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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히치하이킹을 하려 도로로 나오니 무거운 배낭이 어깨를 짓눌렀다. 푸에르토 마드린에서(Puerto Madryn)의 3일간 휴식은 그만큼 달콤했던 것일까? 히치하이킹으로 하루에 얼마나 이동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란 정말 어렵지만 400km정도 떨어져 있는 코모도로 리바다비아(Comodoro Rivadavia)라면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늘 그렇지만 금방이라도 차를 얻어 타고 떠날 수 있을 거라는 상상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된다. 1시간을 기다리고, 2시간을 기다렸지만 좀처럼 차가 멈추지 않았다. 빠르게 지나치는 차를 향해 손을 들기도 하고, 주유소에 가서 남쪽으로 가는 차가 있는지 물어봤지만 모두 허탕이었다. 장소를 옮겨 다시 지루한 기다림을 이어갔다. 불길한 기운이 감지됐다.


결국 아무런 성과도 없이 히치하이킹을 포기해야 했다. 하루 종일 먹은 것이라고는 비상용 식빵 몇 조각이 전부였으니 사실 배고픔을 참기가 더 힘들었다. 우리는 배낭을 짊어지고 트렐레우(Trelew) 도심을 향해 걸었다.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니 허름한 건물이 가득했던 곳이 그럴 듯한 풍경으로 바뀌었다. 


트렐레우에 유일한 배낭여행자 숙소였던 엘 아고라 호스텔(El Agora Hostel)을 찾아갔는데 우리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230페소였다. 아무리 가이드북과 가격이 다를 수는 있다 하지만 우리가 너무 비싸다고 난감해 하자 주인이 와서 무슨 일이냐고 영어로 물었다. 그리고는 200페소라고 가격을 바꿨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우리가 비싸다고 얘기해 조금 깎아준 것 같다.


허무한 하루였지만 허기진 배는 채워야했다.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간단하게 저녁을 만들어 먹었다.


찬 공기를 느끼며 걸을 때면 왜 이런 여행을 고집하는지 나 자신조차 이해하기 어렵다. 배낭이 여전히 무거운 것처럼 피로는 풀리지 않아 여전히 몸은 무거웠다. 그래도 걷는다. 오늘은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지, 어떤 모험을 하게 될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트렐레우는 제법 큰 도시라 버스를 타고 외곽으로 향했다.


우리는 다시 루타 3(Ruta Nacional 3) 도로에 섰다. 한참을 기다리다 배가 너무 고파 주유소 매점으로 갔지만 물가가 비싼 아르헨티나에서는 햄버거조차 허락되지 않아 엠빠나다 2개만 집었다. 


이번에도 히치하이킹은 쉽지 않은 듯 보였다. 2시간 동안 단 한 대의 차도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던 그때 주유소에서 나오던 커다란 트럭이 멈추더니 우리를 향해 타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신이 나서 배낭을 집어 들고는 트럭을 향해 뛰어갔다.


아르디안이라고 소개한 트럭 운전사는 우리를 태우자 무척 즐거운 듯 보였다. 아주 약간이지만 영어를 할 수 있어 간단한 대화도 가능했는데 자신은 이전에도 몇 명의 히치하이커를 태워준 적이 있다며 자랑스럽게 늘어놨다. 


이제 본격적으로 파타고니아로 접어들었는지 끝도 없이 펼쳐진 허허벌판이 계속 이어졌다.


지루한 여정이었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간단한 얘기를 계속해서 주고받고, 따뜻한 마떼차를 계속 돌려 마셨다.


원래 우리 목적지는 코모도로 리바다비아였지만 아르디안이 칼리타 올리비아(Caleta Olivia)까지 간다고 해서 조금이라도 더 먼 칼리타 올리비아에 내리게 되었다. 아르디안과 몇 장의 기념사진을 찍고 헤어졌다. 우리는 이제 잠자리를 찾아야 했다. 지도상에 있던 캠핑장은 운영을 하지 않는 것 같았고, 몇 군데의 숙소를 찾아가봤지만 배낭여행자가 묵기에 너무 비쌌다.


