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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는 2006년 해외봉사를 다녀온 후 2008년에 개인적으로 다시 같은 곳을 방문한 이야기입니다.


어김 없이 나는 올랑고로 향했지만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이 실감 나질 않았다. 항상 상상만했던 이 곳을 다시 왔는데 이제 또 헤어짐이라니 시간이 너무나 빠르다고 느껴졌다.


산 타로사 고등학교에 들러 코리나와 만났다. 다시 만났을 때 뛰면서 좋아했던 코리나에게 이제 호주로 간다고 하니까 무척 아쉬워했다. 코리나는 공항까지 마중나오고 싶어했는데 수업때문에 못 가게되었다며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내가 필리핀에서 체류한 기간은 8월부터 11월까지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방학때처럼 여유롭지 않았다.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오토바이를 잡아타고 산빈센트로 향했다. 마을로 가서 만나는 사람마다 나는 세부에서 인화해온 사진을 나눠젔다. 마지막이라 사진을 꽤 많이 인화해온 탓에 일일히 찾아다니면서 사진을 줬다.

저녁까지 무얼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마을을 돌아다니기만 했다. 밤이 되자 미리 만나기로 했던 엘머와 맥주 한잔을 마시러 갔다. 이 날 필리핀의 휴일이라 마을은 유난히 더 조용했고, 얼마 없는 가게도 거의 다 닫혀있었다. 엘머의 오토바이를 타고 산타로사로 향했다.


과자 몇 개를 집어들고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했다. 엘머는 엔지니어 자격증을 땄으니 다른 나라에 가서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이제 곧 호주로 떠난다는 소식을 전했다.


2006년에도 느꼈지만 엘머 참 착하다. 수줍음이 무척 많았던 친구이지만 착함이 너무나 쉽게 느껴졌다. 배불러서 못 먹을정도로 맥주를 마셨지만 우리는 돌아오는 길에 빵집에 들러 도너츠를 먹었다.


밤 에 맥주를 마신 탓인지 정신없이 쓰러져 잤다. 하지만 새벽 5시만 되면 울리는 닭울음소리에 깰 수밖에 없었다. 올랑고에서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여기는 나 빼고 전부 평상시의 일상이 시작된다. 원래 나는 오전 중으로 세부에 돌아가려고 했기 때문에 아침 일찍부터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려고 했다. 마지막으로 하나라도 더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참 이래저래 많은 시간을 보냈던 폴네 가족, 내가 도착하니 다들 학교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제 며칠 뒤면 호주로 떠난다고 하며 마지막으로 사진 찍어주겠다고 했다. 학교에 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내가 손을 흔들어 줬다.

나는 우리의 기념 건물이라고 할 수 있는 Children Center로 와서 나의 마지막 선물을 남겼다. 뭔가 보탬이 될만한 것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가난한 나로써는 할 수있는게 많지 않았다. 그래서  찍었던 사진들을 액자로 만들어서 벽에 걸어 놓으면 나 뿐만 아니라 우리를 기억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사진 편집을 잘 못하는 나는 그저 사진을 큰 사이즈에 넣고 붙이는 수준이었지만 커다랗게 만들고, 인화한 뒤 백화점에서 액자를 2개 샀다.


2006년에 찍었던 우리들의 사진과 2008년에 내가 다시 방문하면서 찍었던 사진을 모아 액자에 담았다. 그리고는 못을 박고 액자를 걸어놨다. 우리를 잊지 말라고 말이다.


2006년 우리의 모습을 잊지 말라고 나는 글씨 한 줄도 같이 넣었다. 'Don't forget our group'


2008년 다시 왔던 이 곳, 이제 아이들이 사진을 보면서 나를 기억할까?


내가 페인트칠 했던 곳을 다시 방문했을 때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떠나야만 했다.


