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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모아이 석상을 보러 선멧세 니치난을 갔을 때였다. 일본에도 모아이 석상이 있다니 신기하다고 좋아하던 것도 잠시 돌아가는 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미야자키역에서 가고시마로 가는 열차는 1시 30분이었는데 다음 버스는 12시 15분에 있었던 것이다. 미야자키 그것도 미야자키역에서 떨어진 미야코시티에서 여기까지 오는데만 68분이 걸렸으니 단순히 계산을 해봐도 절대로 제 시간내로 갈 수 없던 상황이었다. 


아니 아무리 외곽지역이라지만 이건 좀 심한거 아닌가. 미야자키에는 관광지로 불리는 지역들이 대부분 미야자키 시가 아닌 미야자키 현에 집중되어 있어서 오고 가는데 엄청난 시간을 소요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렇게 버스 배차시간도 1시간 간격이라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 이러다간 가고시마로 가는 열차를 놓칠게 뻔했다. 

'정말 이거 히치하이킹이라도 해야 하는거 아냐?'
 
인적이 드문 작은 도로에는 가끔씩 차들이 지나가는데 히치하이킹이 가능할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더구나 소심한 내 성격에 혼자 손을 흔들면서 태워달라고 하기에도 여간 어색했던 것이다. 그래도 혹시나 선멧세 니치난을 구경하고 나온 사람들 중에서 태워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아니 실제로는 버스가 시간표보다 훨씬 일찍 왔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이 더 컸다. 미야자키까지만 1시간 내로 간다면 택시를 타고 역까지 이동하면 대충 시간은 맞출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했지만 실제로는 불가능했다. 게다가 일본의 기차나 버스는 알람시계인 것처럼 시간을 정확히 맞추는 것으로 유명했다. 

12시가 가까워질 무렵은 나는 이미 체념상태나 다름없었다. 그때였다! 선멧세 니치난의 입구 앞에서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던 사람이 있었는데 나에게로 다가와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흔쾌히 응하면서 사진을 찍어주면서 갑자기 내 현재 처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완전히 영어로 대화가 가능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내 열차표에 적힌 시간을 보더니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없음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손짓으로 주차장을 가리키며) "마이카? 카?"

나를 태워주겠다는 의미였다. 정말 너무 놀랍고도 고마웠다. 정말 그래줄 수 있냐고 물으니 걱정말라고 지금 출발하면 늦지 않는다고 나를 오히려 안심시켜 주는 것이었다. 그것도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시간도 다시 한번 확인해보고, 어서 출발하자고 재촉했다. 


나는 너무 기뻤지만 출발하기 전에 선멧세 니치난 입구 앞에서 사진을 찍던 것을 마무리 지었다. 내 카메라로도 촬영을했는데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가면 꼭 사진을 보내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근데 선멧세 니치난은 구경하고 나오는 길이었던 건가요?"

선멧세 니치난을 구경하고 돌아가는 길에 얻어타는 것이라면 그래도 덜 미안하지 않을까 싶어서 물어본 것인데 이들은를 만났을때 도착했다고 한 것이다. 나때문에 돌아간다는 이야기에 너무 죄송하다고 반복해서 얘기를 하니 그런건 걱정하지 말라고 지금은 역으로 돌아가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얘기했다. 


어쨋든 나는 운이 너무 좋았던 것인지 차를 타고 미야자키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달리면서 나에게는 계속해서 걱정하지 말라고 금방 도착한다고 얘기했다. 

"이름이 뭐야?"
"제 이름은 동범이예요. 성은 김이고요. 그러니까 한국에서는 김동범이라고 부르죠."

그랬더니 꺄르륵 웃음보가 터졌는지 마구 웃었다. 서로 "김동범 상은 너무 웃긴데?" 라고 주고 받기도 하고, "장동건이랑 비슷한 이름이야." 라며 웃었다. 아니 어떻게 내가 장동건과 비교가 될 수 있겠냐고 나도 웃어버렸다. 

"그럼 한국 배우들도 많이 알아요?" 

장동건이라는 말에 갑자기 궁금해져서 물어봤다. 그랬더니 생각보다 많이 알고 있었다. 카라, 송승헌, 배용준, 이병헌 등을 차례대로 말했다. 특히 이병헌을 좋아한다면서 환호를 질렀다. 어떻게 이렇게 많이 알고있냐고 물어보니 한국 드라마를 가끔씩 본다고 했다. 

가만 그러고보니 내가 아는 일본 배우나 가수가 있었나 생각해봤다. 아무래도 대화의 주제를 이어가려면 나도 일본 스타를 얘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생각만큼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영화나 드라마를 즐겨 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아! 기무라 타쿠야!"
"맞아. 기무라 타쿠야는 유명하지."
"그리고 저 그것도 봤어요. 트릭! 거기에 나오는 배우가 누구더라... 아주 예뻤는데... 아! 나카마 유키에!"