배낭을 메고 2시간 정도 걷다 결국 인적이 드문 해안가에 텐트를 쳤다. 사실 이곳도 조깅을 하는 사람들로 끊이지 않았는데 가로등이 비추지 않아 위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비상식량으로 챙겨둔 바게트와 햄으로 허기를 대충 채우고는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정말 너무 추웠다. 이제는 얇은 내 침낭으로 버티기 힘든 날씨였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해가 점점 늦게 떠오른다. 텐트 밖으로 나왔을 때가 아침 8시였는데도 어둑어둑했다. 추위에 몸부림을 치다 서서히 밝아오는 바다를 바라봤다. 붉게 그리고 노랗게 물드는 하늘이 환상적이었지만 우리는 꼬질꼬질한 거지꼴이었다.


우리는 칼리타 올리비아 중심이 어딘지도 모른다. 깜깜한 밤에 잠자리를 찾아 걷고, 깜깜한 아침에 도시 밖을 향해 걸었기 때문이다. 도시를 빠져나가는 도로 앞에서 다시 히치하이킹을 시작했다.


차는 많이 지나갔지만 대부분 이 근방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었다. 9시가 지났지만 여전히 해가 보이지 않았다.


1시간 정도 기다렸을까. 우리 앞에 멈춘 한 남자는 피츠로이(트레킹으로 유명한 피츠로이 산과 이름이 같은 작은 마을)까지 태워줄 수 있다 했다. 피츠로이에 도착해서 다시 한참을 기다렸다. 워낙 작은 마을인데다가 간혹 보이는 차는 우리는 빠르게 지나쳤다. 작은 마을에서 손을 비비며 기다리기를 1시간 끝에 작은 밴이 한 대 멈췄다. 서로 말이 안 통해 의사를 전달하는데 한참 걸렸지만 결국 이 밴을 타면 딱 15분 정도 갈 수 있었다. 나는 조금이라도 이동하는 편이 좋겠다고 판단했고, 우리는 푸에르토 데세아도(Puerto Deseado)로 가는 갈림길에서 내렸다.


아르헨티나 인구분포 구조상 파타고니아 지방으로 들어서면 현저하게 교통량이 줄어든다. 몇 시간을 기다렸지만 대부분 남쪽이 아닌 해안에 있는 푸에르토 데세아도로 가는지 방향을 틀었다.


아무도 없는, 아무 것도 없는 길 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기다리는 방법 밖에 없었다. 온종일 쫄쫄 굶은 우리는 어쩌면 근처 어딘가에 텐트를 치고 자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하루 거의 이동하지 못해 낙담하고 있을 때 우리 앞에 커다란 트럭이 멈췄다. 운전사는 트럭에서 내려 우리가 리오 가셰고스(Rio Gallegos)까지 간다는 것을 확인하더니 배낭을 실어주며 타라고 했다. 자신도 마침 리오 가셰고스로 간다는 반가운 말과 함께.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리오 가셰고스까지 가나, 이런 생각으로 암울했는데 이제는 650km를 한 번에 갈 수 있다니 믿기지 않았다. 매번 히치하이킹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기다리면 누군가는 태워준다.


다리오는 굉장히 유쾌했다. 장거리 이동에도 전혀 피곤한 기색이 없었고 오히려 우리와 함께 하는 여정을 즐거워했다. 영어로 의사소통은 어려웠지만 마음은 통했다고 해야 할까. 함께 사진을 찍고, 마떼차를 돌려 마셨다. 물론 그러는 동안에도 파타고니아의 황량함은 계속 이어졌다. 가끔 야마(스페인어로는 라마가 아니라 야마라 불러야 한다)와 비슷한 동물 과나코가 보이긴 했지만 똑같은 풍경이 이어졌다.


