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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톨라(Bitola)에 도착한 후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단연 마케도니아 사람들이었다. 물론 발칸반도에서 안 좋았던 곳을 찾기가 어렵지만 가끔 여행자가 별로 없는 동네를 가면 ‘치나(혹은 키나)’라고 중국인 취급은 물론 놀림감이 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마케도니아에서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었다. 대게 내가 지나가면 인사를 하거나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었다. 다시 말하지만 난 중국사람이냐고 물어봐서 기분 나빴던 게 아니라 대부분 지들끼리 키득키득 웃으며 이상한 사람 취급해서 짜증났었던 거다.


비톨라의 중심가를 걸었다. 마케도니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라고 하는데 중심가는 그리 크지 않았다.


천사일까?


그리스에서 넘어온 직후라 마케도니아 물가가 정말 싸서 좋았다. 감자튀김이 포함된 고기에 생맥주를 시켰는데 이게 고작해야 3유로였다. 정말 행복했다. 발칸반도를 통틀어 물가가 가장 싸게 느껴졌다. 세르비아도 많이 싸긴 했지만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비톨라에서 3일간 지내는 동안 동네를 천천히 걷다가 배고프면 밥을 먹고, 가끔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시간을 때웠다. 비톨라가 관광지로 유명한 곳은 아니라 확실히 여행자는 많지 않았다.


하루는 로마시대의 경기장을 보러 갔다. 비톨라 중심지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약 20분 정도 걸어야 했다. 갑자기 무더워진 날씨가 여름의 한 가운데라는 것을 깨닫게 해줬다. 로마시대 경기장은 입장료가 있는데 사진을 찍으려면 돈을 더 내야 했다. 당연히 난 사진을 찍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리스에서 거대한 돌덩이를 많이 봐서 그런지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대충 훑어보고 나왔다.


호스텔에서 다른 친구들을 만나 어울리는 건 배낭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다. 스페인 친구 비센테를 만나 맥주를 마시러 밖으로 나갔다. 밤이 되면 사람으로 가득한 거리를 구경하며 맥주 한 병을 비웠다.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다시 맥주를 마셨다. 우리는 또 자리를 옮겨 바에서 맥주를 마셨는데 그곳에서 나오니 이미 12시가 지난 후였다. 비센테는 더 마실 생각이었지만 나는 조금 피곤함을 느껴 숙소로 들어갔다.


비톨라에서 오흐리드(Ohrid)로 이동할 때는 역시 히치하이킹을 했다. 중심가에서 지로스를 하나 먹은 뒤 무작정 도시 바깥을 향해 걸었다. 분명 비톨라의 중심지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도시 자체의 규모는 무척 커서 걸어서 나가는데 꽤 오래 걸렸다. 걸으면서 히치하이킹을 위해 몇 번 손을 들었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약 1시간 반 뒤에야 오흐리드로 가는 차를 탈 수 있었다.


오흐리드까지 오는데 정말 오래도 걸렸다. 원래대로라면 4주 전에 알바니아에서 넘어 올 수 있는 도시였는데, 정말 돌고 돌아 그리스까지 거친 후 도착했다.


오흐리드는 정말 괜찮았다. 유명한 관광지라 여행자가 많긴 해도 그렇다고 너무 붐비지도 않은 딱 적당한 수준이라 좋았다.


알바니아 포그라데츠(Pogradec)에서도 오흐리드 호수를 볼 수 있었지만 이런 관광지는 아니었다. 굉장히 조용하고 한적한 그런 일반적인 국경 마을의 풍경이었는데 반해 이곳은 기념품 가게와 카페가 여행자를 맞이하고 있고, 호수에는 비키니를 입고 수영이나 선텐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오흐리드에서 오래 머물 것 같다는 예감은 그대로 적중해 6일간 지냈다.


