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정글 트레킹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다시 체크인을 했다. 1박 2일 동안 물에 들어갔다 왔지만 머리도 안 감고 제대로 씻지도 못해 샤워부터 했다. 하지만 튜브를 타고 내려오느라 빨갛게 탄 살 때문에 씻는데도 너무 아팠다. 선크림이 필요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밖으로 나가보니 같이 정글 트레킹을 했던 닉이 식당에 있었다. 무지하게 배고프다면서 식사를 주문한 닉과 달리 난 마을을 돌아보고 싶었다. 부킷라왕에 도착한 이후 정글에만 있다 와서 제대로 마을 구경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저녁에 가벼운 뒤풀이가 있지만 작은 마을을 돌아보기엔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카메라를 들고 걷기 시작했다. 아, 그 전에 같이 술을 마셨던 동네 아저씨 아리스와 만나 또바 호수로 가는 미니밴 티켓을 발권했다. 아리스의 말대로 친척이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었고, 위스마 게스트하우스와도 가족 관계였다. 그러니까 숙소에서 미니밴을 예약하나 아리스의 소개대로 이 여행사에서 예약하나 똑같은 셈이다. 아리스는 오토바이를 타고 마을 주변을 여행할 수 있다며 꼬셨지만, 난 걷고 싶었기 때문에 응하지 않았다. 오토바이를 타고 도는 건 5만 루피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난 다음날 출발할 미니밴을 확인한 후 여행사에서 나왔다.


부킷라왕은 정말 조용했다. 이렇게 많은 상점과 숙소가 몰려 있는데도 여행자는 나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에스더를 만났다. 트레킹 멤버였던 스페인 누나 에스더는 돈이 떨어져서 ATM을 찾으러 간다고 했다. 당연히 이런 작은 마을에 ATM은 없었지만 오토바이를 타고 조금만 가면 있는가 보다. 저녁 때 다시 볼 예정이었기 때문에 인사를 나누고 바로 헤어졌다.


본격적으로 부킷라왕을 걸었다. 내가 묵고 있는 숙소의 맞은편은 어느 유명한 여행자 거리처럼 티셔츠와 각종 기념품을 가는 가게를 비롯해 여행사, 카페, 게스트하우스가 늘어서 있었다. 제법 여행지다운 느낌을 준다. 작다고 했던 마을이지만, 길은 생각보다 멀리까지 이어졌다.


오랑우탄의 마을답게 온통 오랑우탄이 보인다. 갤러리에서는 커다란 오랑우탄 그림 앞에서 노래를 부르던 사람과 인사를 나눴다.


나는 마을에 들어가면 바로 보이는 위스마 게스트하우스를 선택했지만, 사실 안으로 들어가면 훨씬 더 좋은 숙소가 많이 있다. 거의 별장 같은 분위기였다. 가격은 물어보지 않았어도 그리 비쌀 것 같지 않다. 그런데 성수기가 아니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늘어나는 여행자에 맞춰서 이제 막 숙소를 대거 지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과하다 싶을 정도로 편의시설이 많다.


체스를 두고 있는 사람들이 나를 보더니 자리에 앉으라고 해서 멀뚱히 구경했다. 여기는 여행자만 보면 부르고, 앉아 보라고 하나 보다. 반갑다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가 몇 분 뒤엔 달리 할 말이 없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참을 걷다보니 어느 정도 마을의 끝부분까지 도달했다고 느껴졌다. 더 이상 길 양옆에 상점이 보이지 않았다. 물론 더 갈 수는 있었다. 그냥 여기까지만 봐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돌아가기 시작했다.


여행자도 많지 않고, 한가로운 마을 분위기가 참 마음에 들었다. 돌아가는 길에 만난 꼬마 아이들은 나를 보자마자 뛰어와서는 사진 찍어달라고 한다. 포즈만 봐도 개구쟁이 같다.


부킷라왕에서는 은근히 인도네시아 가족 여행자들이 많이 보였다. 아마도 메단과 가까우면서 오랑우탄도 보고, 물장구도 칠 수 있어서 이곳을 많이 찾는 것 같다. 외국인이 내가봐도 저들은 다른 지역에서 온 여행자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숙소가 있는 다리가 있는 쪽으로 돌아왔다. 이 근처는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나 다름없는데 너도나도 돌 위에서 다이빙을 했다. 어린 아이들이 놀기에도 깊지 않은가 보다. 


마을의 입구로 가보면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가 뻗어있고, 더 이상 여행자를 위한 시설은 없다. 날도 어두워지고, 적당히 마을을 돌아봤다고 생각해서 숙소로 돌아갔다.


콜라를 하나 마시면서 반대편에서 놀고 있는 동네 꼬마 아이들을 구경했다. 아까보다 아이들이 더 많아졌는지 시끌벅적하다. 나름 부킷라왕도 유명한 관광지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한가로울 수 없었다. 오랑우탄만 아니었다면 이곳에 올 생각도 못했겠지만, 점점 오랑우탄보다도 동네 분위기가 더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일정만 여유로웠다면, 며칠 더 머물러도 괜찮을 것 같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