다리오의 트럭을 타고 9시간 만에 환한 불빛이 가득한 리오 가셰고스에 도착했다. 원래 이 도시의 이름은 리오 가예고스지만 아르헨티나식으로 부르면 리오 가셰고스가 된다. 아르헨티나 남쪽 끝에 있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도시 규모는 꽤 크다. 나름 산타크루스의 주도다.


다리오는 우리가 미리 알아봐둔 숙소 근처까지 태워줬다. 유쾌하고 친절한 이 친구는 이곳이 확실하냐며 몇 번이고 되물었다. 배낭을 챙겨 들고 미리 봐둔 호스텔을 찾아갔을 때가 밤 10시였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가지고 온 라면 3개 중 마지막을 꺼내 하루 처음으로 허기를 채우고 피곤한 몸을 겨우 눕혔다. 하루가 정말 길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쑤신다. 마음 같아서는 하루 더 머물면서 침대에서 뒹굴고 싶었다. 그러나 리오 가셰고스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을 뿐더러 숙소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아 떠나기로 결정했다. 아침 9시, 우리는 다시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섰다. 추적추적 비가 오는 날씨에 여전히 어둡고 차가운 공기까지, 떠남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다음 목적지는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아르헨티나 최남단에 위치한 우수아이아(Ushuaia)였다. 순진하게도 우리는 이제 우수아이아까지는 코앞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일단 주유소로 가서 장거리 이동을 하는 트럭이나 주유를 하는 차량에 다가가 우수아이아로 가냐고 묻고 또 물었다. 점심시간이 지났지만 성과가 전혀 없었다.


우리는 장소를 옮겨 보기로 했다. 반대편에 있는 다른 주유소를 가보고, 공터 앞에서 엄지손가락을 들어봤다.


길에서 몇 시간을 허비한 후 리오 가셰고스를 빠져나가는 루타 3 도로를 걷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우수아이아에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정말로 그럴 줄 알았는데, 저녁이 되어도 우리는 리오 가셰고스를 벗어나지 못했다. 지나가는 차는 많았으나 대부분 이 주변을 이동한다는 표시로 손가락을 아래로 들어 보였다.


겨울에 히치하이킹을 할 때는 여러 가지 악조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날씨가 춥다는 것은 물론이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해는 훨씬 빨리 떨어진다.


결국 단 한 대의 차도 잡지 못했다. 이제 우리는 어디서 자야 할지 걱정이 됐다. 이미 리오 가셰고스로 돌아가기에 너무 멀리까지 왔기에 텐트를 칠만한 적당한 장소를 찾아야 했다. 그러나 아침에 내린 비로 땅이 젖어 텐트를 칠만한 적당한 장소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걷고 또 걸어 도로 옆에 있는 자갈밭을 발견했다. 이곳도 젖어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적어도 진흙처럼 변한 땅 위에서 텐트를 치는 것보다는 나아 보였다. 우리 텐트를 가려줄 아무런 장애물이 없기에 날이 어두워지기만을 기다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둠보다 먼저 찾아 온 것은 짙은 안개였다. 처음에는 안개가 스멀스멀 우리쪽으로 다가온다며 신기한 풍경을 사진으로 담다가 이내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몇 미터 앞도 안 보일 정도로 안개가 짙어진 것이다. 잠깐 꺼냈던 카메라에 물방울이 맺힐 정도였으니, 이렇게 짙은 안개 속에서 텐트를 치는 건 불가능했다. 마침 지나가던 차가 우리를 보고 멈추더니 가까운 경찰서를 찾아가라 했다. 우리는 황급히 텐트를 걷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경찰서를 향해 걸었다.


이런 상황이 닥치면 정말 웃음밖에 안 나온다. 짙은 안개를 헤치고 나가도 어둠뿐이라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부터 불빛이 보였고, 우리는 당연히 이 마을에 경찰서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마침 어느 집 창문 너머로 사람이 보이자 동우는 "세뇨르(영어의 미스터에 해당하는 말로 남미에서는 흔하게 쓰인다)"라고 외쳤다. 깜짝 놀라 나온 아저씨는 경찰서가 어디냐고 묻는 우리에게 대답대신 일단 차에 타라고 했다. 그리고는 경찰서 앞까지 태워줬다. 낯선 여행자에게 베풀어준 호의가 정말 감사했다.  


