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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에 떨다가 잠에서 깬 시각은 오전 7시 반이었다. 꽤 두꺼운 이불을 덥고 있었지만 방은 썰렁한 분위가가 맴돌고 있었다. 새벽에 껄로에 혼자 도착해서 자칭 트레킹 가이드라 불리는 삐끼 아저씨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이 게스트하우스는 내 생각보다 괜찮은 편이었다. 가격도 6달러로 저렴한 편이었는데 방은 넓고, 뜨거운 물은 펑펑 나와서 정말 좋았다. 

미얀마 게스트하우스는 조금 신기한게 싱글룸은 거의 없었다. 그러니까 싱글룸을 달라고 해도 트윈룸을 줬다. 옆에 남는 침대가 덩그라니 놓여져 있는데 덕분에 어느 방을 써도 대부분 혼자 쓰기엔 충분한 넓이였다. 물론 양곤에서는 싱글룸도 있고, 도미토리도 있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사실 양곤의 싱글룸 가격이면 다른 지역에서는 넓은 트윈룸 방을 혼자 사용할 수 있으니 물가 차이가 확연하게 느껴지긴 했다. 

식당으로 가서 가볍게 아침을 먹었다. 대부분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오는 서양식으로 빵과 커피, 오믈렛 그리고 파파야, 바나나, 만다린과 같은 풍성한 과일도 곁들어져 있었다. 빵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미얀마에서는 게스트하우스라도 아침을 공짜로 주니 항상 챙겨 먹었다. 이 게스트하우스는 손님이 없나? 아침을 먹고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아침을 다 먹고 게스트하우스 앞에 있던 조그만한 그네에 앉아 따사로운 햇살을 맞았다. 원래 무지 추웠던 껄로의 밤이었지만 해가 뜨자 점점 따뜻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천천히 그네를 움직이며 주변의 경치를 바라보고 있는데 지난 밤에 만나 나를 이 게스트하우스로 안내한 트레킹 가이드가 나타났다. 

"요~ 나 기억하지? 어제 만난 트레킹 가이드야."

조용히 그네타기를 즐겼던 나는 트레킹 가이드의 침튀기는 투어 설명을 들어야 했다. 미리 준비된 지도까지 보여주며 트레킹의 코스까지 설명해주는 것이었다. 

껄로는 정말 작은 마을이라 여행자가 보고 즐길만한 것은 거의 없다. 산악지대에 형성된 껄로 마을 특성상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여기에서 트레킹을 즐기는 것이 전부였다. 하루짜리의 짧은 트레킹 코스부터 저 멀리 떨어져있는 인레호수까지 걸어가는 1박 2일이나 2박 3일 트레킹 코스도 있었다. 물론 나도 트레킹을 하기 위해서 껄로에 왔으니 우선 이 아저씨의 설명을 한 번 들어보기로 했다. 

트레킹으로는 여기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라고 얘기한 이 아저씨는 원하는 트레킹이 뭐냐고 물었는데 나는 시간이 별로 없어서 하루짜리 트레킹을 하고 싶다고 했다. 물론 하루짜리도 충분히 가능하다며 코스도 여기저기 설명해 줬는데 어차피 들어봐야 내가 어딘지도 모른다. 근데 하루 트레킹이 무려 10달러나 했다.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떼를 쓰며 깎아달라고 해도 안 된다는 대답뿐이었다. 10분을 망설이다 그냥 10달러에 트레킹을 하기로 결정을 했다. 

근데 이 아저씨는 자신이 트레킹을 안내해주지는 않고, 대신 친구가 올거라면서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내가 영어는 잘하는지 물어보니 물론이라며 아주 자신있게 대답했다. 하지만 잠시 후 데리고 온 친구는 영어를 거의 못했다. 

