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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는 2006년 해외봉사를 다녀온 후 2008년에 개인적으로 다시 같은 곳을 방문한 이야기입니다.


트라이시클을 타고 오늘도 달린다.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오는 한국 학생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이렇게 트라이시클을 타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사람은 드물겠지? 학원 티처들도 내가 혼자 돌아다니는 것을 알고, 무척 신기하게 봤다.



바나나 나무와 높이 솟은 코코넛 나무들이 즐비한 이 곳의 풍경은 나를 또 설레게 한다. 사실 할 것도 없는 이 곳을 매번 방문하는게 이젠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누가 오라고 한 것도 아니었고, 자원봉사를 하러 가는 것도 아니었는데도 나에겐 어떤 의무감이 형성되어있는 듯 했다.

마을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기반 시설이 없다. 아예 없지는 않지만 섬 전체에 1개 있던거 같던 철물점이나 빵집 빼고는 대부분 슈퍼를 운영한다. 작은 마을에 어찌나 슈퍼가 많은지 그냥 이 집도 슈퍼고 저 집도 슈퍼다. 슈퍼라고 해서 물품이 많은 것도 아니다. 필리핀의 대형 백화점에서도 그랬지만 이 곳에서도 낱개 단위로 판매를 주로 한다. 예를 들면 껌 1개, 담배 1개 이런식으로 말이다.


내가 주로 돌아다녔던 골목의 슈퍼 할머니와 손녀. 슈퍼에서는 각 종 야채와 빵, 바나나 등등을 판매하고 있다. 외부인인 내가 사먹을만한 것은 살짝 시원한 콜라가 전부다. 냉장고에서 꺼내준 콜라도 대부분 미지근하기 마련이다.


내가 몇 봉지 들고간 사탕에 아이들은 행복해했다. 가운데 있는 폴은 2006년 자원봉사 당시에 몇 몇 사람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았던 아이였다. 그래서인지 우리들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 만났을 때 나를 기억하는데 잠시 생각에 빠졌던 것은 사실이다.


올랑고에서는 옆집의 옆집이 친척이고, 이웃이다. 돌아다니면서 옆집도 친척, 저 멀리 있는 집도 친척이라는 말에 가끔은 깜짝깜짝 놀란다.


가끔은 혼자와서 그런지 내가 여기서 뭐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자원봉사를 했던 멤버들 중 한명이라도 같이 왔더라면 더 즐겁지 않았을까라는 외로움에 빠진다.


천진난만한 아이들 이미 사탕을 한 움큼씩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항상 시끌벅적하다. 나도 잠시 껴서 줄넘기에 도전해 보지만 10개정도 넘다가 이내 내 다리에 걸리고 만다. 이 무더운 날에 줄넘기 몇 번 뛰었다고 숨찰려고 한다.


아이에게 사탕을 하나 건내준다. 건내주면서 아이는 좋아하는데 내가 좀 기분이 이상해졌다. 왠지 애들이 너무 불쌍해서 내가 사탕 몇 개 주려고 온 사람같다. 이런 의도는 아닌데 사탕주려고 온 사람도 아닌데 그냥 그렇게 느껴졌다. 괜한 생각인지도 모른다.

가만히만 있어도 너무 더워서 그늘진 곳에서 쉬고 있을 때 폴이 나에게 Children Center에 가자고 했다. 다시 그늘진 곳에서 쉬고 있을 때 아이들은 심심했는지 안에 들어가서 인라인스케이트를 빌려가지고 나왔다. 많이 익숙해보이는 이건 바로 우리가 기증했던 물품이었다.


2006년에 우리가 이 곳에 왔을 때 우리 멤버 중 한 명이 다량의 인라인스케이트를 기증했었는데 아직도 잘 이용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인라인스케이트는 이름을 적고 탈 수 있었다. 우리의 물품이 이렇게 활용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아주 뿌듯했다.


기증했을 당시 아이들은 탈 줄도 몰랐는데 이제는 익숙한가 보다. 양말도 신고, 인라인스케이트를 발에 꽉 조이는 모습이 아주 자연스럽다. 


꼼꼼하게 끈을 꽉 묶었던 폴


인라인스케이트를 다 착용한 뒤 아주 자유롭게 타고 다니기 시작했다. 비록 땅은 울퉁불퉁하지만 마을의 이곳 저곳을 누비며 다니기 시작했다.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느라고 정신이 없어서 갑자기 다 떠나버리다니 매정한 녀석들이다.


내가 들고 다닌 캠코더를 보면서 항상 사진 찍어달라고 말한다. 이 아이들에게 사진은 정말 재밌는 도구인것 같다.


이 곳에서는 닭은 먹는 치킨이 아니라 애완계의 의미가 크다. 애완계가 싸움을 위한 싸움닭인 슬픈 현실이지만 어쨋든 강아지는 그저 먹을 것을 찾으러 어슬렁 거리는 녀석에 불과하지만 닭만큼은 아주 정성스럽게 키운다.


내가 아는 아이들을 만났는데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순식간에 많은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나도 좀 찍히겠다고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덕분에 이렇게 많은 아이들을 찍게 되었다.


길을 걷다보니 내 이름을 정확히 부르며 아는척을 하던 여인이 있었다. 제시카라고 부르던 아이는 이미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었는데 솔직히 나는 도무지 기억이 안 났다. 어찌되었든 나를 기억해준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너무 고마운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이후에는 지나가다가 자주 보며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았는지 아이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우리가 기증한 인라인스케이트를 잘 이용하고 있어서 너무 반갑고 뿌듯했다.

세부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와서 몇 몇 아이들과 인사를 하고 다음주에도 또 오겠다고 했다. 오토바이를 잡아타고 부두까지 갔다. 올랑고에서는 트라이시클이라는 교통수단이 있긴 하지만 그냥 오토바이도 교통수단이다. 10페소(약 300원)만 내면 부두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갈 수 있다.


막탄으로 돌아가는 배표를 사고 바다를 바라보며 걷고 있는데 무척 익숙한 배가 보였다. 지난 번에 배를 타고 올랑고에 오던 중에 엔진고장으로 30분이 넘게 바다 한가운데서 표류했던 그 배였던 것이었다. 선장아저씨도 나를 알아보는지 이리 오라고 했다.

나는 장난삼아 배 이제는 멀쩡하냐고 했는데 오늘 또 고장났다고 했다. 배가 고물이긴 고물인가 보다. 내가 이 곳에 온 이유가 친구들을 만나러 왔다고 하니까 자신도 여기서 산다고 했다. 놀라웠던 것은 코리나의 친척이라고 했다. 역시 이 곳은 친척만나기 참 쉽다.


이렇게 만난 것도 기념인데 사진 찍어주겠다고 하자 흔쾌히 좋다고 했다. 이 아저씨들을 만나서 잠시 이야기했을 뿐인데 무척 재밌었다.


막탄으로 가는 배는 다른 배여서 옮겨 타고 막탄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배 위에서 거대한 해가 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