난 항상 마트에 가면 인스턴트 라면이 있는지부터 확인한다. 인도네시아 라면인 미고랭이 있을까 찾아봤는데 놀랍게도 한글로 적힌 라면이 있었다. 호기심에 ‘미스터 박’을 집어 들고 살펴보니 김치맛, 삼계탕맛, 설렁탕맛, 카레맛, 매운쇠고기맛 등 맛도 다양했다. 몇 개 사서 나중에 먹어봤는데 김치맛은 조금 먹을 만 했지만 다른 건 별로였다.


호스텔에 있는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기도 하다가 밤에는 혼자 나와 거리를 걷기도 했다. 호수 근처 무대가 설치된 것을 보고 가봤는데 마케도니아 가수인지는 모르겠는데 정말 1시간 넘게 쉬지 않고 춤추면서 노래를 불렀다. 유명함을 떠나 정말 대단했다.


밥을 먹다가 한국어가 보여 가까이 가보니 ‘안여하셔요’와 ‘어셔오셔요’라고 적혀 있었다. 하루는 그냥 지나갔다가 다음날 이 근처를 지나갈 때 주인에게 이건 한국어가 아니라고 말해줬다. 깜짝 놀란 남자는 나를 부르더니 제대로 된 한국어를 써달라고 했다. 부인이 중국인인데 한국어를 할 줄 알아서 이게 맞는 줄 알았다고. 확인은 하지 못했지만 내가 일러준 대로 고쳤기를 바랄 뿐이다.


날씨는 정말 더웠다. 그래서 가끔 아이스커피를 마시곤 했는데 마케도니아에 온 이후 단 한 번도 만족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리스에서 마셨던 커피는 정말 괜찮았는데, 마케도니아는 커피가 아쉽다.

 

오흐리드에 있을 때는 정말 늘어져 있었다. 아침을 먹고 누워 있다가 낮에 잠깐 나가 걷고 그러다가 커피나 맥주를 마시는 게 전부였다. 정말 이렇게 늘어져 있어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호수 주변에는 동상이 몇 개 있다. 이때만 하더라도 아직 스코페를 가지 않은 상태라 동상 몇 개를 보고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른 여행자거리에 비해 화려함은 덜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거기다가 마케도니아는 물가도 싸니까 아무데나 들어가서 맥주 한 잔 시켜놓고 엽서를 쓰곤 했다.


호수를 따라 걷다 보면 거대한 정교회가 세인트 소피아(Saint Sophia)나온다.


그리고 좀 더 언덕을 향해 걸으면 요새가 모습을 드러낸다. 알바니아에서 봤던 거대한 요새나 성에 비하면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입장료 30디나르에 이런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오흐리드의 경치를 바라보고 내려온 후 난 호스텔을 이틀 더 연장했다.


무더운 날씨는 아이들을 호수로 뛰어들게 만든다.


오흐리드에서 얼마나 늘어져 있었는지 바로 옆에 시장이 있는 줄도 몰랐다.


무더위를 피해 숨어있던 사람들은 밤이 되면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오흐리드에 이렇게 사람이 많았었나.


저녁에는 재밌는 풍경을 볼 수 있다. 뱀을 목에 걸고 사진 찍거나 여러 코스튬 옷을 입은 사람과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당연히 돈을 내야 한다.


겨울왕국의 엘사도 만날 수 있다. 비록 무지하게 더워 어울리지는 않지만.


오흐리드에서의 마지막 날에는 한국인 여행자 길선이형을 만났다. 호스텔에서 잠깐 얘기하다가 밖으로 나가 맥주를 마셨다. 불가리아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고 하는데 그 때문인지 주변국가를 둘러보는 것이 단순한 여행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다음날 오흐리드를 떠날까 말까 고민했지만 원래 계획대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이동하는 방법은 역시 히치하이킹이었다. 오흐리드는 히치하이킹이 상대적으로 쉬울 것으로 판단하고 거리를 나섰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쏟아져 급하게 카페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때웠는데 옆에 앉아있던 알바니아 아저씨들이 나에게 호기심 어린 눈빛을 하며 질문을 쏟아냈다. 내 여행 이야기를 듣더니 내 커피값을 계산하는 것이 아닌가. 고작해야 10분 대화했을 뿐인데 여행자에게 커피를 사겠다는 그들의 호의에 감사했다.

