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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다시 봐도 정말 구석진 골목길에 우리 숙소가 있었다. 이런 구석진 골목길이니 가격이 저렴할 수 밖에 없나 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전날 구찌터널 투어를 예약했던 여행사 앞으로 갔다.

베트남은 태국만큼 여행하기 편했다. 이동할 때는 오픈버스를 이용해서 저렴하게 도시를 이동할 수가 있었고, 도시에는 숙소가 모여있는 여행자의 거리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요 볼거리는 투어를 신청해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투어의 가격도 대부분 저렴한 편으로 구찌터널 투어 요금은 하루에 4달러 밖에 하지 않았다. 물론 베트남의 최대 볼거리였던 하롱베이같은 경우는 20달러가 넘어가는 비싼 편이었지만 소소한 투어는 매우 저렴했다고 할 수 있다.


버스는 구찌터널 투어 신청자들을 태우고 호치민 시내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외국인을 가득 태운 버스에는 나이가 조금 있었던 가이드 아저씨가 있었는데 버스가 출발할 때부터 도착할 때까지 구찌터널이나 베트남의 역사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를 했다. 물론 너무 빨리 영어로 말해서 알아 듣기는 힘들었다. 그렇게 조금 듣다가 졸다가 보니 2시간만에 구찌터널에 도착했다.


구찌터널 투어는 4달러였지만 입장료는 별도였다. 입장료는 자그마치 7만동을 냈다.


구찌터널에 들어가기 전 베트남전 당시의 작전지도와 상황 등을 설명으로 들었지만 알아 듣지는 못했다. 아까 그 가이드 아저씨는 여기서도 쉬지 않고 설명하셨다.


본격적으로 구찌터널을 향해 이동했다. 구찌터널은 베트남전 당시에 울창한 숲, 정글과 같은 곳에서 땅굴을 파고 전쟁을 벌였다고 한다. 이때 신출귀몰하게 나타나는 베트공 때문에 미군은 고전을 하게 되었고 고엽제까지 뿌리면서 전쟁을 유지했지만 결국 유일하게 미국이 승리하지 못한 전쟁으로 기록되었다.


전쟁 당시 폭격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구찌터널 투어는 이동하다가 설명을 듣고 또 다시 다음 장소로 가서 설명을 듣는 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작은 사람이 들어가기에도 너무나 비좁아 보였던 구멍이 보였다. 아마도 이곳에서 매복하고 있다가 적이 나타나면 습격하기 위한 용도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관람객들도 잠깐이지만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다. 뚜껑까지 덮고 나뭇잎으로 가리면 완전한 위장이 가능했다.


정말 이렇게 작은 구멍 사이 사이로 이동하며 생활했다는게 믿기지 않는다. 그만큼 전쟁은 치열했다는 이야기로 설명이 된다. 대체 사람이 어떻게 지나다니는거야?


숲을 따라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설명을 하는 아저씨가 여기 친구들이 있다며 소개시켜줬다. 전쟁 당시의 모습을 살짝 엿볼 수 있는 밀랍인형들이 보였다.


편지쓰는 친구와 사진 한 장 찍었다.
 

탱크에 올라가 사진을 찍는 것도 주요 코스 중 하나였다.


다음은 베트남 전쟁 당시에 사용되었던 함정들인데 보기만 해도 끔찍한 장면을 그림으로 세밀하게 묘사했다. 걷다가 찔리는 사람, 함정에 빠져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니 무서웠다. 


베트남전에 쓰였던 함정들이었는데 찔리면 정말 아플 것 같았다.


폭탄을 만들고 있던 아저씨들도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다른 분이 설명을 해주셨는데 단순히 폭탄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미군의 불발판을 주워 재활용을 하는 장면이라고 한다.) 다양한 폭탄을 만들고 있었다. 전쟁이 오래 지속될 수록 이런 터널 속에서 생활도 하고 무기도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진 듯 했다. 


한 바퀴 둘러본 후에 잠깐 쉬는 시간을 가졌는데 매점과 기념품 가게가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실탄을 사용하는 사격장이 있다는 사실이다. 총쏘는 것까지 관광 상품으로 만들었다는게 신기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군대에서 총은 수백발 쏴 본 만큼 크게 관심이 가지는 않았다. 어차피 예비군에 가서도 총을 쏠텐데 여기서 돈을 내고 쏠 이유는 없었다.


