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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 누웠지만 잠은 오지도 않았고 2시간 남짓이면 공항으로 가는 밴을 타야했기 때문에 아예 잠을 안 자는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비행기 시간은 오전 7시 반이었고, 공항밴은 4시에 타기로 되어있었다. 그간 멜번에서 케언즈로 날아간 뒤 3박 4일동안 이어진 일정에 시드니에 온 뒤로는 잠을 거의 안 잤었다. 완전 피곤한 그런 상태에서 곧바로 태국으로 향하다니 앞으로의 여정이 험난하기만 느껴졌다.

새벽 4시가 지나 로비에 앉아있으니 공항으로 가는 밴이 도착했다. 나는 밴에 올라탄 뒤로는 거의 기절상태로 골아떨어졌다. 비몽사몽으로 여기가 어딘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깨었다가 다시 졸곤 했다.

5시가 되었을 무렵 도착한 시드니 공항에서 나는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호주의 마지막 날임을 실감했다. 호주에서 한번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을 쳤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떠나게 된다니 조금은 아쉬웠다. 그래도 다행스러웠던 것은 새로운 여행이 시작된다는 사실이었다. 호주를 떠나는 비행기를 타고 한국이 아니라 태국으로 향했던 것이다.


내가 타고갈 캐세이퍼시픽 비행기였는데 여태까지 내가 탔던 비행기 중에서 가장 큰 편에 속했다. 떠나는 날인데 날씨는 그리 좋지 않았다.


7시 반 비행기였는데 나에겐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나 지루했다.


나의 여권을 펼쳐보았는데 그동안 각 나라의 도장이 꽤 많이 찍혀있었다. 여권을 만든지 불과 2년 반만에 이렇게 많은 도장을 찍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당시 여권을 10년짜리를 만들 때도 '해외를 몇 번이나 나가겠어?' 라는 의심이 들었었다. 계획대로 홍콩과 마카오를 여행하게 되면 무려 11개국을 방문하게 된다. (현재는 13개국 방문)


드디어 비행기에 올랐고 다행스럽게도 좌석은 남아 돌아서 양 옆에 아무도 없었다. 비행기도 큰 편이었는데 좌석까지 남았으니 상당히 쾌적한 여행이 될거라 생각했다. 지도상으로 보면 참 짧아 보인다.


7400km의 압박이 몰려왔다.


이 때까지만 해도 비행기는 많이 타본 편이 아니었는데 여기는 좀 독특했다. 언어선택으로 한글도 가능했고, 터치스크린에 따로 조작컨트롤러가 달려있었다. 난생 처음보는 시스템에 촌놈처럼 좋아하며 신기해하고 있는데 화면 윗쪽을 보니 비행시간이 9시간 4분이라고 적혀있었다. 뭐... 뭐라고? 9시간 4분?

가만히 생각하다가 그제서야 깨달은게 있었으니 바로 시차였다. 홍콩과 시드니와의 시차를 계산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 7시간정도 걸릴 줄 알았는데 물론 제대로 계산했어도 8시간이긴 했지만 시차를 빼먹은 탓에 9시간 걸린다는 것을 뒤늦게 안 것이다. 9시간이라니 출발부터 현기증이 밀려왔다.


처음 봤던 조작컨트롤러였는데 이걸로 게임도 할 수 있었다. 조작감은 그리 매끄럽지 않았다.


게임은 플래시 게임만도 못한 수준이어서 할만한 것은 없었다.


드디어 비행기는 이륙했고 나는 장시간 이동에 졸다가 깨다가를 반복했다.


이륙하고 나서 잠에서 깨니 아침이 나왔다. 아침이다 보니 스크럼블과 간단한 소세지 종류였다.



비행기 안에서의 이동은 정말 지루하기만 했다. 그런데 그렇게 오래갔는데도 아직도 호주 땅을 벗어나지 못했다. 정말 호주가 땅이 넓긴 넓구나!


