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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위는 모든 게 느리게 돌아갔다. 국경에서 탄 미니버스는 50분이 지나도록 출발하지 않았다.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에서도 미니버스라 불리는 밴을 타게 되면 사람이 다 찰 때까지 기다리긴 했지만 여기는 현저히 느렸다. 게다가 정원을 초과했어도 공간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계속 사람을 기다렸다.


카롱가(Karonga)에는 4시간 후에 도착했다. 고작 50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인데 무수히 많은, 그러나 대충 나무 막대기만 세워둔 허술한 체크포인트를 지나야 했고, 그때마다 경찰의 검문 아닌 검문을 받느라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경찰에게 뇌물을 쥐어주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아무튼 카롱가에 도착하자 난 다시 혼자가 됐다.


사실 카롱가에 볼 게 있어서라기 보다는 한 번에 음주주(현지 발음으로는 므주주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까지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이곳 카롱가였다. 다만 론리플래닛에서도 아주 짤막하게 소개한 곳이라 여행자가 기대할만한 곳은 아예 없다고 봐도 된다. 일단 해가 지기 전에 숙소부터 찾아야 했다. 1시간 동안 동네를 돌아다닌 끝에 1,500콰차(약 2천원)짜리 싸구려 숙소에 체크인했다. 그리고는 600콰차(약 800원)짜리 점심을 먹었다. 카롱가는 매우 작은 작은 도시였다.


무슨 일인지 밤 12시에 경찰이 들이닥쳐서는 객실에 있는 손님의 신상을 파악했다. 눈을 비비며 일어난 나는 난데없이 여권을 내밀어야 했다. 시간이 지난 지금도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카롱가에서 며칠 더 머무를까 생각했지만 도저히 오래 머물만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배낭을 챙겨 들고 떠날 준비를 마친 나는 카롱가의 유일한 볼거리라 할 수 있는 공룡 박물관을 갔다. 카롱가에서 공룡 화석이 발견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막상 박물관을 찾아가니 너무 작고 1000콰차를 불러 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카롱가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떠나게 되었다.


난 다음 목적지로 리빙스토니아(Livingstonia)를 가고 싶었다. 배낭을 메고 있는 나에게 미니버스가 와서 태운 것까지는 좋았는데 역시 사람을 다 채우지 못해 출발하지 않았다. 그러다 미니버스가 출발하나 싶었지만 마을을 한 바퀴 돌면서 사람 태우기를 시도했다. 도로에 차는 없고, 사람도 없다. 드디어 출발하는 미니버스, 달리는 동안 왼쪽에서 보이는 호수는 하늘과 경계를 구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넓었다. 바다가 아니라 하늘 같았다.


몇 시간 뒤 리빙스토니아로 가기 위한 치팀바(Chitimba)에 도착했을 때 난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리빙스토니아로 가는 길은 일반 도로가 아닌 구불구불한 산길인데다가 올라가는 차가 거의 없었다. 2시간 뒤 어쩔 수 없이 싸구려 숙소에 체크인한 후 다음날 리빙스토니아를 가기로 결정했다. 숙소는 정말 별로였다. 그런데 마침 내 목소리를 들은 호주 할아버지가 문을 열고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머리는 산발에 마리화나에 쩔어 있는 상태였지만 한국 음식을 무척 좋아한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졌고, 말라위 콰차가 거의 없어 곤란한 나에게 환전도 해줘서 이 숙소에 묵게 되었다. 이런 작은 마을에 ATM이 있을 리가 없다.


마을은 작았지만 여행자를 맞이하는 그들은 정말 친근했다. 난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웃음을 나눴다.


우물에서 힘들게 펌프질을 하는 모습을 보고는 내가 대신 손잡이를 잡았다. 힘들게 펌프질을 해도 물을 잘 나오지 않았다. 양동이 두 통을 채우고는 헉헉 거리는 나를 보자 아주머니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마을 한 가운데서는 자연스럽게 말린 물고기나 과일 등을 파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난 어린 아이들이 팔고 있는 무언가가 궁금해졌다. 10콰차란다. 10콰차면 우리나라 돈으로 고작해야 15원 정도였다.


