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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로 돌아가면 나는 무척이나 부지런해진다. 여행중에는 아무리 늦게 자더라도 아침에 눈이 스르륵 떠지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아주 바람직한 습관을 가지게 된다. 집에 있을 때는 심각할 정도로 게으른편인데 이런 나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신기할 뿐이다.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으러 나갔다. 한국까지 들어가는 날은 고작해야 2주 조금 더 넘게 남았을 정도로 나의 여정은 끝을 보이고 있었지만 재촉할 필요는 없었다. 어떤 계획도 없고, 동료가 있어서 다른 결정을 할 필요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날은 캄보디아로 들어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아무런 걱정거리가 없을 정도로 나의 마음은 편안했고 자유로웠다.


아침은 항상 람부트리의 거리 노점에서 해결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잡고 앉아 국수, 죽, 혹은 볶음밥 등을 먹고 있었다. 서양인들의 경우는 서양식 아침으로 토스트나 혹은 요거트를 섞은 과일 등을 먹기도 했다. 한국이었다면 아침은 챙겨먹지도 않는 나였지만 체력은 밥심이라는 믿음하에 주문을 하고 자연스럽게 5밧짜리 불투명 물병을 집었다. 이 생수가 과연 괜찮은 것인지는 2년 전부터 의문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또 벌컥벌컥 마셨다.


아침을 최대한 천천히 즐기면서 먹었다. 따로 일기는 쓰지 않았지만 과거 지나왔던 여정을 돌이켜보기도 하고, 거리의 모습을 멍하니 감상하기도 했다. 노점에서 파는 30밧짜리 식사였지만 바로 옆에 있던 레스토랑에서 앉아있는 사람과 별 다른점은 느낄 수 없었다.


식사를 마친 후 나는 또 걸었다.


나의 의식이 미처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카오산로드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제 막 장사 준비를 시작하는 사람들로 분주해 보이지만 지난 밤에 분명 수 많은 사람들이 맥주병을 들고 돌아다녔던 열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다시 밤을 위해 준비하는 카오산로드였던 것이다.


과거 카오산로드는 이 짧은 도로를 가리키는 것이었지만 현재는 이 일대를 광범위하게 아우르는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태국만의 독특한 택시였던 '뚝뚝'은 오늘도 여행자를 사로잡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내가 다녔던 동남아의 각 나라에서는 오토바이를 신기한 교통수단으로 변형시켜 이용하곤 했는데 태국은 이걸 가리켜 뚝뚝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태국의 악명높은 교통체증을 증가시키는 요인이기도 하고, 사실 택시 요금이 그리 비싸지 않기 때문에 미터기가 있는 택시가 더 편했다. 뭐... 뚝뚝을 경험삼아 타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수도 있다.


뚝뚝과 흥정을 하는 사람들, 커다란 배낭을 메고 이제 막 도착해서 어리둥절하게 주변을 둘러보는 여행자들, 푸른눈을 가진 사람들이 아주 능숙하게 흥정을 하는 모습은 카오산로드의 대표적인 이미지일 것이다.

혼자서 카오산로드를 돌아다니는 것도 이제 질릴 때 한번 카오산로드 한 가운데서 사진을 찍고 싶어졌다. 하지만 나는 혼자였기 때문에 사진 찍는게 여의치 않았는데 마침 한 아저씨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타투(Tattoo)?"

나는 고개와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괜찮다고 말하다가 넌지시 사진 한 장 찍어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졸지에 꼬시려던 사람의 사진작가가 되었던 아저씨는 내 캠코더를 받아들고는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다만 사진이 바닥으로 향했다는게 조금은 문제였다.


그래도 사진을 보여주며 마음에 드냐고 물어보고 그냥 막 여러 장을 찍어줬다.


카오산로드 한 가운데서 찍은 사진인데 내가 봐도 참 저렴한 차림이었다. 바지는 카오산에서 샀던 100밧짜리(약 3000원), 티셔츠는 호주에서 산 기념티셔츠로 6불(약 6000원), 조리는 필리핀에서 샀던 60페소짜리(약 2000원), 그리고 내가 들고 있던 물병은 태국에서 가장 싼 불투명물병으로 5밧(약 150원)이었다. 상당히 저렴하면서도 재미있던 조합이었다.


사진만 찍어주던 아저씨가 고맙기도 하고 조금은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사진도 한 장 찍어드렸다. 내 캠코더가 얼마냐고 슬쩍 물어보았다. 그리고는 기대는 하지 않는 눈치였지만 다시 나에게 물었다.

"타투(Tatto)?"


공항으로 갈 시간은 아직도 한참이나 남았지만 너무 덥다는 생각에 그만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뚝뚝 기사 아저씨의 신문보는 모습이 무척이나 태국같다고 느껴졌다. 태국에 있으면서 무슨 소리라고 할 지는 모르겠지만 어쨋든 카오산로드도 엄연한 태국의 한 곳으로 태국스러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카오산로드 입구 앞에 팔고 있던 과일쉐이크 가게였는데 사실 가격이 너무 비싸서 여기서는 먹어보질 못했다. 비싼데도 장사가 잘 되는거보면 자리가 좋은 건지 아니면 맛이 있는 건지는 알 수가 없다.


'카오산로드 잠깐만 기다려. 캄보디아 좀 다녀올께!'


카오산로드와 다를바가 없는 람부트리 거리를 지나 돌아갔다.


현지인들이 먹는 노점과 이 곳의 노점 가격이 거의 차이가 없다는 것은 내가 태국을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돌아오는 길에 입이 심심해서 망고 하나를 샀다. 길 위에서 우물우물 먹으면서 걸었는데 이런 행동들이 너무 익숙하게 느껴졌다. 마치 카오산에서 예전부터 살아왔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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