내가 아는 일본 배우는 정말 몇명 없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예전에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 <트릭> 덕분에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우리는 만난지 불과 몇 분전이었지만 자연스럽게 대화도 이어나가며 즐거운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어 마치 나들이를 가는 느낌이었다. 


생각보다 천천히 이동하던 차량은 갑자기 미야자키 방향에서 빠져 다른 길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 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잠시 구경할 곳을 안내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말에 걱정하는 마음을 조금 놓고 잠시후 도착한 곳에서 내렸다. 


시원하게 펼쳐진 해안가에는 만약 거인이 있다면 손톱으로 긁어 놓은듯한 신기한 지형이 있었던 것이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도 살짝 보기는 했는데 그때는 도로 위에서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면 여기에서는 전망대 위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나에게 여기를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다. 


비록 내가 찍힌 사진은 초점이 맞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아주 잠시동안이었지만 전망대 앞에서 바람을 쐬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그 촉박한 시간에 여행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는 이모뻘이었던 분들이었는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즐겁게 미야자키로 갈 수 있었다. 

"자자... 이제 서둘러야지. 이러다가 열차 놓칠라."


나는 꼭 사진을 보내준다고 약속을 하고, 이메일 주소를 받았다. 여가를 포기하고 나를 태워줬는데 어찌보면 나에겐 은인이라며 내가 보답할 길은 사진을 보내주는 것 밖에 없다고 얘기했다. 

"비루(맥주) 좋아해?"
"비루 좋죠. 일본 맥주는 유명하잖아요. 삿포로 맥주도 맛있는 것 같아요."


생각보다 빨리 미야자키에 들어설 수 있었다. 시간이 촉박해도 여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그녀들이 미야자키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버스로는 선멧세 니치난까지 1시간이 넘게 걸리긴 했지만 일반 자가용으로는 그정도로 오래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미야자키 남쪽을 지나치면서 자신들은 여기에 살고 있다고 얘기했다. 


얼마후 나는 미야자키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고시마 열차를 타기 약 15분 전이었다. 덕분에 난 너무 편하게 그리고 제시간에 미야자키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너무 고마웠다. 

이분들은 미야자키역까지 들어와서는 내가 떠나는 것을 보려고 했다. 우선 난 서둘러 코인락커로 달려가 내 배낭을 꺼내왔다. 내 배낭을 보더니 여행자의 모습이 신기했는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일본 여행을 하면서 내 사진을 거의 찍지 못했는데 이날은 여러번 찍히곤 했다. 배낭을 메고 나를 데리고 간 곳은 편의점이었다. 갑자기 물, 소세지, 삼각김밥, 그리고 삿포로 맥주를 집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아까 삿포로 맥주를 말했던걸 기억하고는 특별히 다른 맥주들 틈바구니에서 삿포로를 들었던 것이다. 

"가만있자. 기차를 타고 가면 배고프니까 이것도 사고, 이것도 좋겠지? 그리고 이 과자도 맛있어!"

어쩔줄 몰라하는 나를 두고 과자와 맥주 등을 집어들었다. 내가 여기까지 태워다줬는데 이런 것은 내가 사야되는 것이 아니냐며 물었지만 그들의 대답은 "이건 프레젠토야." 라는 것이었다. 일본 사람들은 남의 일에는 신경도 안쓴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처음보는 외국인을 태워주기도 하고, 배고플까봐 먹을 것을 챙겨주는 모습에 적잖아 놀랐다. 아니 이분들은 정말 한국사람과 똑같잖아! 

먹을 것으로 한봉지를 움켜쥐어주고, 내가 열차를 타기 직전까지 배웅했다. 헤어지기 전에 살짝 안고 악수를 하면서 즐거운 여행을 하라고 했다. 언어로는 드문드문 통했지만 마음으로는 진심이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서로의 모습이 사라지던 그순간까지 나를 바라보면서 손을 흔들었고, 나도 여러번 고개를 숙이면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절대 불가능할 것 같았던 가고시마행 열차에 오르자 절로 깊은 숨을 내쉬게 되었다. 나에겐 열차를 제시각에 탈 수 있었던 것이 행운이었을까? 아니면 이렇게 고마운 사람을 만났던 것이 행운이었을까?


이미 마음만으로도 배가 부를지경이었지만 한껏 챙겨준 먹거리를 보며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되었다. 정말 너무 고마웠다. 그 '삿포로 맥주'를 가장 먼저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맥주를 마시며 창문을 바라보니 열차는 미야자키역을 빠르게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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