 

출발부터 뭔가 예감이 좋았던 그날은 행운이 그대로 이어졌다. 히치하이킹을 시작한지 5분도 되지 않아 트럭을 탈 수 있었고, 난 이 친구와 2시간 반 동안 쉬지 않고 대화하며 스코페(Skopje)까지 갈 수 있었다. 거기다가 내릴 때는 점심이라도 사먹으라며 돈을 쥐어줬다. 비록 스코페 외곽에서 내려주긴 했지만 정말 고마웠다.


스코페 외곽 고속도로를 그대로 걸어 내려와 다시 히치하이킹을 했다. 10분 정도 기다렸지만 아무도 멈추지 않아 그냥 버스를 타겠다는 생각으로 걸었는데, 그때 신호를 기다리던 빨간색 차의 운전자가 나를 불렀다. 어디까지 가냐는 물음에 시내로 간다고 하니까 빨리 타라고 손짓했다. 갑작스런 상황에 도로 한 가운데로 뛰어가 그의 차를 탔고, 저녁까지 얻어 먹었다.


그리고 호스텔에 도착했을 때는 가방을 내려 놓기도 전에 맥주를 따라줘서 다른 여행자와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었다. 한국인이지만 8살 때부터 미국에서 지내 사실상 영어가 모국어인 인걸이형은 무려 4년간 여행 중이라고 했고, 독일인 카탈리나와 콘스탄트는 1주일의 짧은 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인걸이형은 나보고 영어를 잘한다고 엄청 칭찬했는데 물론 여행자들 사이에 말하는 패턴은 항상 정해져 있어 내가 영어를 잘하는 건 아니었다. 정말 슬프게도. 아무튼 새로운 사람을 만나 스코페에서의 첫날부터 즐거웠다.

 

독일인 여행자에게 스코페에서 뭐가 인상적이었냐고 물었을 때 “글쎄, 동상?”이라고 대답해 웃어버렸는데 다음날 스코페를 돌아다녀 보니 그들의 말이 진심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동상이 정말 많았다. 단순히 광장에 동상 몇 개 있는 그런 수준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동상으로 꾸며져 있다고 봐야 한다.


그 중에는 사람이 아닌 것도 있다.


빨간색 2층 버스도 인상적이었다. 마치 관광객들이 타는 버스처럼 생겼는데 여기서는 아주 흔한 일반 버스다.


그래서인지 스코페는 지루할 틈이 없었다. 매번 똑같은 동상을 보고 같은 길을 걸어도 말이다.


물론 모든 게 짝퉁일 거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보는 재미는 가득하다.


스코페에서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간 뒤 케이블카를 타고 산 정상을 올라가면 밀레니엄 크로스에 갈 수 있다. 기대했던 것보다 정상에 아무 것도 없어 조금 황당하기도 했지만 바람을 쐬면서 경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내려왔다.


다리를 건너가지 않아서 몰랐는데 반대편에도 크고 아름다운 동상은 정말 많다. 역시 알렉산더 관련 동상이 주를 이루고 있다.


사자가 귀엽다.


인걸이형은 숙소를 옮겼지만 스코페에 머무는 동안 자주 만나 같이 밥을 먹거나 돌아다녔다.


영화도 같이 봤다. 터미네이터가 궁금해 보자고 했는데 극장이 너무 형편 없었고 영화 자체도 그닥 재미 없었다. 나와 인걸이형 외에 딱 1명, 그러니까 3명이 전부였다. 나중에 버스를 타고 이동하다 보니 이곳 말고 외곽에 좋은 극장이 있는 것 같다.


호스텔에서 만난 또 다른 여행자들. 이 친구들과는 딱 하루 그것도 저녁 때 얘기를 나눈 게 전부인데 말이 잘 통해 재밌었다. 원래 침대 옆에 서서 스코틀랜드인 로라, 일본인 토모코와 대화를 나누다가 네덜란드인이 들어와 함께했다. 나중엔 토모코와 이것저것 얘기했는데 2달간 여행 중이고 이제 튀니지로 갈 예정이라고 했다. 작은 체구에 큰 배낭을 메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참 멋져 보였다.