경찰서에 도착한 후에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랐다. 경찰서에 가서 도와달라고 말을 해도 괜찮을지 혹은 배낭을 메고 갑작스럽게 찾아온 우리를 이상하게 보는 것은 아닐지, 이런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러면서도 호의적인 경찰들이 우리를 안에서 재워주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기대와는 반대로 경찰서에서는 잘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경찰들은 우리를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어 경찰서 옆에 텐트를 쳐도 된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안개가 너무 심해 텐트를 칠 수 없었다. 난감해 하는 경찰들과 몇 마디를 주고받다 경찰서 앞에 있는 초소를 발견했다. 혹시나 싶어 여기서 자도 되냐고 묻자 그러라고 했다. 적어도 밖에서 자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 초소를 선택했는데 이곳도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았다. 창문도 깨져있어 바람이 그대로 들어왔다.


초소에 매트리스와 침낭을 깔고 잘 준비를 했지만 아직 이른 시각이었다. 심심하기도 했고, 마침 와이파이 신호가 잡혀 경찰서 안에 들어가 인터넷을 써도 되냐고 묻다가 자연스럽게 경찰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항상 경찰만 보면 뭔가 잘못한 사람처럼 위축되는데 그런 이유로 나는 경찰을 딱딱한 존재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우리는 단 몇 분 만에 경찰과 친구가 됐다. 정말 재미있었던 것은 무슨 이유인지 우리는 경찰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는데 그들도 우리에게 뭔가를 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동우가 팔찌를 주니 열쇠고리로 되돌아왔고, 프랑스를 꼭 가보고 싶어 했던 경찰에게는 마침 내가 가지고 있던 에펠탑 열쇠고리를 주니 보온병으로 되돌아왔다. 


경찰들과 친해지니 실제 수갑이 어떤지 궁금하다는 동우에게 수갑을 채워 연행하는 이런 장난도 가능했다.


우리의 의사는 거의 상관하지 않은 채 고기를 굽더니 먹으라고 권했다.


늦은 저녁을 먹고 나서 이미 친구가 된 경찰들이 우리 짐이 어디 있냐고 물어 초소에 있다고 했다. 그랬더니 지금 당장 짐을 다 들고 오라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우리를 숙직실로 안내한 후 오늘 밤은 여기서 자라고 했다. 그렇게 안개 속에서 헤매던 우리는 따뜻한 경찰서 숙직실에서 잘 수 있었다.


달콤했던 잠에서 깨어나 아침 7시부터 히치하이킹을 다시 시작했다. 안개는 걷혔지만 여전히 너무 어두웠다. 기다리는 동안 손이 너무 시렸다. 밖에서 기다린지 1시간 반 정도 되었을 때 드디어 차가 멈췄다. 리오 가셰고스에 산다고 하는 호세, 미디움(같이 살지만 부부는 아니라 했다)은 푼타 아레나스(Punta Arenas)로 쇼핑을 하러 간다고 했다. 어두컴컴한 도로를 한참 달렸다. 그들은 아르헨티나 사람들이라 아르헨티나 국경을 지나쳤다. 아무 생각 없이 내린 곳이 칠레 국경이라는 것을 입국 도장을 받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아르헨티나 출국 도장을 받지 않은 채로 국경을 넘어버렸다.


칠레 국경을 넘은 후 조금 걷다 히치하이킹을 다시 시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대의 차가 멈췄는데 이들의 목적지 역시 푼타 아레나스(Punta Arenas)라고 했다. 푼타 아레나스까지 그리 가깝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높은 인플레이션과 비싼 수입품으로 인해 쇼핑을 하러 칠레로 많이 가는 것 같다. 우리를 태운 콴과 로베르토는 따뜻한 마떼차를 계속 권했다. 20여분의 짧은 이동 후 갈림길에서 내렸을 때는 전혀 모르는 사이인데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서로를 안고 볼키스를 했다. 여행 잘 마무리하라는 말에 울컥했다. 밖은 여전히 추웠는데 마음은 따뜻해졌다.   