30분가량 쉬는 시간을 가진 후 이제는 구찌터널을 체험하러 갔다. 구찌터널을 보기만 하면 재미가 없을텐데 직접 들어가 보는 시간도 있었던 것이다. 

구찌터널의 입구는 생각보다 넓어서 쉽게 들어갈 수 있는데 이는 관광객들을 위해서 일부러 넓혀 놓은 상태라고 한다. 원래는 터널이 정말 좁았지만 관광객들을 위해 터널 내부까지 넓혀 놓았다. 


구찌터널로 들어간다!


처음에는 계단이 있어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었지만 서서히 몸을 숙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구찌터널의 내부에는 앉은 상태인 일명 오리걸음으로 걸어갈 수 있는데 터널인만큼 안은 너무 깜깜해서 앞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앞사람을 놓치게 되면 어디로 이동했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는데 거의 눈을 감고 이동하는 수준이었다. 

사실 구찌터널에 들어가서는 '이 정도면 괜찮은 수준인데?'라며 터널을 얏봤는데 점차 숨쉬기도 답답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어둡고 좁고 숨쉬기 힘들고, 오리걸음으로 걷느라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터널은 오리걸음으로 걷는 것도 너무 편하는게 아니냐며 점차 어려운 코스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앞에 있던 사람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엉덩이가 찍히고 말았는데 이곳부터는 오리걸음도 용서치 않았다. 기어서 다녀야 했다. 넓혀 놓은 길이 이렇게 좁았다면 과거 베트남전 당시에는 얼마나 좁은 곳을 쉴틈없이 이동했했는지 상상만해도 답답했다. 

"후와아~"

밝은 빛이 보이기 시작했고, 터널을 나오자마자 온몸을 적셨던 땀을 시원한 바람이 식혀주었다. 아주 잠깐 체험이었지만 너무도 답답한 터널 생활은 바깥 공기를 너무도 그립게 만들어 줬다. 


물로 손도 씻고 세수도 했다. 역시 바깥 공기가 좋은 거였다.


베트남전 폭탄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렇게 구찌터널 관람을 마쳤다. 구찌터널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도 가이드 아저씨는 쉴 새 없이 설명을 했다. 너무도 피곤한 나머지 졸기 시작했는데 호치민 시내로 돌아가지 않고 수공예 기념품을 만드는 공장으로 향했다.


베트남 기념품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구경을 했다. 베트남 사람들은 손재주가 좋다고 하는데 역시 그 말이 사실인듯 했다.


밖에는 변덕스러운 동남아 우기 날씨답게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다.


완성품에 가까운 모습이다.


수공예 기념품 만드는 과정을 보았으니 그 다음에는 역시 기념품 가게가 있었다. 규모가 꽤 큰편이었는데 물건을 사도록 강요받는 그런 기분 나쁜 감정을 전혀 들지 않았다. 그저 베트남의 기념품을 한 곳에서 모아서 볼 수 있어서 더 좋았다. 물론 구입하지 않았다. 일반 기념품 가게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물건들이 많았다.


특히 나는 베트남 전통의상이나 그와 관련된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구입했으면 좋겠지만 여태까지 기념품같은 것은 거의 구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구입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다음에 더 괜찮은 물건이 있다면 사겠다고 생각하고 가게를 나왔다.

호치민까지 돌아오는 동안에도 쉴새없이 떠들었던 가이드 아저씨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하루 종일 설명하고 안내하는 그의 모습은 프로다웠다. 재미있는 농담을 섞어가며 이야기를 해줬는데 덕분에 주변에 있던 외국인들도 크게 호응을 했다. 

이전까지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호치민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의 그의 말은 확실하게 기억한다. 베트남은 라오스와 캄보디아와 같이 3cock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닭이 cheap cheap cheap하고 우는 것처럼 물가가 싸다는 것이었는데 하지만 이제 베트남은 가장 높은 성장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나라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의 말을 듣고 저절로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