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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날씨에 치앙마이 한 바퀴를 돌고 오니 정말 피곤했다. 가뜩이나 졸린 상태였는데 계속 걸어다니기만 했으니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 바로 침대에 누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열쇠를 꺼내 방에 들어갔는데 낯선 외국인 4명이 짐을 풀고 있었다. 외국인이 있는 것은 상관이 없었는데 문제는 내 짐이 없었던 것이었다. 내 침대 위에 있었던 책들도 보이지 않았는데 그 외국인들은 너가 원래 이 침대의 주인이었냐고 물었다. 내 짐은 어디로 갔냐고 되물으니 이 게스트하우스에서 가지고 갔다고 얘기를 했다. 나는 갑작스러운 황당한 소식에 저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우선 자초지종을 들어봐야 겠다고 생각해서 카운터에 가서 어떻게된 일이냐고 물어보니 나보고 정말 미안하다면서 직원의 실수로 예약되어있는 방을 나에게 줬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른 방으로 짐을 다 옮겨놨다는 것이었다. 원래는 비싼 방인데 잘못한 일이니 따로 요금은 받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애초에 내가 연락처가 없었기 때문에 어쩔수 없는 일이었고, 더 좋은 방으로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긴 했다.

우선 그런건 다 귀찮고 잠이나 자야겠다는 생각에 계단을 오르고 있는데 아까 그 외국인이었는지 미안하다는 소리를 했다. 나는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했다. 더 좋은 방에 머물게 되었으니 적어도 손해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방에 들어가니 커다란 더블베드가 놓여져 있었고, 아주 작은 베란다도 있었다. 사실 고급이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내 여행 중에 이런 방에서 묵은 경우가 없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고급스러운 방이었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도 않고 누웠는데 바로 잠이 들어버렸다.

그렇게 3시간을 대자로 뻗어서 잤다. 일어나서 밖을 바라보니 벌써 어두컴컴해져 있었다. 이대로 안에서 저녁을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배가 고파서 뭐라도 먹어야 겠다는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나의 생일은 그냥 보내기엔 너무 섭섭했다.

게스트하우스 1층으로 내려오니 사모님으로 보이는 분이 자리에 앉아 계셨는데 나를 어떻게 알아보셨는지 방이 옮겨진 일에 대해서는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나는 더 좋은 방으로 옮겨주셨으니 괜찮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화를 사용하겠다고 한 뒤 은희누나한테 전화를 걸었다. 은희누나는 갑작스럽게 없어졌던 나에게 연락처가 없으니 연락이 안 되었었다고 뭐라 했다. 도이스텝 같이 올라가려고 했는데 내가 없어져서 누나와 누나의 남자친구, 그리고 다른 몇 명과 함께 올라갔다왔다고 했다. 어쨋든 다음날 다시 연락을 한다고 하고 끊었다.

전화를 끊고 그냥 나가려다가 혹시 이 근처에 무엇이 있는지 물어봤는데 친절하게도 이 근처의 술집과 야시장을 소개해 주셨다. 먹을거리가 있다는 야시장이라는 말에 당장 그 곳으로 찾아가겠다고 했다.


거리는 정말 조용했지만 어쩐 일인지 밝은 빛을 내고 있었다. '아... 크리스마스가 바로 어제였지.' 버스 안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냈던 것도 모자라 내 생일은 치앙마이 거리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내가 이러려고 여행을 떠났던 것일까? 피식 웃으면서 애써 담담하게 야시장을 찾아다녔다.

이상하게 차량들이 많아 보였는데 어디선가 시끄러운 노래 소리가 들렸다. 축제라도 하는것 같았다. 그 바로 맞은 편에 린컴 야시장Rincome Night Market이 있었다. 우선 야시장부터 가봐야 겠다는 생각으로 길을 건너갔다.


