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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렜다. 약 1년 동안 해외에서 지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은 의미일 테지만 그래도 기대감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한국으로 들어가면 나는 학교로 돌아가 마지막 학기 수업을 듣는 또 '복학생'의 삶이 기다리고 있었고, 당장 취업을 걱정해야 하는 형국이었다.


뭐, 그건 어떻게든 되겠지.



점심쯤에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야 되지만 홍콩을 좀 더 느끼고 싶은 마음에 매우 일찍 일어나서 거리를 걷고 싶었다. 늘 느끼는 것이었지만 청킹맨션 앞에 나오면 마치 차원이 다른 세상에 나온 기분이 느껴졌다.



침사추이 거리를 한 바퀴 돌았다. 매일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걸었던 거리였는데 막상 떠나려고 보니 구석구석 돌아보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웠다.



골목에 들어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어 살펴보니 영화를 찍는 듯 했다.



아침 산책을 마친 뒤 KFC에 가서 아침 식사를 했다. 치킨조각과 계란, 빵 그리고 커피 한 잔 이었는데 상당히 여유 있는 식사를 즐겼다. 뭐랄까. 떠나려고 보니 이전에는 없던 여유롭고 한가한 마음가짐이 생겼다고 할까?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여유를 즐기는 게 비록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천천히 아침을 먹으면서 내부에 있던 사람들도 구경하고 밖에 있는 사람들도 구경했다. 아직 버스를 타려면 시간이 남아 있어서 어떻게든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 짐을 다 챙긴 뒤에 카운터에서 체크아웃을 했다. 사실 비좁고 깨끗하지도 못하고, 딱히 좋은 편의시설은 아니었다. (이렇게만 놓고 보니 전부 안 좋다는 말) 애초에 내가 좋은 시설이나 서비스가 아닌 무조건 싼 숙소를 원했기 때문에 그냥 나쁘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 네팔 친구들은 생각보다 친절해서 내가 마지막 인사를 건넬 때는 또 오라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이제 홍콩도 안녕이구나!



길을 건넜고, 나는 마지막으로 청킹맨션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다.


그때 누군가 나에게 어색한 한국말로 접근했다.

"저기... 시계... 로렉스... 진짜 같아. 똑같지?"



나는 돈도 없고 관심도 없으니 괜찮다고 말했다가, 이때다 싶어서 이 아저씨를 붙잡고 사진 좀 찍어달라고 했다. 사실 홍콩에서는 내 사진을 찍은 적이 거의 없었다. 사진을 찍어주고는 다시 시계 관심 없냐고 물어왔다.

'내가 그럴 돈이 있으면 100달러짜리 싸구려 방에서 자겠어요?'라고 말하려다가 웃음만 지었다.

일반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한 15분정도 기다렸을 때 내가 기다리던 버스는 아니었는데 주변에 있던 사람이 나보고 공항에 갈 거라면 이걸 타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올라탔다. 생각보다 버스는 한산했다.



이 버스도 역시 2층버스였지만 짐이 너무 많아서 위로 올라가지는 않았다. 근데 버스는 꽤나 돌아가는 모양이다. 익숙해진 홍콩의 구석구석을 돌아서 공항으로 갔다.

드디어 공항에 도착했다. 우선 옥토퍼스 카드를 환불했다. 싱가폴의 이지링크 카드처럼 외국인들도 카드를 쉽게 발급할 수 있고 사용할 수 있고, 또한 출국하기 전에 카드를 환불할 수 있었다. 짧은 여행기간 동안 아주 유용했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진 홍콩 공항에서 출국 신고를 했고, 시간이 한참이나 남았지만 게이트 앞으로 갔다.



게이트는 1번이었다. 서울이라는 글자가 보이니 진짜 한국으로 간다는 게 실감이 났다. 나는 반대로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람이긴 했지만 마치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무척 설렜다.



시간이 너무 남아서 앉아서 따분하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홍콩인으로 보이는 여자 3명이 나에게로 다가와 설문지 좀 작성해 주지 않겠냐고 물어왔다. 당연히 영어로 물어왔는데 그들은 대학생으로 홍콩 여행자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옆에 있던 다른 아저씨는 거절을 했는데 나는 뭐 할 것도 없고, 심심하기도 해서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항목들이 배낭여행자에게는 답하기 힘든 것들이었다. 내가 홍콩의 디즈니랜드, 오션파크 등을 가본 적도 없다고 하자 그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럼 대체 어디를 가봤냐고 물어봤다. 그리고 숙소는 어느 호텔이었냐고 물어봤는데 내가 싸구려 게스트 하우스에 있었다니까 나에게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세계를 여행하고 있냐고 아니면 어느 나라를 가봤냐고 물었다. 세계여행은 아니었고, 약 1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간다니까 아주 신기해하면서 부럽다는 이야기를 했다. 물론 나도 여행으로만 1년 동안 다니지 않았기에 살짝 머쓱해 했다.

꽤 많은 항목에 답을 하고난 후 그들은 선물이라며 2가지를 고르라고 했는데 나는 홍콩&마카오 책을 골랐다. 영어라서 보기에는 조금 힘들겠지만. 그들은 설문지를 챙긴 뒤에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드디어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날씨는 무척 화창했고 구름도 예쁘게 펼쳐져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비행기 안에는 대부분 한국 사람이었다. 한국말이 들리고, 기내 스튜어디스도 한국말을 하는데 이게 너무나 어색했다.



홍콩과 한국은 멀지 않았기 때문에 금세 도착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고 입국 도장을 찍는 순간 나는 긴 여정의 마침표를 찍었다. 필리핀으로 날아가,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 생활을 했고, 그게 너무 지겨워 태국, 캄보디아, 홍콩, 마카오를 여행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만 해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는데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주에서도 많이 돌아다니고 동남아도 갔지만 여행이 너무 짧다고 느껴졌던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었던 것이라고 해야 할까? 짐을 찾을 때 나만 커다란 배낭이었다. 전부 커다란 캐리어를 집어 들고 있었는데 나는 그 틈을 비집고 소중한 배낭을 집어 들었다. 한국에서는 더 이상 배낭이 친숙한 존재는 아니었다. 그래서 뭔가 특별함이 묻어나 보이니 캐리어 끄는 것보다는 훨씬 기분이 묘하고 짜릿했다.



대전행 버스표를 구입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나는 이 마침표를 기념하기 위해 옆에 있던 한 사람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여기에서 사진을 한국인에게 부탁하니 무척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카메라 가방을 들고 있어서 그런지 뭔가 자세가 이상하긴 했지만 한국에 돌아온 기념샷은 잘 나왔다. 사진을 찍은 후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자 사진을 찍어주신 분은 내 배낭을 한번 힐끔 보더니 얼마나 오래 있다 온 거냐고 물어봤다. 1년 만에 한국에 왔다고 하니 좀 놀라셨다. 그 분도 여행을 갔다 오셨다고 했는데 그 이후로는 자세히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대전행 버스에 올랐고, 나는 졸음이 밀려와 눈을 감았다. 눈을 떴을 때는 컴컴한 어둠이 밀려왔고, 나는 비몽사몽이었던 탓인지 지난 1년간의 여정이 마치 꿈만 같았다. 잠시 뒤 환한 불빛이 가득 보이는 게 대전에 도착했음을 알려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