내가 오기 며칠 전에 왔었던 자원봉사자들이 푸초등학교 벽에 그렸다.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도 이 사람들과도 만날 수도 있었을테고 그럼 페인트칠이라도 도왔을지도 모르겠다. We are friends라는 말이 나의 가슴을 후벼팠다.


푸 초등학교에 가니 폴을 비롯해 익숙한 아이들이 뛰놀고 있다. 이상하게 여기는 수업이 무척이나 자유롭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푸초등학교였다. 비록 티나가 수업을 하고 있었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것 같고, 사진을 몇 장 찍어줬다. 참 열악한 환경이지만 나는 사진을 찍고 보여주는 것밖에 할 수 있는게 없었다.


티 나가 점심을 먹고 가라는 말에 다시 마을로 돌아와 걸었다. 항상 시끌벅적한 농구코트였는데 유난히 한적해 보였다. 특히 이 농구코트에서 많은 추억이 있었던 특별한 장소였다. 내가 있었을 당시는 크게 행사를 하지 않아서 조용하기만 했다. 2006년 우리가 있었을 때는 크리스마스 시즌이었기 때문에 항상 마을이 시끄러웠었다.


점 심을 먹기 위해 간 곳은 티나네 집 바로 옆에 새로 지은 집이었다. 아마도 필리핀은 집을 새로 지으면 사람들을 초대하고 종교적인 의식을 하는것 같았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성수같은 것도 집 주위에 뿌렸고, 그 성수를 뿌리는 사람 뒤로 많은 사람들이 따라다녔다. 그런 의식이 끝난 뒤에는 동전을 뿌렸는데 당연히 어른이나 애나 돈 줍기에 여념이 없었다. 티나가 하나 주워서 나에게 주더니 이건 행운의 동전이라면서 잘 간직하라고 했다.


필 리핀에서 가장 먹고 싶었던 것은 바로 레촌이었다. 레촌은 돼지를 통째로 구운 요리인데 이게 양도 엄청 많고, 가장 맛있는 요리라고 한다. 레스토랑에서 먹어보긴 했지만 이렇게 진짜 레촌을 먹어 보기는 처음이었다. 통째로 배달되어온 레촌을 거대한 칼로 자른 뒤에 다시 또 잘게 잘라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나는 이때다 싶을 정도로 얼른 받고, 콜라도 받아서 먹었다. 오랜만에 포식하는 그런 기분이었다. 아니면 앞으로 호주에서 거지생활을 할 거라는걸 알고 그랬는지도 모른다.


맛있는 밥을 얻어먹고 너무나도 고마웠던 티나와도 작별인사를 했다. 내가 올랑고에 머무는 동안 재워주고, 먹여줬다. 티나는 나보고 또 오라면서 손을 흔들었다.


엘머네 집으로 가서 엘머와도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 엘머의 어머니도 잘가라는 인사를 전해주었다. 뭔가 허전했다. 이대로 가는게 너무 허전했다.


이젠 진짜 헤어짐이었다. 익숙했던 이 곳도 이젠 또 작별이다.


마지막으로 폴네 집에 들렀다.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하니 폴네 어머니가 나에게 물었다. 또 올거냐고...
그 런데 나는 그 물에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 자신도 그럴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거짓말로 또 오겠다고 해도 되는데 나는 그런 거짓말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물음에 대답한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폴네 어머니는 나한테 너라면 분명히 올거 같다면서 앞으로의 일정에 행운을 빈다고 해주었다.


나는 뒤를 돌아보며 한마디 했다.
'안녕 올랑고'


필리핀에서 3개월가량 있는 동안 나는 거의 매주 올랑고를 찾아갔다. 이젠 마지막 배에 몸을 싣고 헤어짐을 실감했다.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날 줄 알았다. 그런데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2006년 헤어졌을 때는 엄청나게 내린 비를 원망하며 이런 헤어짐은 원치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꼭 다시 오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너무도 화창했다. 너무나도 화창했던 나의 두 번째 헤어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