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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나는 사우스뱅크쪽에서 차이나타운 방향으로 걸어갔다. 명훈이는 나와 다르게 학원을 다니고 있었고, 나는 다시 내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할 방황자였다. 호주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먹고 사는 걱정에 가슴이 턱 막히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처음 온 나라인데 즐기면서 사진 찍고 다닐 여유조차 나에겐 없었다. 


이른 아침 다리를 건너는데 어찌나 덥던지 점점 뒤에 메고 있던 노트북이 압박으로 다가왔다. 자꾸 그러면 안 되는데 고작 돈이 없다는 이유로 호주에 괜히 왔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호주에서 내딛 나의 거침없는 첫발은 기대감과 설레임보다는 두려움이 더 크다는 뜻이었다. 


브리즈번강도 색깔이 태국의 짜오프라야강과 다를바 없어 보였다. 들은 이야기로 최근에 비가 많이 와서 저렇다고 한다. 


참고로 이 다리를 오르는 투어도 있다. 참 신기한게 호주는 별의별거를 가지고 여행 상품을 만든다. 호주의 대표적인 상징물인 하버브릿지를 오르는 투어가 있는데 브리즈번의 이 다리 역시 같은 것 같다. 문제는 가격도 비싸긴 하지만 딱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차이나타운 근교를 돌았는데 정작 중요한 차이나타운쪽을 못 갔다. 근처를 돌다가 퀸 스트리트로 넘어왔다. 지도상으로도 그랬고, 실제로도 브리즈번이 큰 도시는 아니었지만 하루 종일 걸어다니는데는 꽤나 피로했다. 


퀸 스트리트는 브리즈번의 가장 번화한 중심가이다. 차량도 들어올 수 없는 길인데 이 곳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배가 고프다는 생각에 근처 푸드코트에 가서 스시롤을 2개 사먹었다. 스시롤은 생긴건 완전 김밥인데 굉장히 김밥보다 훨씬 두꺼웠다. 이거 보통 1개에 2~3불정도 한다. 비싸다. 

스시롤을 먹고나니 또 할게 없다는게 너무 처량했다. 퀸 스트리트 중앙에 가만히 앉아 사람들 지나가는거 구경만 했다. 나는 이렇게 하루를 또 보내고 있었다. 

일자리를 알아보려 유학원 가서 인터넷도 해보았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이렇게 하루 하루 지날수록 걱정되는 것은 단연 돈이었다. 가지고 있는 돈은 거의 없고, 그렇다고 호주에서 돈을 벌어서 생활하면 되니까 걱정하지 말라며 큰 소리 뻥뻥쳤는데 돈 달라고 하기도 좀 그랬다. 특히나 방 값 나가는건 한번에 24~30불 가까이 나가니 타격이 무척 컸다. 


그래. 우선 백팩에 돌아가서 좀 더 생각해보자! 아직 호주에서 일주일도 안 되었는데 이렇게 기운빠지는 소리만 할 수는 없잖아. 


나는 다시 웨스트엔드쪽으로 돌아가는 다리로 건너갔다. 역시나 돌아갈 때도 걸어갔다. 순전히 나의 감만 믿고 백팩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걸어가면서 백팩을 옮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있었던 곳은 나와 대화가 통하는 상대도 아직 없고, 무엇보다도 브리즈번에서 너무나 멀었다. 그렇다고 가격이 무지하게 싼 것도 아니었다. 우선 호주에서 살아남으려면 여러 사람을 만나보고, 정보도 얻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정보를 찾을 수 있는 곳은 우선 브리즈번에서 가까워야 했다. 

한참을 걸어가니 역시 헤매기 시작했다. 한번 가본 곳이니 당연히 백팩을 못 찾았는데 그래도 익숙한 길이 나오니까 찾을 수 있었다. 거의 브리즈번 시티에서 걸어서 1시간은 걸린듯 했다. 

백팩에 도착하니 한국분으로 보이는 듯한 사람이 같은 방에 있었는데 먼저 나에게 물어왔다. 한국 사람이 아니냐고. 그러면서 여기는 한국 사람이 별로 없는 곳인데 어떻게 여기에 왔냐고 나에게 묻기 시작했다. 나도 어쩌다보니 왔다고 하자 자신은 농장에 갔다가 브리즈번에 돌아왔다고 한다. 나이도 나보다 한참이나 많았다. 

나는 대화할 상대가 생겼다는 생각에 농장에 대한 정보도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그저 차 없으면 가지마라는 말뿐이었다. 그 이후로도 알려줄건 별로 없다고 하길래 나도 더는 묻지 않았다. 

다음 날 나는 체크아웃을 했고, 이 분이 나를 브리즈번 시티까지 태워다 주셨다. 

 
브리즈번 시티 한복판에 있는 팰래스백팩을 먼저 들어가봤지만 방은 가득 찼다고 했다. 다시 또 캐리어를 끌고 하염없이 헤매기 시작했다. 

'나 대체 뭐하고 있는거지?'

그러다가 결국 차이나타운까지 갔다. 차이나타운은 브리즈번 시티이긴 했지만 중심부와는 상당히 멀었다. 기껏 웨스트엔드에서 브리즈번 중심부로 오자고 했더니 차이나타운이라니 참 나도 어이없다. 하지만 어디로 이동할 힘조차 없었다. 나는 이미 캐리어를 끌고 2시간가량 거리를 헤매이고 도착했기 때문다. 그래도 방 값은 24불로 저렴한 편이어서 조금은 다행이었다. 

방 안을 들어가보니 6인실이었고, 화장실도 없었다. 내부는 이미 살짝 지저분한 상태였다. 내 침대를 찾아 누운 뒤 곰곰히 생각해봤다. 앞으로 어떻게 지내야 할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움직여야할지 확실하게 정해야 할 것 같았다.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수 십번도 더 정독했었지만 다시 한번 들여다봤다. 


밤에 퀸스트리트까지 걸어 나왔다. 카지노 건물의 알록달록한 불빛과 반짝반짝 빛나는 트리가 날 더 처량하게 만들었다. 어째 나만 혼자인거 같다. 



사람들이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길래 나도 따라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그저 사진을 찍어야 할 것만 같다는 그런 생각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