스코페에서 다들 마트카(Matka) 계곡이 좋다고 해서 갔는데 기대치가 너무 높았나 보다. 사진에서 보던 그런 경치는 보기 어려웠다.


배를 타지 않고 산길을 걸었는데 딱히 새로운 풍경이 보이지 않아 1시간 반 만에 철수했다.


알렉산더 광장에서 사진을 몇 번이나 찍었는지 모르겠다.


저녁에는 다른 한국인 여행자 지영누나를 만났다. 우리는 만나서 저녁을 같이 먹고 인걸이형과 지영누나가 지내고 있는 호스텔로 가서 와인을 같이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나름 대화 내용이 시시콜콜하지 않은 국제정세였다는 게 좀 신기할 따름이다.


다음날 아침 드디어 인스탁스 미니 필름을 수령했다. 사실 이 필름은 미국에 있는 초등학교 동창이 보내준 건데 정말 어처구니 없게도 스코페 세관에 걸려서 받을 수 없었다. 전날 우체국을 몇 번이나 왔다갔다하고 그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이메일까지 보냈는데 다음날 다른 담당자에게는 간단하게 문서 하나 작성하고 받을 수 있었다. 아프리카를 가기 전에 이 필름이 꼭 필요했는데 친구가 보내줘서 정말 고마웠다.


스코페에서 6일이나 있었지만 다리 건너 반대편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다.


우리는 점심을 같이 먹은 뒤 각자 보고 싶은 곳을 향해 흩어졌다.

 

마케도니아에는 알바니아인도 꽤 많이 살고 있는데 스코페의 경우 다리를 건너가면 알바니아 거주지라는 것을 확연하게 구분할 수 있다. 동네 분위기며 언어며 알바니아에 있는 느낌이다. 특히 올드 바자(Old Bazar)의 경우 알바니아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데 일단 나는 성부터 올라갔다.


날씨가 너무 더웠지만 근처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성을 지나칠 수는 없었다.


성은 무료였다. 다만 다른 도시에 있던 성과는 달리 끝내주는 경치를 제공하지는 않았다.

 

성을 내려와 시장 구경을 하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날 붙잡더니 “꼬레야? 재팬?”이라고 물어보는 것이 아닌가. 한국 사람이라고 대답했더니 껄껄 웃으며 내 어깨를 툭툭 쳤다. 그리고는 복숭아를 하나 꺼내 나에게 건넸는데 웃음이 절로 나왔다. 알바니아 여행을 거의 한 달이나 했던 나는 ‘땡큐’ 대신 “팔라만데릿”이라고 말했다.


마케도니아 국기는 보면 볼수록 일본의 전범기와 매우 닮았다. 사실 마케도니아 국기는 지금과 많이 달랐는데 그리스에서 국명과 더불어 국기까지 문제 삼아 현재와 같은 형태로 바꿨다고 한다.


대부분 마케도니아라는 나라는 생소하게 생각하겠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더 테레사의 고향이 이곳, 스코페다. 마더 테레사의 생가는 지진으로 이미 파괴되고 없지만 대신 기념관은 있다.


무료인데 안 들어갈 이유가 없다. 마더 테레사의 사진과 당시 행적을 기록한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스코페에서도 6일간의 여행을 마치니 이동할 때가 왔다. 인걸이형과 지영누나는 불가리아 소피아로 간다고 해서 나도 버스를 타고 따라가기로 결정했다. 오랜만에 여럿이 여행해 들떴다.


저는 지금 세계여행 중에 있습니다. 이 글이 마음에 든다면 다양한 방법으로 도움 및 응원(클릭)을 해주실 수 있습니다. 작은 도움이 현지에서 글을 쓰는데 큰 힘이 됩니다. 세계를 여행하고 있는 배낭여행자에게 커피 한 잔 사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