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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에서 올라와 바로 좌측으로 가다가, 아래쪽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이곳에서는 사람의 발걸음이 많지 않은지 홍콩 도심에 비해 상대적으로 너무 조용했다. 풍경도 그냥 산 위에서 저 아래 도심지의 전망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실제로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 꼭대기는 상당히 높은 곳이라 어느정도 맞는 말이기도 했다.



고가 도로가 나와 적잖아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있었다. 나는 점점 이상한 길로 걸어가는 듯 했다. 무슨 홍콩의 구석진 곳을 탐험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도 없는 곳만 골라서 다니고 있었다. 그렇게 아래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언젠가 중심지가 나오겠지 생각하고 걸었는데, '홍콩 보타닉 가든' 이정표를 보고 새로운 종착지로 삼아버렸다.



잠시 뒤에 도착한 곳이 보타닉가든 입구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헤매지 않고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다.



좁은 길을 따라 걸어갔는데 경사진 곳에 심어져있던 나무들이 무척 독특했다. 저런 곳에 나무가 튀어나온 것도 신기했지만 흙이 아닌 다른 재질로 경사면이 감싸 있었다.



그냥 공원인줄 알았는데 동물이 꽤 많이 있어 동물원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입장료가 없다는 점도 괜히 기분 좋게 만들어줬다. 물론 동물의 대부분이 원숭이라 사진을 찍기도 힘들고, 가로막혀 있어서 관찰하기도 쉽지는 않았는데, 무료로 구경하며 심심하지 않아 그런대로 나쁘진 않았다.


상업적인 동물원도 아니고, 그냥 일반 공원에 동물이 있다는 게 참 신기했다. 홍콩에서 디즈니랜드나 오션파크와 같은 유명 관광지에는 전혀 가지 않았던 나로서는 무언가 하나 구경했다는 기분도 느끼게 해줬다.



원숭이들의 천국이었지만 간혹 이런 육지 거북이랑 다른 종류의 동물도 있었다.



일반 동물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개체 수나 종류가 다양하지 못하다는 단점은 어쩔 수 없었다.



이 동물원을 뒤로 하고 보타닉 가든으로 내려왔다. 분수가 시원하게 물을 뿜고 있었는데 그 뒤로 펼쳐진 고층 빌딩 배경이 한껏 멋스러워 보였다. 그런데 저 분수 어디선가 많이 봤다 싶더니 시드니의 킹스크로스에 있던 분수와 무척 유사했다.



확실히 홍콩은 과거 영국의 식민지여서 그런지 몰라도 도심 속에 공원들이 잘 갖춰져 있는 것 같다. 내가 가 본 서구권 나라는 호주밖에 없었는데 호주도 도시에 방대한 양의 녹지공간을 가짐으로써 시민들에게는 휴식공간을 주고, 도시 풍경도 한결 푸르게 보였다. 홍콩도 빌딩이 빼곡하게 늘어서서 답답할 정도인데 이런 거대한 공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랄까. 나는 하루 종일 걷느라 너무 힘들었던 나머지 이곳에 앉아서 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밤에 이 곳에 다시 오면 배경으로 솟아오른 빌딩들의 야경에 의해 멋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너무 멀어서 결국 다시 오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