비키니를 그리는 모습에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에스더는 돌에다가 열심히 글씨를 썼다. 나한테는 누나뻘인 에스더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여행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스페인에 놀러오면 같이 술을 마시자며 살짝 친해질 뻔도 했지만, 연락처를 주고받지 못하고 헤어졌다. 그날 저녁 비가 너무 많이 온 탓에 뒤풀이에 오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다시 캠핑 장소로 돌아가 물에 몸을 담그며 놀았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누워있기도 하고, 다시 자갈밭 위에서 대화를 했다. 난 처음부터 함께 했던 가이드 뉴와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다른 나라에 몇 번 가본 헨리와 다르게 뉴는 비행기를 한 번도 타 본적이 없다고 했다. 심지어 메단도 에어컨 바람 때문에 너무 추워 싫다나. 헨리처럼 개그나 장난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참 순박해서 괜찮았던 정글인이었다.


점심은 인스턴트 누들, 아마도 미고랭으로 파악되는 것을 먹었다. 딱 한국 라면에 매운맛을 없앤 느낌이었는데 맛은 괜찮았다.


후식으로 또 과일이 나왔다. 사실 별거 아닌데 나름 장식을 해서 그런지 다들 사진도 찍은 다음에 먹었다. 정글에 들어갔지만 먹거리에 있어서는 풍족했다.


근데 뉴와 닉은 과일을 먹고는 어제도 했던 카드 마술을 또 하더라.


아직 우리는 튜브를 타고 내려가지 않았는데 하류에서부터 튜브를 들고 올라오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우리는 쉽게 타고 즐기면 되지만, 이들은 하류에서부터 힘들게 튜브를 짊어지고 와야 했던 것이다. 직업이라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좀 힘들어 보였다.


또 다른 트레킹 멤버들이 튜브를 타고 내려갔다. 우리도 이제 슬슬 튜브를 엮고 내려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때 선크림을 발랐는데 난 왜 이때 없다고 안 발랐는지 모르겠다. 이 튜브를 타고 내려간 직후 온몸이 새빨갛게 타서 엄청난 고통이 찾아왔다. 좀 빌려달라고 해서 바를걸.

우리는 7명이라 튜브 2대로 내려왔다. 그 흔한 구명조끼도 없이 탔다. 가끔 급한 물살도 있긴 하지만, 생각만큼 깊거나 위험한 곳도 없어서 그런가 보다. 라오스에서 카약을 탈 때는 내려오면서 몇 번이나 뒤집어 졌던 것을 생각하면 여긴 상대적으로 참 잔잔한 곳이다. 내 앞에는 닉이 탔는데 아주 신났는지 소리도 지르고, 방수 카메라로 같이 사진도 찍었다. 정말 재밌다!


약 1시간 정도 내려오니 마을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턴 사람을 태울 수 없을 정도로 얕았다. 물론 마을에 도착하기 전에 서로 물을 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단 하루 만에 돌아온 마을인데 정말 반갑게 느껴졌다. 우리는 저녁 뒤풀이에 보자며 각자의 숙소로 헤어졌다.

사실 부킷라왕 정글 트레킹은 꽤 비싸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도 오랑우탄만 보는 하루짜리 투어보다는 정글에서 캠핑도 하고, 계곡에서 휴식도 취할 수 있는 1박 2일 코스가 훨씬 낫다고 본다. 가이드도 정말 괜찮아서 무척 만족스러웠다. 그나저나 선크림 없이 하루 종일 물에 들어가 놀았던 나는 어깨와 등이 다 타서 며칠간 고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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