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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베트남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씨클로는 거리 곳곳에 있었다. 자전거 형태로 관광객들이 반쯤 누운 상태로 거리를 구경할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뒤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자전거 끄는 사람을 앞에서 마음 편하게 씨클로에 앉아 있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걸어다니는게 마음 편했고, 사실 이런 곳에 돈을 쓰는건 무척이나 아까웠다. 하지만 마음이 불편해도 이런 사람을 위해 씨클로를 타줘야 하는게 그들에게는 돈벌이가 되니 참 아이러니 했다. 


베트남의 전쟁 박물관은 통일궁에서도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걸어서 충분히 이동할 수 있었는데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베트남 전쟁 박물관 입구에 있었다. 티켓을 구입해야 하나 이리저리 살펴봤지만 그냥 입장이 가능한듯 보였다.

전쟁 박물관은 가운데 마당을 중심으로 몇 개의 건물이 위치해 있는데 입구쪽에 들어서자마자 오른편에는 전쟁 당시의 사진이나 역사에 관한 기록물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마당에는 비행기와 탱크와 같은 전쟁 당시의 무기들이 배치되어있다. 정면에 위치해 있던건물에는 전쟁 후 사진과 무기들이 전시되어있었고, 왼쪽 건물에는 고문실이나 감옥을 재연해 놓고 있었다.


먼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자연스럽게 오른쪽에 있던 건물로 들어가게 되었다. 베트남 전쟁이 일어났던 당시의 사진이 잘 전시되어있었다.

베트남 전쟁은 한국 전쟁과 같은 비극 중의 비극이었다. 계속되는 전쟁으로 베트남은 폐허가 되었고, 수많은 피해는 결국 일반 국민에게 돌아갔다. 베트남에 도착하기 전만 하더라도 이러한 사실을 잘 모르고 갔지만 여행을 하면서 이 비극의 역사를 배워가게 되었다. 나는 배낭여행을 통해 한 나라의 역사를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베트남전 하면 한국 국군의 파병이 가장 많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북베트남이 통일한 지금 한국군의 파병이 그리 좋은 입장이 아닐테지만 지금은 베트남과 가장 우호적인 나라가 되어있다. 실제 동남아 배낭여행을 하면서 한국에 대한 인식이 가장 좋았던 나라는 베트남이었다.

우리나라와 참 밀접한 관계을 맺었던 베트남이었는데 그게 바로 전쟁이었다. 아직도 주변에서는 베트남전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그렇게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었는데 한국 전쟁 직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베트남도 전쟁의 비극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었다.


사진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전쟁의 참혹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엄청난 폭격, 미사일, 부상자들의 모습까지 하나의 사진도 눈을 떼지 않고 지켜봤다. 전쟁이란 정말 무서운 것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이들의 아픔을 나 역시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진을 정말 방대할 정도로 많았다.


밖으로 나와 전쟁 중에 사용한 무기들을 구경했는데 박격포가 가장 먼저 눈에 띄였다. 군대에서 81미리 박격포를 메고 훈련 뛰던 생각이 났다. 물론 이 박격포는 81미리가 아니라 4.2인치 박격포였는데 그냥 박격포라서 반가웠다.


실제 전쟁 당시에 쓰였던 것인지는 확인을 하지 못했지만 아마도 전시때 물건들이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베트남 전쟁이 가져다 준 것은 대체 뭐란 말인가? 일반 국민이 무슨 잘못인가? 이념과 사상따위가 결국 이들을 사람의 모습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베트남의 아픔을 느끼기 시작했다.


전쟁은 죽이고 또 죽이고 그래도 안 되면 또 죽이는 그런 싸움이다. 그 상대가 같은 민족일지라도 말이다.


베트남전 당시의 무기가 전시되어있었다. 베트남 전에 개입한 미군의 무기가 보인다.


전쟁이 끝났지만 그들의 삶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베트남 그들의 아픔이었고, 동족간의 비극적인 전쟁이었기에 한국전쟁이 너무나 쉽게 떠올랐다.


1973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던 사진이다. 이전에도 몇 번 봤던 사진이었지만 이곳에서 만큼 강렬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전쟁의 공포가 그대로 느껴졌던 사진을 보고 있으니 나 역시 그들의 울부짖음을 들리는 것 같았다.


전쟁의 아픔이 있었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도 한국인처럼 근면 성실해서 그런지 위기를 극복할 줄 아는 민족이었던 것이다.


보기에도 섬뜩한 느낌을 주던 건물은 교도소나 고문실의 역할을 했던 곳을 재연한 곳이었다.


고문을 하는 모습이 너무나 상세하게 나와있어 끔찍했다. 당시 어떤 고문이 행해졌는지 자세한 그림이 그려져있었다.


감옥을 지키고 있던 사나이의 발에는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보기만 해도 섬뜩한 단두대가 전시되어 있었다.


모든 전시실을 둘러본 나는 방명록을 보고 다시 한번 눈물을 삼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빼곡하게 적힌 영어 밑에 한글로 적힌 '이 사진들이 다 거짓이었으면 하는 소망...' 을 곱씹어 읽었다. 옆에 어떤 외국인은 이게 무슨 뜻이냐고 나에게 묻기도 했다.

베트남인은 대체적으로 친절하고 성실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전쟁의 아픔을 딛고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하여 초고속으로 성장하다 최근 경기침체의 늪에 빠지긴 했지만 주변국가보다 확실히 발전가능성이 높은 그런 나라이다. 베트남을 여행하다 보니 그리고 자연스럽게 역사를 접하다보니 우리나라와 너무도 비슷하다고 느끼져 정이 가게 되었다.

전쟁의 아픔이 현재까지 남아있는 나라, 그리고 이념과 사상의 대립으로 인해 남과 북이 갈라져 동족간 전쟁을 펼쳤던 나라, 원치 않게 주변국가나 미국의 개입으로 전쟁을 치렀던 나라로 우리나라와 너무도 비슷했다. 배낭여행을 하지 않았다면 몰랐던 사실들이었을텐데 베트남의 아픔을 나는 이해하기 시작했다.


너무도 예쁜 베트남 어린이들에게는 절대 이런 전쟁의 비극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하고 싶다. 물론 한국인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베트남의 건강한 미래를 바라는 것 뿐이다.


Love &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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