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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방람푸 선착장이라고 불리는 Phra Athit Pier에서 내렸다. 애초에 이 곳에서 수상버스를 타고 미얀마 대사관을 갔으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셈이었다. 미얀마 비자를 신청한 큰 일(?)을 했으니 이제는 미얀마행 비행기 티켓만 구입하면 태국에서 해야할 일은 전부 마무리 되었다.

왜 한국에서 미얀마 비자를 신청하지 않았냐면 나는 서울에서 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대사관을 간다는게 무척 힘들었기 때문이다. 또 학교 종강이 21일이었고 비행기 티켓은 22일이라 시간이 없었다는 점, 그리고 당시에 미얀마행 비행기 티켓을 비자 없이 구입할 수 없어서 그냥 태국에 가서 모든 일을 해보자는 식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Phra Athit Fort 주변은 공원이자 잔디밭이 형성이 되어있었는데 이 곳에서 서양인들이 누워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호주에 있을 때도 느낀 것이지만 서양인들은 이런 잔디밭에서 누워있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태국이라고 해도 이들에게는 누울 수 있는 장소였던 것이다.


폴 게스트하우스로 가는 길이었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서는 도미토리 방 값 3일치인 360밧을 한꺼번에 계산했다. 그리고 나서는 대사관 한 번 갔다온 것이 그렇게 힘이 들었는지 침대에 누워 낮잠을 청했다.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잊고 말이다. 그렇게 1시간 정도 자다가 밥을 먹으러 밖으로 나갔다.


햇빛은 무지하게 뜨거워 춥다는 한국의 날씨와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상황이었다. 겨울이 싫어서 도망쳐 나온 사람처럼 더웠지만 이제는 태국의 날씨가 더 익숙해졌다.


너무나 익숙한 곳인 람부트리 거리로 돌아왔다. 폴 게스트하우스는 카오산로드나 람부트리에서 좀 멀다는 단점이 있었다.


동남아에서의 나의 주식이었던 볶음밥과 콜라를 시켰다. 불과 6개월 전에는 30밧이었는데 5밧이나 올라 지금은 35밧이었다. 이럴수가!!


노점은 밥을 먹으면서 거리를 바라보는 재미가 있었다. 이 곳에서 어슬렁 거리고 있는 강아지들과 대낮부터 맥주를 마시고 있는 서양인들은 그냥 일상이었다. 비록 그러한 것들이 태국의 모습은 아닐지라도 카오산로드의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급할 것도 없는 나는 밥을 천천히 먹으면서  거리를 구경했다.


밥을 먹고 난 후 그냥 걸었다.


카오산로드로 걸어가도 딱히 할 일이 없는 그냥 방랑자였다. 정말 그냥 걸었다는 말이 맞았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그런 여행자였을 뿐이었다.

한참을 걷고나서야 미얀마 비행기 티켓을 알아봐야 겠다는 생각이 떠올라서 그길로 여행사를 찾아다녔다. 처음 찾아간 곳은 한인 업소였던 '타이나라'였다. 내가 한국에서 알아왔던 가격보다는 조금 비쌌다. 아무래도 시기가 초성수기이다 보니 가격은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가장 싼 비행기를 알아봐도 6800밧정도였다. 한번 다른 곳도 알아보겠다고 2군데 돌아다녀봤는데 다른 곳은 좀 더 비쌌다.

시기가 안 좋았다. 당시는 12월 23일로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끼어있는 초성수기였는데 가격보다도 좌석이 아예 없었던 것이었다. 1월 중순에 좌석이 있다고 얘기해주거나 가격이 점점 올라간다는 이야기를 들을 뿐이었다. 다시 타이나라로 돌아와서 미얀마 비행기를 예약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좌석이 사라져서 무진장 애를 먹으셨다. 예약과 발권을 동시에 하는 방법으로 30분이 넘게 클릭을 하시고 계셨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발권을 당장하게 되면 티켓을 구할 수 있다는 소리같았다.