하나 집어봤다. 얼음 덩어리였다. 비닐 끝부분을 입으로 뜯어 얼음을 베어 무니 달짝지근한 싸구려 색소의 맛이 느껴졌다. 여기 아이들에게는 아이스크림처럼 먹는 간식이었는데 뭔가 친숙한 맛이었다. 어렸을 때 먹었던 불량식품처럼.


다음날 숙소에서 만난 헝가리인 가보쉬와 함께 리빙스토니아를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로 했다. 그 전에 아침을 해결하고자 바나나 2개를 사서 먹고, 거리에서 파는 고기 몇 점을 집어 먹었다.


우리는 빨리 리빙스토니아로 가고 싶었지만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현지인이 타는 작은 차 대신 모래를 싣고 가는 트럭 뒤에 올라탔다. 모래가 있는 트럭 뒤에 타는데도 돈을 냈다.


트럭은 느렸다. 그리고 산길은 구불구불해 트럭이 15km 떨어진 리빙스토니아까지 가는데 무려 2시간이나 걸렸다. 거의 다 와서 도로가 심하게 유실돼 트럭도 갈 수 없어 내려 걷긴 했지만 어쨌든 리빙스토니아에 왔다.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와는 달리 “므중구(하얀 사람이라는 뜻), 포토!”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조금 의외였다.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동안 이집트와 수단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사진 찍히는 것을 싫어했는데 여기서는 오히려 사진 찍어달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지금도, 그리고 차가 있어도 접근하기 힘든 리빙스토니아는 예상외로 깨끗한 마을이었다. 아래쪽 마을의 허름한 집보다도 세련돼 보이는 집뿐만 아니라 작은 정원도 볼 수 있었다.


1910년에 지어진 병원은 지금도 운영하고 있다.


리빙스토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스톤하우스(Stone House)로 지금은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무려 1905년도에 지어졌다. 백인들은 어떻게 이런 곳에 건물을 짓고 살 생각을 했는지 조금 신기했다. 물론 대부분 흑인 노예들의 힘이었겠지만.


확실히 산 위에 있어서인지 덥지 않았다.


작은 시장이 있어 구경했다.


말라위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말린 물고기가 흥미로웠다. 파리가 너무 많이 달라붙어 있어 조금 꺼려지긴 했지만 한 주먹에 100콰차라고 하길래 달라고 했다. 멸치와 매우 비슷한 맛이었지만 민물고기라 그런지 짭짤한 맛이 전혀 없다. 처음에는 맛이 심심하다 느꼈는데 점점 괜찮아졌다. 그리고 나중에 고추장과 함께 먹어봤는데 술안주로 정말 괜찮았다.


리빙스토니아를 둘러본 우리는 치팀바까지 걸어서 내려가기로 했다. 내려가는 차를 찾는 게 더 힘들어 보였고, 설령 찾는다 하더라도 언제 출발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걸어가는 편이 더 빠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려오는 길에 작은 집들이 보였고 그곳에서는 “므중구!”라고 외치며 손을 흔드는 아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사진을 찍는데 전혀 거부감이 없었던 아이들과 우연히 사진을 찍은 뒤 마침 내가 가지고 있었던 포토프린터로 인쇄해줬다.


작은 사진을 받아 든 아이는 너무 신기해하며 엄마에게 달려가 보여줬다. 고맙다는 말을 하며 신기하게 사진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엄마를 보니 뭔가 의미 있는 선물을 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머리에는 짐을 지고, 아이를 등에 업고, 남는 손으로 닭을 들고 가는 사람의 뒷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치팀바로 내려오는 길에는 말라위에서 가장 높다는 만체웨 폭포가 있다. 폭포가 떨어지는 위쪽에는 작은 동굴이 있는데 이곳은 과거 흑인 노예들이 도망쳐 숨어 지냈던 곳이라고 한다. 미리 알고 가서 봤는데 사람이 숨어 지내기 적합한 그런 동굴이 전혀 아니었다.