이제 티에라델푸에고 섬(Isla Grande de Tierra del Fuego)에만 가면 된다. 갈림길에서 지나가는 차를 잡기 위해 손을 드는 도중 어려 보이는 한 친구도 배낭을 메고 등장했다. 남미 여러 지역을 히치하이킹으로 여행한 후 고향인 우수아이아로 돌아가는 중이라 했다. 히치하이커 사이의 예의라고 해야 할까. 우리가 먼저 왔기 때문에 잠깐 인사만 나눈 뒤 저 멀리 떨어져 가서 히치하이킹을 시작했다.


생각보다 티에라델푸에고 섬으로 가는 차는 많지 않았다. 거의 대부분은 푼타 아레나스쪽으로만 갔다. 1시간쯤 기다렸을 때 칠레 아저씨들이 우리를 태워줬는데 아쉽게도 우수아이아로 가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래도 바다를 건너 섬으로 간다고 해서 탔다.


티에라델푸에고 섬은 육지와 매우 가깝지만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야 했다. 커다란 배에 차곡차곡 차를 싣고는 출발을 기다렸다. 


혹시 우수아이아로 가는 차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갑판으로 나왔는데 아까 갈림길에서 봤던 아르헨티나 히치하이커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 친구는 운이 좋았는지 우리가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아 우수아이아로 가는 차를 바로 잡았다는 것이다. 부럽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티에라델푸에고 섬은 특이하게도 칠레와 아르헨티나 이 두 나라가 영토를 반으로 나누고 있다. 때문에 칠레 아저씨들은 섬에 도착하자마자 우수아이아가 아닌 칠레의 다른 마을로 향하게 되었고, 우리는 갈림길에서 내렸다. 엄지손가락을 번쩍 들어 작별인사를 하던 칠레 아저씨의 바람처럼 우리의 성공적인 히치하이킹이 계속 이어질 줄 알았다. 


섬을 건너왔으니 이제 우수아이아에는 금방 닿을 줄 알았다. 그런데 당연하게도 모든 차량은 우수아이아로 가지 않았고, 우수아이아까지는 400km 넘게 떨어져 있어 전혀 가깝지 않았다. 아무도 멈추지 않았고 3시간 정도 기다린 후에야 아주 잠깐, 약 5분 정도 태워준 커플만 있었을 뿐이다.


하염없이 도로만 바라보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해가 지는 것도 보게 되었다. 우수아이아까지는 하루면 충분히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정말 그럴 줄 알았다. 어쩔 수 없다. 일단 한 끼도 먹지 못한 우리는 허기도 채워야 했고, 어디선가 잠을 자야했다. 지나가는 트럭을 타고 가장 가까운 마을 세로 솜브레로(Cerro Sombrero)에 갔다. 


너무 작은 마을이라 제대로 된 식당이 있는지는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우리는 마을에서 가장 큰 슈퍼마켓으로 가서 냉동파스타, 초리소, 엠빠나다 등 이것저것 계산대에 올렸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니 이곳은 아르헨티나가 아니라 칠레였다. 당연히 칠레 페소는 단 한 푼도 없었는데 다행히 카드로 계산할 수 있었다. 허겁지겁 입으로 집어넣고, 맥주를 한 캔 마시니 조금은 살 것 같았다. 우리의 여정은 이렇게 항상 배고프고, 항상 추웠다. 


