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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 트레킹을 했던 멤버들과 뒤풀이는 저녁 7시에 있었다. 그런데 7시에도, 7시 10분이 되도 아무도 안 왔다. 나만 빼놓고 다른데서 만나고 있는지 아니면 내가 다른 장소와 착각을 한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식당에서 한참 기다린 끝에 트레킹을 같이 했던 영국인 아주머니와 만나게 됐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맥주를 마시면서 나머지 사람들을 기다렸다.


배가 너무 고파서 나시고랭을 시켰다. 꽤 그럴듯한 비주얼이었지만 맛은 그냥 보통이었고, 3만 5천 루피아로 꽤 비싼 편에 속했다. 그로부터 10분이 지나서야 3명이 더 왔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에스더와 닉은 8시가 되도 오지 않았다. 아마도 세차게 내리는 비 때문에 못 오고 있나 보다.

뒤풀이라고는 하지만 8시가 되어도 가이드였던 헨리와 뉴는 오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끼리 서로 재미있게 놀았던 것도 아니니 참 심심했다.


뒤풀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랑 어울리지 말아야 한다는 법도 없었지만, 얼굴에 수염이 가득했던 포르투갈 사람은 말도 없이 우리 자리에 끼어들었다. 이 남자 처음부터 인상이 별로 안 좋았는데 다음날 또바 호수로 가는 미니밴에 같이 타고, 이후로도 계속 만나게 되었다. 생각보다 질긴 인연이 이어졌는데, 또바 호수에서도 친해지지 않았다.

우르르 쾅쾅!


갑자기 번쩍이더니 엄청난 굉음이 이어졌다. 비는 그야말로 하늘에서 쏟아붓고 있었고, 계속해서 천둥이 울렸다. 이렇게 세찬 비는 정말 오랜만에 본다. 번개는 계속 마을에 떨어졌고, 설상가상으로 정전까지 됐다. 한동안 우리는 깊은 어둠 속에서 있어야 했다.


비가 무지막지하게 쏟아지는 밤이었다. 어느 샌가 우리 테이블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곤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즉흥적인 무대가 마련된 것이다. 관객과 가수가 정해져 있지 않으니 누구든지 노래를 부르면 된다. 못 불러도 괜찮다. 어차피 다 악을 쓰며 부르니깐. 게다가 여긴 뭐든지 가능한 정글이 아닌가. 


이렇게 한참동안 노래를 듣고 있을 때 헨리와 뉴가 왔다. 아니 먼저 뒤풀이가 있다고 꼭 오라고 했던 이들이 2시간 뒤에 나타나는 건 대체 뭐야. 지금이 몇 신 줄 아냐고 따지니까 특유의 능청스런 웃음을 지으며, 준비한 과일을 가지고 왔다. 과일 세팅이 제법 근사했다.


우리는 계속해서 노래 부르는 것을 구경했다. 그런데 오히려 노래를 부르는 쪽이 훨씬 신나서, 일어나 머리를 흔들고 악을 쓰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이 친구들은 숟가락으로 병을 쳐서 악기 대신 사용하고, 노래 가사에 오랑우탄이나 부킷라왕을 넣어 부르기도 했다.



기분이 정말 좋았다. 즐겁다. 이 자리에 앉아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동영상을 다시 보면, 그때의 분위기가 다시 떠오른다.


아마 몇 시간을 이렇게 노래 부르면서 놀았을 거다. 분명 12시가 넘었는데도 멈추지 않았다. 정말 대단했다. 살짝 정리가 되는 틈을 타서 숙소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조금 피곤해진 것도 있고, 아침 일찍 또바 호수로 향할 것을 생각하면 이쯤에서 돌아가는 게 맞다. 그럼에도 시간은 벌써 새벽 1시에 가까웠다.


마지막으로 부킷라왕을 떠나기 직전이니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사실 부킷라왕에 도착했을 때는 메단에서 오토바이 날치기를 당할 뻔해서 기분이 무척 안 좋은 상태였다. 역시 수마트라는 소문대로 여행자에게 결코 친절하지 않은 동네라고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부킷라왕에 있는 동안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즐거웠고, 여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어 정말 좋았다. 부킷라왕을 떠나는 게 참 아쉬웠다. 내 마음을 아는지 헨리는 또 오라는 말로 작별 인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