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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도 멋진 개그맨이라고 생각했던 이경규의 2010 KBS연예대상은 너무나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가 없다. 김병만이나 강호동과 같은 쟁쟁한 경쟁자를 물리치고 영예의 대상에 오를거라는 것은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건 다름 아닌 작년부터 이어져 온 이경규의 노력의 결실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분명 이경규 자신에게도 그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불리던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그걸 극복한 것은 물론 처음으로 받는 KBS의 연예대상이라 의미가 남다를 것이다. 

사실 내가 이경규를 존경하게 된 것은 이런 대상 때문이 아니라 꿈을 가진 사람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방송에서 보여지는 그의 모습과 실제 모습이 얼마나 다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예전에 무릎팍 도사에 출연했을 때 왜 감독을 자꾸 하려고 하냐는 질문에 고백했던 한마디가 나를 감동시켰다. 

"코미디언은 제 직업이고요. 영화는 제 꿈입니다. 꿈을 안고 살아가야 행복해지지 않을까..."

확실히 내가 어렸을 적부터 대단한 개그맨이었던 이경규는 잠깐 주춤하긴 했어도 다시 부활해 몇 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정상에 있는 대단한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영화를 한다고 하니 대부분 비웃었고, 나역시 개그의 소재에 이용될 정도로 놀림 받는데도 집착하는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꿈이라는 그의 대답에 정말 노력하고 도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일반인이 유명 연예인을 만날 기회는 거의 없을테지만 이런 사람이라면 꼭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런 이경규를 실제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에서 빠지지 않는 인물이 바로 김흥국, 이경규인데 이번에도 남아공 월드컵에 등장한 것이다. 나역시 코카콜라 붉은원정대로 남아공 월드컵을 실제로 볼 수 있는 행운을 가지게 되었는데 문제는 남자의 자격팀이 남아공에 왔다고 했지만 쉽게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월드컵을 관전할 때는 연예인이나 다른 응원단을 신경쓸 겨를도 없었지만 혹시라도 운이 좋으면 연예인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쉽지만 내가 관전했던 아르헨티나전이 열린 사커시티 경기장은 무려 9만석이나 되는 거대한 곳이었고, 당시 대부분은 푸른색 아르헨티나 응원단의 물결로 도배가 되다시피 한 상태였다. 간혹 빨간색 응원단의 모습이 보이기는 했지만 다들 흩어져 있어 어디에 연예인이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아쉽게도 아르헨티나전만 관전한 뒤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정이었다. 짧은 기간동안 열심히 돌아보고 응원을 해서인지 무척 피곤한 상태였는데 요하네스버그에서 홍콩까지 무려 12시간 걸리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거의 뜬눈으로 날아왔다. 이상하게 잠은 오지 않았던 것이다. 


어쨋든 12시간만에 날아온 홍콩 공항에서 한국으로 귀국할 항공기를 갈아타려고 게이트까지 가고 있던 도중 낯익은 사람들이 보였다. 한눈에 봐도 알아볼 수 있었던 남자의 자격팀이었던 것이다. 이미 요하네스버그에서 우리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었고, 한국으로 돌아갈 때도 같은 비행기였던 것이다. 

사실 내가 연예인에 환장하는 성격도 아니고, 게다가 남자 개그맨들이 모여있는 남자의 자격팀이라 그렇게까지 관심의 대상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을지 몰라도 평소에 만나보고 싶어했던 이경규가 눈앞에 있으니 달려가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냉큼 달려가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니 아주 쿨하게(혹은 너무 피곤해서) 대답했다. 

"그럽시다."


피곤함이 아주 진득하게 묻어나는 사진이었지만 연예인하고 찍은 첫사진이었다. 남자의 자격팀만 피곤했던 것도 아니고 우리도 정말 너무 피곤했기 때문에 재빨리 감사하다고 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상태도 비록 정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규사마와 같이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은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 

얼핏 조별예선은 남아공에서 다 응원하겠다는 말이 떠올랐는데 왜 남자의 자격팀이 벌써 귀국하나 싶었는데 이후에 TV를 통해 접한 사실은 촬영 스케쥴 때문에 한국에 잠깐 귀국한 것이며 며칠 뒤에 나이지리아전을 응원하러 또 남아공으로 날아갔다는 것이다. 가까운 나라도 아니고 꼬박 하루가 걸리는 곳까지 다시 응원하러 갔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대상을 받은 것도 이러한 모든 과정들의 결과가 아닐까? TV에서 보이는 모습뿐만 아니라 항상 꿈을 가지고 도전을 하는 이경규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수상소감에서 밝힌 앞으로 20년은 더 하고 싶다는 그의 의지에 박수를 보낸다. 최고의 개그맨이라 불리는 유재석도 좋고, 강호동도 좋지만 특히 이경규의 행보에 기대가 남다른 이유는 바로 지칠줄 모르는 그의 도전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