문제는 잠자리였다. 우리는 마을을 배회하다 환하게 밝혀진 교회로 들어갔다. 따뜻했다. 얼어붙은 몸이 녹자 졸음이 쏟아졌다. 교회 의자에 기대 잠이 들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여전히 교회였고 히터가 돌아가는 소리만 간간히 울렸다. 교회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해봤지만 아무도 만나지 못했고, 체육관에 가서는 저녁에 문을 닫기 때문에 도움을 줄 수 없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흔히 히치하이킹이 위험하지 않냐고 묻곤 하는데 사실은 히치하이킹을 하지 못했을 때가 더 위험하다. 목적지까지 가지 못한 채 낯선 곳에서 이렇게 방황을 해야 하니까.   


한참 고민했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텐트가 있어도 안개가 짙어 쓸 수 없는 데다가 누군가를 붙잡고 도와 달라 하기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 작은 마을이었다. 지도를 살펴보다 이곳에도 경찰서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찾아갔다. 평생 올까 말까 한 경찰서인데 또 왔다. 아무래도 24시간 근무를 하는 곳이라 경찰서를 찾아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마침 근무 중인 당직자와 말도 안 되는 스페인어로 상황을 설명하니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그러나 이내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다. 어쩔 수 없지만 우리는 한 번 더 부탁을 했다. 지금 밖은 안개가 너무 심해 텐트를 칠 수 없으니 적당한 장소만 알려주면 우리가 밖에서 자겠다고 말이다. 그러자 경찰서 옆에 있는 반쯤 개방된 차고로 우리를 안내했다. 여기라면 텐트를 치고 잘 수 있을 거라 여겨 배낭을 내려놓고 텐트를 치려고 할 때 아까 그 경찰이 잠깐 멈추라고 소리쳤다. 차고 바로 옆에 있는 집이 비어있으니 열쇠를 곧 가지고 오겠다고 했다. 덕분에 우리는 또 한 번 안개로 가득한 야외가 아닌 실내에서 따뜻하게 잘 수 있었다.


다음날 배낭을 챙겨 들고 밖으로 나왔다. 아침이 되면 날이 밝아져야 하는데 이제 막 자정으로 접어든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어두웠다.


물론 히치하이킹이 쉬울 거라 생각했던 것은 아니지만 리오 가셰고스에서 출발한지 이틀이나 지났는데 우수아이아에 도착하지 못하다니, 이번 히치하이킹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구간이었다.


날은 9시 반이 되어서 점점 밝아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추워 손을 비비고, 발을 동동 굴렀다. 한국은 폭염으로 고생한다고 하는데 지구 반대편에 있는 우리는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소식이었다.


수시로 차는 지나갔지만 대부분 이 근처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2시간 정도 기다렸지만 전혀 성과가 없었다. 대신 몇 번 지나치면서 우리를 보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빵과 과일을 주더니 먹으라 했다. 너무 배고파 사양할 생각도 못했다.


이러다가 오늘도 우수아이아로 가지 못할 거라는 끔찍한 상상을 하게 되었다. 또 안개가 주변을 가득 메웠다. 대책이 필요했다. 지도를 보니 우수아이아로 가는 다른 길이 있음을 확인했다. 일단 차가 더 많이 자나다닐 곳으로 예상되는 지점으로 가서 히치하이킹을 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지나가는 차를 잡아 갈림길까지 이동한 후 다시 히치하이킹을 시작했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났을 무렵, 드디어 차가 멈췄다. 뛰어가 목적지를 물어보니 우수아이아란다. 우리는 너무 기뻐 소리를 질렀고, 태워주기도 전에 이들과 사진을 같이 찍었다. 데이빗과 하비엘이라고 했던 두 친구는 우수아이아에서 근무하는 경찰이라고 했다. 우리도 리오 가셰고스에 경찰 친구가 있다고 얘기하니 웃음이 터졌다.


다시 아르헨티나 국경을 넘고(출국 도장이 없었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세상의 끝이라는 우수아이아를 향해 달렸다. 생각보다 우수아이아는 훨씬 멀어 6시간이나 걸렸다.

환한 불빛으로 가득한 도시가 눈에 들어오자 감격에 겨웠다. 모험을 하겠다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부터 히치하이킹을 시작한지 14일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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