안전장치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폭포를 탐험하는 것은 굉장히 아찔했다. 폭포가 떨어지는 절벽을 가볼 수 있는데 괜히 미끄러질까 겁이나(케냐에서 샀던 천원짜리 싸구려 슬리퍼는 굉장히 미끄러웠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멀리서 폭포를 바라봤을 때 비로소 한눈에 들어왔고, 얼마나 거대한지 파악할 수 있었다. 분명 웅장한 맛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폭포의 가치가 덜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 이곳을 찾은 외국인은 우리 둘 뿐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관광객은 거의 없다는 건 확실했다.


이 높은 산을 짐을 지고 오르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는데 그들은 항상 먼저 인사를 건넸다. 머리에 짐을 지고 가는 사람, 아무렇지도 않게 맨발로 걷는 사람은 이곳에서 흔한 풍경이었다.


저 멀리 끝도 없이 펼쳐진 말라위 호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말라위 사람들에게는 삶 그 자체인 이 호수의 면적은 말라위 국토의 1/5에 해당한다고 한다. 물론 실제 느낌 상으로는 국토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을 정도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3시간이 걸려 치팀바에 내려왔을 때는 해가 서서히 지기 시작하는 저녁 6시였다.


동네를 걸을 때면 아이들은 나를 쫓아왔다. 사진을 찍고 보여주면 어찌나 좋아하던지.


원래 목적지도 아닌 이런 곳에 우연하게도 여행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자 뭔가 들떠 있었다. 분명 여행하기 열악한 곳인데, 여행자가 많이 찾는 곳도 아닌데, 그런데도 난 오랜만에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동안 자극을 거의 받지 못했다. 분명 나라를 이동할 때마다 문화도, 역사도, 음식도 다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아프리카’에 있다는 생각만 들었고, 나 자신도 점점 늘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간 말라위에서 열악한 환경을 경험하면서 자극을 받기 시작했다. 배낭여행자의 정신을, 괜한 웃음이 나오는 여행의 즐거움을 찾았나 보다.


깔깔 거리며 웃는 아이들을 보며 나도 웃었다.


내가 묵고 있었던 곳은 2000콰차짜리 싸구려 숙소로 차라리 텐트를 치고 싶을 정도의 딱 눕기만 가능한 그런 곳이었다. 화장실은 암담했고, 샤워실은 양동이를 가져다가 어둠 속에서 겨우 물을 끼얹을 수 있는 상상하는 최악의 숙소가 바로 이곳이었다. 그런 곳에 몇 명의 여행자가 저녁을 먹으러 들렀다. 이들은 리빙스토니아에서 이틀간 지낸 후 내려왔고, 내가 지내는 치팀바 마을에서 몇 km떨어진 곳에서 묵고 있었다. 마침 옆에서 저녁을 먹다가 이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었다. 각자 여행하고 있는 도중 말라위에서 만나 여행하고 있다는 미국인, 불가리아인, 덴마크인이었다.


그들이 떠나고 갑자기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번개와 천둥을 동반한 폭우로 보통비가 아니었다. 비가 내리는 소리로 모든 소음이 차단되고, 싸구려 숙소의 지붕에서는 물이 새기 시작했다. 잠깐 내리다 그치겠지 생각한 비는 몇 시간이 지나도 그치지 않았다. 난 방이 있는 곳까지 뛰어 갔다가 흠뻑 젖었다. 비가 그치지 않아 힘들게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커다란 바퀴벌레가 내 침대 주변을 지나가 잠이 달아났다.


언제 그랬냐는 듯 아침에 밖을 나가자 하늘은 정말 맑았다. 말라위에서 어차피 계속 보게 될 호수지만 난 이곳에서 호수를 보고 싶었다.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본 말라위 호수는 정말 바다 같았다. 모래 사장도 있고, 계속 파도가 쳤다.


호수는 대충 보고 치팀바로 돌아가는 도중 몇 명의 아이들이 나를 불러 세웠다. 사진을 찍어 달란다. 카메라를 가져대자 가만히 서고, 내가 찍은 사진을 보여주자 씩 웃는 아이들이 참 순수하다 느껴졌다.


학교를 지나칠 때는 멀리서 아이들이 나를 발견하고는 “므중구! 므중구!”라고 외치며 뛰어왔다.


