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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저물기 시작해서 서둘러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목적지는 바간의 일몰과 일출을 볼 수 있는 장소로 유명한 쉐산도 파고다였다. 바간 여행 첫 날에 나와 비키가 담마양지 파고다를 쉐산도 파고다로 착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확실히 쉐산도 파고다에 찾아가 일몰을 보기로 했던 것이다. 



정확한 쉐산도 파고다의 위치를 몰라 사람들에게 물어가면서 찾아갔다. 해가 저물어 가는 것을 보니 마음만 급해졌다.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점은 쉐산도 파고다는 내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있었다. 

쉐산도 파고다에 도착해 자전거를 세워둔 후에 올라가는 계단 앞에 갔다. 그 때 미얀마인이 나를 보며 일본 사람이냐고 물으면서 말을 걸었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까 자신은 한국이 너무 가고 싶다면서 부럽다고 얘기를 했다. 아마도 TV에서 보던 멋진 건물이나 주인공의 부유한 삶을 보고 그런 환상을 가지고 있는듯 했다. 그래서 내가 나는 미얀마가 더 좋다고 하니 이 아저씨 나를 바라보며 "그럼 나랑 바꿀래?" 라고 말했다. 나는 살짝 웃으면서 미얀마도 좋은 나라라고 얘기해줬다. 


쉐산도 파고다도 역시 맨발로 올라가야 했기에 나는 그냥 바닥에 슬리퍼를 벗어던지고는 조금 경사가 심했던 계단을 올라갔다. 어차피 슬리퍼를 누가 훔쳐갈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냥 아무데나 벗어놨던 것인데 계단 아래에는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벗어 놓은 슬리퍼와 신발로 가득했다. 

계단을 따라 정상에 오르고 있을 때 누군가 손을 흔들면서 "야니~ 여기야!" 라고 외쳤다. 비키가 먼저와서는 내 자리를 맡아놓고 있었던 것이다. 비키 덕분에 나는 명당자리에 아주 손쉽게 앉을 수 있었다. 


확실히 쉐산도 파고다에서는 바간의 파고다가 한 눈에 보였기 때문에 일몰과 일출을 보기에 아주 좋아 보였다. 바간에는 땃빈뉴 파고다가 가장 높았지만 실제로 오르를 수 없었던 것에 반해 쉐산도 파고다는 위로 올라가 바간의 360도를 바라볼 수 있어서 확실히 좋은 장소이긴 했다. 


당연히 일몰을 보기 좋은 장소인만큼 바간의 곳곳에 숨어있었던 관광객들이 해가 저물기 시작하자 여기에 몰려들었다. 쉐산도 파고다의 정상이 아주 비좁지는 않았지만 일몰을 보기 위해 몰려든 많은 사람들 덕분에 너무 북적였다. 

이 북적이는 좁은 공간을 미얀마 어린 아이들은 아주 아슬아슬하게 다니고 있었는데 관광객을 대상으로 엽서를 팔거나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돈을 환전하기도 했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달라고 해서 조금씩 얻은 미국 달러나, 유로, 태국 바트를 미얀마 짯으로 바꾸려고 했던 것이다. 


나는 비키와 거의 절벽과 다름 없었던 돌담 위에 앉아서 지난 하루 일과를 이야기하고, 저 멀리 해가 저물어 가는 것을 구경했다. 


바간의 하루가 또 저물어 가고 있었다. 

멋진 일몰을 기대하는 그 순간에 갑자기 해가 지는 방향에 구름이 끼어 있어 해가 구름 사이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럴수가! 멋진 일몰을 못 보는 것이 아닌지 걱정하는 우리의 우려가 점점 현실이 되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쉐산도 파고다에 올라 일몰을 구경하던 관광객들은 순식간에 허무함을 느꼈다. 분명 구름때문에 멋진 일몰을 볼 수 없기는 했지만 여기서 바라보는 바간의 풍경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멋지긴 했다. 우리는 담마양지 파고다에서 봤던 일몰에 만족해야만 했다. 


아쉬움에 비키와 나는 바로 내려가지는 않고, 위에서 사진 몇 장을 찍었다. 

더이상 멋진 장면은 없을거라 생각해서 우리는 내려가기로 했다. 순식간에 날이 어두워졌는데 슬리퍼를 하마터면 못 찾을뻔 했다. 자전거를 끌고 돌아갈 때 걸어가던 비키를 다시 만났다. 이 날 하루 비키는 마차를 타고 돌아다니거나 걸어다녔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고생한 나보다 어떻게 보면 한결 편했던 상황이었다. 

비키는 자전거를 못 탔기 때문에 나보고 자전거를 한 번 타볼 수 있냐고 했는데 페달 밟고 나아가질 못하는 것을 보니 정말 자전거를 탈 줄 모르긴 했다. 어차피 여기는 흙길이라서 자전거를 제대로 탈 수 없기는 했다. 


어둠이 짙게 깔릴 무렵 뒤늦게 지평선 아래로 내려간 해가 빛을 발했는지 신비로운 풍경이 나타났다. 사방은 붉게 물들고, 어둠 속에 숨어있던 뾰족한 파고다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우리는 바간의 신비로움을 느끼며 이 어둠속을 천천히 걸어서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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