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태국에 와서 계속 밤 늦게까지 술을 마셔서 그런지 아침에 일어나면 무지 힘들었다. 태국에 여행을 하러 온 건지 아니면 술을 먹으러 온 건지 정말 아리송할 정도였다.

내가 지내고 있었던 게스트하우스의 도미토리는 2층 침대가 4개가 있었던 곳으로 총 8명이 지내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외국에서는 간혹 여자와 한 방에서 지내기도 한다. 도미토리의 경우는 한 침대를 지불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남자가 좀 많은 편이긴 하지만 여자도 쉽게 볼 수 있다. 생각해보면 내가 호주에서 지냈을 때는 한 방에 무려 4명이 여자였던 적도 있었다. 언뜻 헤벌쭉 입을 벌리며 좋아보일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남자도 불편하다.

이상하게 '폴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냈지만 혼자 싸돌아다닌 이유때문인지 다른 사람들과 친해지기 어려웠다. 대부분 나보다 나이대가 높았다는 점도 있었지만, 여행자보다 오히려 투숙객이 많았다고 해야 할까?


늦은 아침을 먹으러 거리로 나섰다. 태국에 온 지 4일째 되던 날이었는데 이런 일상이 조금은 평범하게 느껴졌다. 그냥 동네 한바퀴 돌고 밥먹고 피곤하면 숙소로 돌아와서 쉬었다. 저녁에 혼자 거리를 걷다가 맥주를 마신다. 정말로 내가 이런 것을 원해서 여행을 떠났던 것일까? 물론 태국은 정말 좋다. 하지만 내가 원했던 여행은 이게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치앙마이로 가면 좀 나아지려나?


죽Rice Soup을 시켰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그래도 지난 밤에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지 따뜻한 국물이 들어간 식사가 잘 맞았다. 이제는 너무도 익숙하게 물 한병을 집어 마시면서 식사를 시작했다. 태국에 고작해야 3번 밖에 오지는 않았지만 이제 카오산로드의 돌아가는 움직임은 한 눈에 다 알아볼 수 있을정도로 익숙해져 있었던 상태였다. 밥을 천천히 먹으면서 지난 일에 대한 기록을 조금씩 했다. 일기라고 보기는 그렇지만 내가 블로그에 글을 남기는 것처럼 쉽게 잊혀지는 기억에 도움을 좀 주고 싶어서 여행 기록을 하고 있었다.

"에에~ 에취이~"
갑작스럽게 재채기가 튀어나왔다. 거리 노점이었던 이 곳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옆 테이블 사람이 나에게 "Bless you"라는 말을 건네면서 웃었다. 영어를 쓰는 국가에서 재채기를 하면 저렇게 말을 해주는게 하나의 문화이긴 하지만 여기는 태국이었다. 그럼에도 그냥 옆에 있는 사람과 가벼운 이야기는 주고 받을 수 있었는데 그건 카오산로드이기에 가능했다. 나는 재채기때문에 입을 막았던 손을 떼고 웃으면서 "Thanks"라고 했다.

불과 6개월 전에도 카오산로드에 있었는데 새로운 구경거리가 있을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날씨는 너무나 더워서 가슴이 턱하고 막힐것 같았다. 목적지도 없고, 친구도 없었던 나는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게스트하우스 앞에는 몇 명이 옹기종기 모여서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 곳에 있는 사람들은 여행자라고 하기엔 좀 힘들어 보였던 이유 중 하나가 그냥 동네 사람들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나도 어느틈에 이 무리에 끼어서 이야기를 나눴다. 경상도에 살고 계시다는 삼촌 같았던 아저씨 한 분과는 미얀아 여행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얘기를 하기도 했고, 앞으로 인도에 가실 계획을 듣기도 했다.

몇 명 더 있기는 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이야기를 많이 하고 가장 신기했던 사람은 단연 불가리아 사람이었다. 국적은 호주와 불가리아였는데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들 틈바구니에서 한국말로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광경이 너무 재미있어서 내가 질문을 마구 던지다보니 나중에는 둘이서만 얘기하기 시작했다. 아니 어떻게 불가리아 사람이 한인 게스트하우스에서 한국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고 있을수 있는 걸까?