트레킹을 잘하라고 나를 설득시킨 아저씨는 떠났고, 이제 나는 새로운 아저씨와 대면한 상태였다. 출발하자는 그의 말에 지금 트레이닝복과 죠리만 신고 있는데 괜찮냐고 물어봤는데 상관없다고 했다. 가벼운 산행길이라며 쪼리를 신고도 충분히 다닐 수 있다고 했다. (처음 이 말만 믿고 이런 차림으로 갔던 내가 바보였다.) 

어쨋든 출발이다. 


우선 트레킹 가이드 아저씨는 옷을 갈아입고 가겠다고 해서 집으로 향했다. 아저씨의 집은 나무로 만들어진 소박한 집이었다. 껄로에서는 대부분 이러한 형태로 집이 지어져 있었기 때문에 아저씨의 집은 전형적인 껄로 스타일이라고 봐도 되었다. 


집에 따라 들어가니 가족들은 집에 없에 없었고, TV만 보였다. TV아래에는 미얀마에서 파는 불법 DVD들이 고이 모셔져 있었는데 그건 다름이 아닌 한국 드라마들이었다. 


내가 DVD를 들어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으니 아저씨는 슬며시 다가와서 한국 드라마 최고라면서 매일 밤새서 본다고 아주 자랑스럽게 말을 했다. 한국 드라마의 인기야 나도 미얀마 여행을 하면서 피부로 느끼고 있었지만 이렇게 실제 가정집에 쌓여 있는 한국 드라마를 보니 더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작은 가방을 둘러 맨 아저씨는 이제 트레킹을 출발하자고 했다. 


집 밖으로 나오니 주변에는 꽃들이 활짝 펴 있었다. 무슨 꽃인지는 모르겠지만 참 신기하면서도 아름다운 꽃이라고 느껴졌다. 색깔은 화려하지만 모습은 소박했는데 이 꽃이 집 주변을 도배해 놓고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이 아저씨의 집 담장은 알록달록했다. 


바로 앞 마당에 있던 어느 열매를 보고 저거 먹을 수 있냐고 물어봤는데 아저씨는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나무를 가지고와서 그 자리에서 툭툭쳐서 열매를 떨어트렸다. 


귤일까? 오렌지일까? 아니면 어느 만다린의 한 종류일까? 바로 먹어보겠냐는 아저씨의 대답에 나는 간식으로 남겨놓자고 웃으며 말했더니 그러라고 한다. 이 아저씨를 만난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무척 순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껏 하루짜리 트레킹 가이드라고는 하지만 아저씨는 내가 불편한지 계속 물어보고, 웃음을 머금고 알려주는 전형적인 미얀마 사람이었다. 


껄로 트레킹은 정말 별게 없다. 그냥 마을을 지나 뒷동산에 놀러가는 그런 기분이었다. 껄로 마을을 통과하는데 미얀마의 어떤 도시보다도 시골 마을임이 틀림없었지만 이상하게 나는 껄로가 마음에 들었다. 양곤이나 만달레이처럼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가 마을을 채우지 않았으며 당연히 산골마을이라 매연도 없었다. 마을의 도로를 천천히 걸으면서 시원한 공기를 마시니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주변에 보이는 것은 그냥 집 밖에 없었지만 모든 것이 신기했고, 모든 것이 즐거웠다. 


원래 껄로는 산 속에 있는 마을로 대부분 나무를 이용해서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껄로는 현재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집을 짓느라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다들 전통을 버리고 새것만 찾아 떠나는 것 같아 기분이 찝찝했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껄로 마을을 걷는 기분은 좋았는데 설마 이게 트레킹의 전부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염려는 헛된 상상이었을 뿐이었다. 해는 이제 제법 떠올랐고, 길은 평지에서 언덕으로 바뀌기 시작하자 점점 더워졌다. 겉옷을 벗고 반팔차림으로 본격적인 트레킹을 시작했다. 


이제 본격적인 껄로 트레킹의 시작이란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난 이미 먼지를 먹으며 산 위를 오르고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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