항공권을 확실히 구입하겠다는 의사를 한 뒤에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다가 한국 사람 몇 명과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누게 되었다. 한 남자분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버스를 기다리시고 있었고, 여자분은 방콕 여행을 하시고 계셨는데 오늘 쇼핑을 실컷 하셨다면서 자랑하고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나의 블로그 이야기도 나와서 그분들에게 주소도 알려줬다. 혹시 방문하셨으려나?

원래 예정된 시각보다 30분이 늦은 버스가 도착해서 남자분은 가셨다. 여자분은 혼자이셔서인지 저녁을 같이 먹자고 제안해서 나 역시 흔쾌히 응했다. 그리고 마침 사무실에 있었던 다른 여자분도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잠시 뒤에 항공권 구매가 완료되어서 E-Ticket을 주셨다. 미얀마 항공으로 1월 2일 출발해서 18일에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가격은 무려 7040밧(약 25만원)이었는데 그나마 조금 더 늦었으면 좌석이 없어서 발권을 할 수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내가 가져단 약 800달러의 여행 자금에는 항공권도 포함되어있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적지 않은 타격이었다.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서로 이름도 모르던 상태로 밥먹으러 나갔던 것이다. 아직 죽을 한 번도 안 드셔봤다고 해서 카오산로드 뒤쪽으로 죽 먹으러 갔다. 후덥지근한 날씨 속에서 죽을 먹은 뒤에 가볍게 맥주 한 잔을 하자고 람부트리쪽으로 향했다.

거리를 걷다가 게스트하우스 안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는데 이 곳은 전 날 만났던 달러스가 자신의 게스트하우스라고 얘기했던 곳이었다. 혹시나 싶어서 달러스가 있는지 살펴봤는데 놀랍게도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내가 반가움을 표시하자 달러스도 깜짝 놀라면서 인사를 했다. 그렇게 해서 달러스도 우리와 같이 맥주를 마시게 되었다. 달러스의 성격이 재미있어서 그런지 쉽게 어울렸다. 1시간 후 한 여자분이 다음 날 남쪽 바닷가로 간다면서 일찍 자리를 뜨셨고, 다른 한 분도 잠시 뒤에 자리를 뜨셨다.


달러스는 무언가 아쉬운지 우리끼리 맥주를 마시러 가자고 제안을 했다. 자신이 봐둔 곳이 있다면서 이동한 곳은 필리핀의 산미구엘을 싸게 파는 곳이었다. 전 날 목욕탕 의자를 놓고 마셨던 곳보다는 한결 그럴듯한 곳이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태국에 처음 왔던 07년도에 이 곳에서 처음으로 맥주를 마셨던 기억이 난다. 맥주를 마시다가 밤거리를 찍기도 했다.


우연히 만났지만 이틀 연속으로 맥주를 마시게 될 줄이야! 우리끼리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고산족 아주머니들이 등장했다. 카오산에 있다보면 술을 마시는 테이블에 물건을 팔려는 사람들이 접근을 하는데 그 중에서 항상 마주치는 분들이 고산족이다. 주렁주렁 무언가 매달은 특이한 복장을 하고 손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두꺼비를 들고는 기념품을 사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 때 달러스가 중국어로 이야기를 했는데 고산족 아주머니도 중국어로 이야기를 하셨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신기한 상황을 쳐다보기만 했다. 둘 다 중국어가 가능했던 것이다. 고산족 아주머니도 물건을 팔 생각은 안 하고 중국어를 하는 서양인을 신기하게 쳐다봤다. 달러스는 중국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어에 능통했던 것이다.


달러스 덕분에 혼자 여행을 하고 있었지만 심심하지 않게 보낼 수 있었다.


달러스와 헤어진 뒤에는 다시 밤거리를 걸어다녔다. 시끌벅적한 카오산로드도 이제는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큰 곤충들은 먹기가 좀 힘들겠지? 가급적이면 도전해보고 싶지는 않다. 작은 메뚜기정도면 몰라도 말이다.


'이제 내일은 뭐하지?' 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