골목 사이로 과일을 파는 아저씨가 지나가고 있어서 과일이나 먹으려고 하자 이 형이 나를 막았다. "저거 먹지마. 저 아저씨 코딱지 더러워."라고 말을 하며 말렸다. 나는 완전 배꼽빠지게 웃으면서 이 게스트하우스에서 살고 있다시피 한 이 형에게 완전 빠져들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다른 과일 아저씨가 수레를 끌고 우리 앞으로 왔다. 내가 여기는 어떠냐고 얘기하니까 이 아저씨는 괜찮을거라며 그제서야 과일을 샀다.


서로 과일을 우물 우물 먹으면서 호주 어디에서 있었냐고 하니 애들레이드에서 살았었다고 했다. 근데 이 형은 자신이 호주인이라는 말을 싫어하면서 자신은 불가리아 사람이라고 했다. 재미있었던 것은 호주는 재미도 없고, 완전 시골이라고 말을 했다. 옆에서 과일을 드시던 아저씨는 이 말을 듣고 호주는 선진국 아니냐고 되물었는데 나와 이 형은 "아녜요. 호주 완전 시골이예요. 아무것도 없어요. 왜 선진국인지 이해를 할 수 없어요."라고 웃으면서 말을 했다. 호주가 재미없다는 이야기에 공감을 하던 몇 몇 외국인이 나를 보며 공감을 표했던 것처럼 이 형은 호주에 대해 아주 직설적으로 이야기를 했다. 물론 호주도 좋은 점도 있고, 즐거웠던 부분도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항상 축제와 같았던 동남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시시한 편이었다.

자신이 살았었던 호주는 그렇다고 하면 한국은 어떤지 물어보니 이 형은 눈을 반짝이며 한국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워킹홀리데이로 있었다고 했는데 한국인인 나보다도 더 많은 것을 경험했었다.

"나 한국에 있을 때 돈이 없어서 맨날 떡볶이 1접시만 먹었어요. 그런데 아주머니가 나 기억해서 1000원어치만 먹어도 더 주고 그랬어요. 그리고 먼 길을 걸어 다녔어요. 잠은 찜질방에서 잤는데 그 때 아저씨들이랑 엄청 친해져서 낮부터 소주를 줘서 죽을거 같았어요." 라고 말하는데 이게 어찌나 웃기던지 외국인이 한국에서 지내던 모습이 막 떠올랐다. 내가 찜질방에서 자면 빨래는 어디서 하냐고 물으니까 "목욕탕에서 빨래 하면 돼요. 그리고 찜질방에다가 놓으면 금방 마르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라고 대답했다. 완전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으로 살았던 외국인이었다.


우리는 바로 옆에 있었던 노점식 국수가게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위생이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지만 고기를 듬뿍 넣어주는데 고작해야 30밧(약 1000원)밖에 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맛이 정말 좋았다. 특수부위도 좀 들어가는데 이 형은 이런게 들어가야 더 맛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원래 이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던 사람들은 이 국수집을 자주 애용했는데 식사 시간 때마다 국수 그릇을 들고 사람들이 게스트하우스 안으로 들어와 먹었다. 노점이었지만 국수를 먹을 수 있는 테이블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도 국수 그릇을 들고 어디서 먹을까 고민을 하다가 바로 앞에 있던 카페의 테이블에 앉아서 먹었다.


양도 정말 많았고, 고기가 어우러진 국수가 정말 맛있었다.


어느새 다가온 강아지 한 마리. 너도 먹고 싶니?


국수를 다 먹고 콜라 한 잔을 하며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하다가 사진도 한 방 찍었다. 대전에 온 적이 있냐고 물어보니 몇 시간동안 대전역까지 걸어 갔었던 고생스러운 이야기를 했다. 결국 이 형은 한국에서 고생스러웠던 기억 밖에 없었는데 한국이 좋긴 좋았나 보다. 다시 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한국어 공부도 계속하고 있었다. 한국어와 관련된 직업을 갖고 싶다고 매일 침대 앞에 앉아서 한국어 문제집을 풀고 있었다.

호주에서 만났던 한국인이 박준이라고 한국식 이름을 지어줬다고 했는데 나보고 이 이름이 촌스럽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제서야 게스트하우스 사람들이 왜 '준'이라고 불렀는지 나이가 어린 사람은 준형이라고 불렀는지 알게 되었다.

준형의 떡볶이 먹었던 이야기, 회 먹었던 이야기, 아저씨들과 소주 마셨던 이야기를 듣다보니 몇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하루 일과가 이 형과 이야기 나눈게 전부였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왜 인기인이었는지는 이 유쾌한 성격때문이었던것 같다. 한국에서도 다시 한번 만났으면 좋겠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