“사진 찍어줄까?” 라는 말에 서로를 밀치며 포즈를 잡았다. 가만히 있으라고 해도 계속 가까이 오면서 서로 카메라에 나오고 싶어 난리였다.


나는 교실에도 초대 받았다. 그것도 선생님이 흔쾌히 들어오라고 하고, 사진을 찍어도 된다고 했다. 이 작은 교실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있는지, 그나마 이 교실에는 책상이라도 있었지 다른 곳은 바닥에 앉은 아이들도 많았다. 수업 중에 낯선 외국인을 불러줘 너무 고마웠다. 난 사진을 포토프린터로 인쇄해 선물로 전해줬다.


한 학급에 무려 100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있다.


나는 곧장 말라위에서 3번째로 큰 도시 음주주(Mzuzu)로 이동했다. 말라위 도로에는 차가 거의 없다. 그리고 도시에 도착하면 아프리카의 다른 도시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택시나 보다보다(오토바이 택시)대신 자전거 택시를 접하게 된다. 자전거 택시라니. 이곳이 바로 아프리카의 최빈국 말라위다.


원래 론리플래닛에 나와있던 숙소를 찾아가려 했으나 말라위를 먼저 여행한 용근이가 조이플레이스를 추천해줬다. 마침 내가 미니버스에서 내린 곳에서도 더 가까워 그곳으로 갔다. 숙소에 도착하니 이전에 묵었던 싸구려 숙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 놀랐고, 더 놀랐던 건 주인이 한국인이었다. 주인 분이었던 한국인은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자 더 놀라며 반가워하셨다. 다만 첫날에는 방이 없어 텐트를 치고 잤다.


숙소에서 3년간 여행하고 계신 한국인 한 분을 만났다. 나이대가 나보다 한참 위였지만 배낭여행자 사이에서 ‘아저씨’라고 부르기엔 뭔가 이상했다. 아무튼 우리는 동네를 한 바퀴 돌거나 숙소에서 같이 늘어져 지냈다. 바퀴벌레가 나오는 숙소에 있다가 깨끗하고 뜨거운 물이 나오는 숙소에서 지내니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음주주에는 커다란 마트가 있는데 그 때문인지 처음에는 굉장히 세련된 도시처럼 느껴졌다. 물론 며칠 지내다 보니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만.


음주주에서 무려 5일이나 지냈다. 그렇게 오래 있을만한 도시가 아닌데도 사진 정리한다고, 글 쓰겠다고 숙소에서 노트북 펼쳐 놓고 강아지랑 놀고, 동네 한 바퀴 도는 그런 일상 아닌 일상이 이어지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물론 몸도 마음도 편했지만 슬슬 떠날 때가 되었다.


음주주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은카타베이(Nkhata Bay)는 외국인 여행자가 많이 찾는 곳이다. 호수 바로 앞에 있는 숙소는 근사했고, 호수에서 카누를 타거나 스노클링을 즐기는 사람이 많은 곳으로 정말 휴양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유일한 단점은 숙소와 마을이 너무 멀었다. 한 번 마을로 내려오려면 큰 마음을 먹어야 했다.


은카타베이에 오니 날씨가 너무 더웠다.


은카타베이에서 며칠 지냈을 때 마을에서 우연히 다르에스살람에서 만났었던 병길씨와 재회했다. 알고 보니 전날 도착했고, 같은 숙소에 묵고 있었다. 우리는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다음날에는 같이 숙소에서 무료로 빌려주는 카누를 타고 호수를 돌았다.


숙소 주인장은 항상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는데 낮만 되면 정상으로 돌아오는지 여행자에게 인사를 건네고 아이들과 같이 수영을 즐겼다.


날씨가 더운 와중에 먹는 아이스크림은 정말 천국의 맛이었다.


아무리 여행자가 많은 은카타베이라고 해도 말라위에서는 다른 나라에서 기대할 수 있는 휴양지 수준이 아니다. 아이들은 물가에서 뛰어 놀고, 어른들은 작은 배를 타고 호수에서 낚시를 한다. 작은 마을, 먼지 날리는 거리에서 말린 생선을 파는 사람이 있는 모습이야 말로 이곳의 일상이다.


밤이 되자 약간은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하늘을 보자 반짝이는 별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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