야시장에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먹을 것이 한가득 보였다. 그래 이런걸 원했던 거야!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 나는 야시장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맛있는 음식도 구경하면서 무얼 먹을지 고민에 빠지다가 좀 더 시장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이 야시장에는 치앙마이의 대표적인 관광지였던 나이트바자에 비해 외국인이 거의 없었는데 생각보다 시장이 너무 깔끔했다. 야시장에는 옷, 신발, 가방부터 시작해서 식기, 애완동물까지 없는게 없었다. 규모가 매우 크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시장으로써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있었다. 그렇게 배고픔도 잊고 야시장을 3바퀴 돌다보니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갑자기 아까 입구에서 보았던 꼬치가 마구 생각났다.


어떤 것을 먹을지 감이 안 잡혀서 계속 고민만 했다. 무얼 시도해볼까?


내가 집었던 5밧짜리 꼬치  2개. 칠리소스를 뿌려줬는데 맛은 나쁘진 않았지만 고기가 별로 없었다. 칠리소스를 질질 흘려가면서 꼬치를 먹고, 다시 야시장을 둘러봤다. 방콕에 비해서 가격이 싸서 혹시나 살만한 것이 있는지 구경했다.  하지만 다양한 물건을 파는 시장보다 사실 치앙마이 여인들이 다들 너무 예뻐서 그게 더 관심이 생겼다.

나는 린컴 시장을 뒤로 하고  궁금했던 맞은편에 있던 공연장으로 갔다. 원래는 공원으로 추정되는데 거기에 세트를 설치하고 콘서트를 하고 있는듯 했다. 입구부터 들어가기가 쉽지 않아 보였는데 어떻게 입장을 할 수 있냐고 하니 옆쪽에 있던 테이블로 가서 간단한 입장권을 받으면 된다고 했다. 다행히 입장은 무료였다.


무슨 공연인지도 모르고 그냥 들어가고 싶다고 하니 간단한 인적사항을 적어야 했다. 다 적고 건네주니 나한테 생일이 언제인지 물어봤는데 내가 "오늘이요"라고 대답하니 깜짝 놀라기도 했다.


종이를 받아들고 입구 앞으로 가면 내 손등에다 도장을 꽝 찍어줬는데 이걸로 입장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멀리 있는데도 상당히 시끄러운 락음악이 들려왔다. 길 위에서는 기념품같은 것을 파는 가벼운 상점들이 몇 개 있었고, 곳곳에서는 술을 팔고 있었다. 자세히 알고보니 이 공연의 후원 업체가 알콜회사였고 현장에서 술과, 레드불(박카스와 비슷한 음료, 서양이나 다른 나라에서는 칵테일에도 넣어 먹는다), 소다를 섞어서 팔고 있었다.


사람들로 가득한 이 공연장을 자세히 보기 위해 나도 작은 언덕 위에 올라갔다. 당연히 무슨 말인지도 모르지만 노래는 꽤 좋아 보였다. 주변의 사람들도 신나는지 그 자리에서 춤을 추는 사람도 꽤 보였다. 여기서 좀 놀랐던 점은 치앙마이 여자들이 예뻤다는 것, 내 똑딱이가 초라해질 정도로 다들 좋은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부러웠다. ㅠ_ㅠ


잠깐 나갔다가 국수 하나 먹고, 다시 이 공연장을 찾아왔다. 혼자서 보내기엔 내 생일이 너무 심심했기 때문이다. 남들이 다 먹는 술을 나도 한잔하려고 50밧짜리를 샀다. 그 자리에서 얼음이 들어간 잔에 술과 소다, 레드불을 섞은 뒤에 나에게 건네줬다. 빨대로 쪽 빨아봤는데 대체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알콜맛이 없는 단맛 안 나는 사이다라고 해야할까?


다른 태국인들처럼 나도 음료수같았던 술을 마시면서 공연을 관람했다. 마치 내 생일을 축하하는 공연이라고 느껴졌을 정도였다. 다들 신나 보였다. 사실 신나보였던 사람들이 눈에 보일 수록 난 더 외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