나는 노트북을 꺼내 마저 작업하던 영상을 불러와서 마무리를 했는데 아무리 해도 렌더링 과정에서 에러가 떴다. 베가스가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아무튼 태국에 가서 해결점을 찾기로 했다.


버스, 배, 기차 모든 이동 수단이 지루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내 생각에는 비행기가 최고같다. 좁은 좌석에 앉아서 멍하니 스크린만 바라보다가 기내식 나오면 먹고, 다시 기내식 나오면 또 먹는다. 차라리 옆에 누군가라도 있으면 얘기라도 하며 시간을 떼울텐데...


6시간이 지났을까? 어느덧 비행기는 필리핀 상공을 날고 있었다. 3개월가량 필리핀에서 지냈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 후에 호주로 향했는데 이제 그 호주 생활마저도 마치고 새로운 곳으로 향하고 있던 상태였다.


드디어 도착한 홍콩. 홍콩 공항은 정말 무지하게 친숙했다. 무려 공항만 4번째인데 단 한번도 밖을 나가보지는 못했다. 이 때도 공항에서 입국 수속을 밟았지만 홍콩으로 향한게 아니라 에어아시아를 타기 위해 다시 보딩을 해야만 했다. 에어아시아는 홍콩 제 2터미널에 있기 때문에 옆 건물로 이동했다.


에어아시아 카운터가 어디있는지 몰라서 헤매고 있는데 알고보니 2시간 뒤에야 열린다고 한다. 그러니까 에어아시아 전용 카운터가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시간이 되면 임시로 만들었다. 케언즈부터 날아와 시드니에서 잠도 안 자고 홍콩으로 온 나는 곧바로 태국으로 향하게 된 것이다. 애초에 내가 이렇게 비행기를 예약한 탓도 있지만 말이다.

2시간 뒤에 안내판 등을 설치함으로써 에어아시아의 카운터가 완성이 되었다. 길게 줄이 늘어섰는데 이 때 항공사 직원이 이쪽이 아니라 옆 줄로 서야 한다고 한 외국인에게 말했다. 이 때문에 실랑이가 벌어졌는데 생각보다 심하게 말다툼을 했다. "니네 보스 데리고 와라 너랑 이야기 하기 싫다고!" 어딘지 이런 상황이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출발시간은 한참 남았고 에어아시아는 기내식이 제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무언가 먹으러 갔다. 우선 홍콩 달러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호주 20달러를 환전했다. 홍콩 물가가 어떤지 체감이 되지 않던 때였다.


내가 선택했던 것은 바로 일본식 라멘이었다. 지난 번에 홍콩에서 호주로 날아갈 때 돈이 하나도 없어서 이걸 보면서 입맛만 다시고 못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는 너무나 우울했었는데 이제는 당당히 밥을 사먹을 수가 있었다.

밥을 먹고 난 후 공항을 둘러보다가 게이트로 돌아갔다. 내가 타게될 에어아시아의 비행기를 보자 살짝 미소를 지었는데 그만큼 작았기 때문이다.


출발시간인 8시가 되었고 에어아시아에 올라탔다. 첫 느낌은 산뜻하기는 한데 무언가 버스나 열차와 비슷한 느낌이 났다. 호주의 저가항공은 그래도 좌석 앞에 스크린이라도 있었는데 에어아시아는 아무 것도 없었다. 친숙한 노래가 흘러나온다는게 가장 특이점이라고 해야할까?


8시 10분에 출발한다고 했지만 도무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8시가 넘어서야 짐을 실어넣는 것을 보고 출발은 한참 멀었겠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비행기 이륙은 무려 20분 뒤에나 이루어졌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난 뒤에 바라본 홍콩의 노란 불빛은 정말 아름다웠다. 하지만 나는 이내 정신을 잃었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태국 쑤완나폼 공항에 착륙하기 직전이었다.


정말 먼 거리를 이동해서 태국에 도착했다. 시드니에서 오전 7시 반에 출발했는데 방콕에는 밤 10시에 도착했으니 약 15시간만의 긴 여정이었던 것이다.


이제는 태국이다. 무언지 모르겠지만 즐거운 마음이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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