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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박 14시간을 달려 이른 아침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 도착했다. 버스 안에서 정신없이 졸다가 내렸기 때문에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는데 이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겠고, 어디로 가야 숙소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제는 익숙하게도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삐끼 아저씨들이 우리를 반겼는데 다들 줄을 지어 설득하기 시작했다.


보통 때라면 뿌리치고 갔을 텐데 그냥 공짜라는 말에 택시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계약된 게스트하우스로 보이는 곳에 갔는데 가격은 8달러였고 에어컨도 있었다. 아주 좋아보이지는 않았지만 이정도면 나쁘지 않은 수준이라 생각하고 바로 체크인했다.


좀 쉬고 싶었지만 우리는 씻지도 않은 채 곧바로 중국대사관을 찾아갔다. 오로지 중국 비자를 만들기 위해서 하노이에 빨리 온 만큼 서둘러야 했다. 우리가 있었던 곳은 구 시가지로 엄청나게 복잡한 곳이었다. 수많은 기념품가게와 숙소들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에 여행자의 거리로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었던 곳이다. 길을 걷다가 자전거로 가는 편이 낫겠다 싶어서 자전거를 빌렸다. 원래는 하루에 1달러이지만 2대를 빌려 2만 5천동으로 깎았다. 정말 이럴 때는 짠돌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지도를 보면서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섰는데 워낙 차도 많고 오토바이도 많아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잃어 버렸다. 그래서 직접 물어보며 찾아다녔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대사관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하노이에 처음 왔기 때문에 아직 길이 익숙치 않았던 것이었다. 

중국 대사관에 도착해서 비자신청양식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중국 비자는 30달러였는데 급행(하루 뒤 발급)은 50달러였고, 초급행(당일)은 70달러였다. 급행으로 비자를 신청하고 작성하는데 잘 모르는 부분이 있어 옆에 있던 여자분에게 물어보았다. 아마도 내 나이 또래가 아닌가 싶은데 굉장히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자신의 직업은 인터프리터로 중국을 자주 오가고 있다고 했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무척 반가워하며 이것 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한국 드라마를 자주 보았다며 "오빠 사랑해"라는 대사에서 오빠는 무슨 뜻인지 물어보길래 알려주니까 한국말로 "오빠 사랑해" 되새기며 연습하기도 했다. 

나도 이에 질새라 궁금했던 베트남어도 물어보기도 하며 비자 신청서를 내기 전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베트남 여성치고는 세련되어 보였고, 한국에 대해 굉장히 우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중국에서 한국 여성을 자주 보았는데 다들 너무 예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비자를 발급 신청서를 내고 헤어지게 되었는데 이때 좀 더 친해지자고 할걸 그랬다. 연락처도 주고 받지 못하고 고맙다는 말도 너무 성의없게 한 것 같아 아쉬웠다.


구 시가지로 돌아와서 승우와 잠깐 헤어졌다. 나는 자전거를 반납하고 걸어다니길 원했고, 승우는 멀리 더 나가보고 싶다고 해서 따로 다니자면서 헤어졌다. 구 시가지는 지도를 봐도 정말 헷갈렸다. 워낙 골목이 많고 상점도 많았기 때문에 어디가 어디인지 헤매기 일쑤였다.


구 시가지 근처에는 하노이 사람들의 휴식처인 호안끼엠 호수가 자리잡고 있었다. 굉장히 거대한 호수로 낮이나 밤이나 이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혼자  호수 주변을 따라 돌아다니고 있는데 베트남 중고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나에게 엽서 사달라고 왔다. 하지만 난 필요없다고 자리를 뜨고 있는데 한 아이가 계속 쫓아오며 엽서는 안 사줘도 되니까 친구하자고 했다. 보통 이런 경우는 사기성이 짙기 때문에 거부했는데 이 아이가 정말 순수한 뜻이라며 저쪽에 가서 얘기 좀 하자고 했다. 아마도 외국인이라서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았다.

호의를 무시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걷다가 거리에서 파는 차 한잔 마시게 되었는데 이녀석이 돈을 냈다. 내가 내겠다고 했는데도 자기가 내겠다고 한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영어가 그리 능숙하지 못하다 보니 깊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다만 여행다니고 있다는 나의 말에 무척 동경해하던 눈치였다. 베트남의 다른 도시도 아직 가보지 못했다고 한다.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아이에게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고는 헤어졌다. 구 시가지를 돌아다니며 망고스틴과 복숭아도 사먹었다. 정말 깎아주지 않았던 아줌마와 치열하게 밀고 당기기를 하다가 겨우 망고스틴을 손에 들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입이 심심해서 도너츠를 사먹기도 했다.


나는 우리 숙소 아래에 있던 인터넷카페에서 인터넷을 좀 하다보니 승우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승우는 자전거를 타고 멀리까지 다녀왔다며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쏟아냈다. .


상민이형으로부터 비코트래블을 추천 받아서 처음 하노이에 도착했을 때 한인 여행사인 비코트래블을 열심히 찾아봤다. 구 시가지를 그렇게 헤맬 때도 못 찾았는데 나 혼자 돌아다니는 도중 우연하게 찾아버렸다. 그래서 비코트래블을 기웃거렸는데 사장님이 들어오라고 하시면서 물 한 병을 주셨다. 그냥 알아 볼 것만 있어서 온 것이라고 했는데도 너무도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중국으로 넘어가는 버스티켓 가격을 물어보니 게스트하우스보다 1달러 저렴해서 이곳에서 티켓을 예약하기로 했다. 일반적으로 한인업소가 모두 친절한 것은 아니지만 하노이에 있던 비코트래블은 지나치다 싶을정도로 친절했다. 짧은 기간동안 너무도 많은 도움을 받아 정말 너무 감사했다.


씨클로 타는 관광객들이 보였는데 난 타보고 싶다는 생각이 별로 생기지 않았다.


비코트래블 사장님이 강추해서 갔던 음식점이었던 New day로 갔다. 부페식으로 원하는 음식을 담아 먹을 수 있는데 접시에 음식을 담으면 그자리에서 곧바로 가격을 알려줬다. 이렇게 고른 저녁이 3만 5천동(약 2100원)이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맥주 한잔과 함께 식사를 했는데 숨이 넘어갈 정도로 먹은 것 같다.


수상인형을 보기 전 시간이 남아 호안끼엠 호수로 갔는데 야간에는 낮과는 다른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화려한 조명은 없었지만 운치있는 분위기에 많은 사람들이 나와 산책을 하고, 다정하게 앉아있는 연인들의 모습도 보기 좋았다.


호치민과 같이 복잡했던 도시지만 색다른 느낌이 있던 하노이의 밤이 찾아왔고, 기분 좋게 숙소에 돌아왔다. 그랬는데 데스크에서 내일 체크아웃을 하던지 아니면 도미토리로 방을 옮기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침 8시에 말이다. 너무나 어처구니 없어서 따지니까 8시에 체크인 했으니까 8시에 체크아웃을 하라는 이상한 논리를 폈다. 

베트남에서 기분 나쁜 적이 거의 없었는데 아마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늦은 밤에 항의를 하다가 너네들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얘기하고 씩씩거리며 들어왔다. 아무 이유없이 체크아웃하라는 어처구니없는 곳이 있다니 한밤 중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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