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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에서 붉은 광장 하나만 보면 된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아는 게 그거 밖에 없었으니까. 사실 붉은 광장 사진도 제대로 본 적도 없어 그곳에 뭐가 있는지도 몰랐다. 무지의 극치였으니 이런 상상만 했다. 그저 붉은 광장에 가면 그 알록달록하고 뾰족한 건물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실제로 붉은 광장은 그 알록달록한 성 바실리 성당만 있는 게 아니다. 정말 거대한 대통령 궁인 크렘린을 비롯해서 러시아의 혁명가 레닌의 묘, 카잔 성당, 백화점 등이 있다. 이러한 사실을 알 리가 없는 나는 아르바트 거리에서부터 천천히 걸어갔다.


붉은 광장, 아니 정확히 말하면 크렘린 궁전을 배경으로 알렉산더 가든이 나타났다. 모스크바 시민들의 휴식처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확실히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생기 있어 보였다.


사진으로는 따사로운 햇볕아래 일광욕을 즐기며 앉아있는 모스크바 시민들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지하게 추운 날씨였다.


공원도 참 예뻤지만 사실 목적은 오로지 붉은 광장이었기 때문에 대충 둘러보고 바로 돌아섰다. 벌써부터 독특한 건축물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 전에 잠깐 이상하게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이 있었다. 처음에는 여기가 레닌의 묘인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무명용사의 묘로 2차 세계대전 희생자를 기리는 곳이다.


아주 운이 좋은지 때마침 군인이 큰걸음을 하며 다가온다. 거의 다리 올라가는 각도가 90도였다. 나는 이 군인이 오지 않았다면 저 무명용사의 묘에 있는 사람이 인형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근무교대라도 하는 줄 알았더니 앞에 서서 경례를 한 뒤 모자를 매만져 주고는 돌아갔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봤던 ‘꺼지지 않는 불’은 여기에도 있다.


다시 붉은 광장을 향해 걸었다. 서서히 등장하는 드넓은 광장, 웅장한 자태를 뽐내는 건물이 눈앞에 펼쳐졌다. 굉장히 넓은 곳이었다.


저 멀리 그토록 보고 싶었던 성 바실리 성당이 보이고, 좌우로는 굼 백화점과 크렘린이 있어 이 주변의 면적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시야각의 한계를 느낄만한 곳이랄까.


잠깐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서 사진을 찍고, 다시 정면 사진을 찍어봤다.


일단 난 가장 궁금했던 성 바실리 성당부터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다. 알록달록한 색상과 양파 모양의 지붕은 성당이 아닌 놀이공원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건물이라 느껴졌다. 국민게임 테트리스에 나오는 그 건물이 바로 이 바실리 성당이다.


붉은 광장에서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모스크바, 아니 러시아의 랜드마크인 이곳에는 다들 어떻게 하면 더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을지 사진 찍기에 바쁘다.


이질적인 공간, 붉은 광장에서 한참을 서있었다. 추위에 벌벌 떨면서 말이다.


그러다가 가만히 사진 찍는 사람들을 지켜보게 되었는데 어느 여자가 셀카를 찍고 있던 도중 자신과 똑같은 모자를 쓴 할아버지를 발견하고 자연스럽게 함께 사진을 찍는 모습이 무척 재밌었다. 저 모자는 어디서 팔까?

사진을 찍어 달라는 사람도 많아서 수시로 찍어주게 되었다. 어떤 남자는 러시아말로 계속해서 나에게 요구했는데 사진을 보더니 맘에 든다고 했다. 그리고는 몇 분 뒤에 또 찾아와서는 이번에는 다른 방향으로 또 찍어 달란다.


내 카메라 a6000에는 촬영 즉시 독특한 사진으로 만들어주는 기능이 있는데 이 사진효과를 이용해 성 바실리 성당을 찍어봤다. HDR 그림, 미니어처, 일러스트레이션, 토이카메라 등의 사진효과를 줄 수 있는데, 아무래도 이런 특이한 건축물을 찍어보니 더 재미있었다. 사실 구입하고 이런 기능이 있는 줄도 잊고 있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처음 써봤다.


붉은 광장에서 딱히 무얼 보거나, 무얼 해야겠다는 목적의식 강했던 것도 아니다. 그냥 광장 앞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성 바실리 성당을 한 바퀴 돌면서 뒷부분을 본다거나, 사진 찍는데 열중하는 사람을 구경했다.


모스크바 하늘을 거미줄처럼 엮어버린 비행기구름이 스파스카야 시계탑 옆에 있는 첨탑에 정확히 걸쳤다.


셀카봉의 인기는 국내를 넘어 세계로 뻗어가는 중인가 보다.


원래는 붉은 광장의 야경까지 보기 위해 미련하게 있었는데 너무 추워, 미련하게 서있는 것보다는 다음에 야경만 따로 보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마지막까지 성 바실리 성당을 돌아보고 사진을 찍은 뒤 발걸음을 돌렸다.


나가는 도중에 본 카잔성모성당. 독특한 건물이긴 했는데 붉은 광장을 한참을 보고 온 터라 그냥 빨리 지나쳤다.


출구 걸려있는 벽화 비슷한 것을 사진 찍었는데, 갑자기 옆에서 구걸하던 할머니가 노발대발하며 달려왔다. 무슨 말인지는 이해할 수 없지만 사진을 지우라는 것 같아 지웠다. 어찌나 뭐라고 하던지. 이유라도 알고 싶어 혹은 나처럼 사진 찍다가 혼나는 사람이 없는지 가만히 지켜보고 싶었지만, 그냥 춥고 귀찮아서 나갔다.

나가는 길, 부활의 문 앞에서 동전을 던지며 행운을 비는 사람과 동전이 떨어지자마자 순식간에 줍는 행운의 노인들을 물끄러미 지켜봤다.


저는 지금 세계여행 중에 있습니다. 이 글이 마음에 든다면 다양한 방법으로 도움 및 응원을 해주실 수 있습니다. 작은 도움이 현지에서 글을 쓰는데 큰 힘이 됩니다. 세계를 여행하고 있는 배낭여행자에게 커피 한 잔 사주시겠습니까?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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