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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인도로 가신다는 아저씨, 태국어를 전공했다는 동생, 그리고 능숙한 한국어로 불가리아인으로 도저히 볼 수 없었던 준형이랑 밥 먹으러 갔다. 준형은 이미 태국 사람인듯 어느 곳으로 가야지 맛있고, 어디가 싼지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찾아간 곳은 닫아서 차차선책으로 선택한 곳인 일본 게스트하우스 '사쿠라'로 갔다.

사쿠라는 카오산로드 가기 전 골목에 있었는데 일본 식당도 겸하고 있어서 그런지 꽤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나는 이런 곳에 일본인 게스트하우스가 있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다. 그야 제대로 된 간판도 없어서 건물을 잘 알지 못한다면 찾기란 정말 쉽지 않아 보였다.


내가 선택한 것은 차슈라멘이었는데 맛은 그냥 그랬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선택한 치킨종류는 꽤 괜찮았다. 보통 우리나라 게스트하우스에 가면 전부 100밧 이상인데 반해 여기서는 60~100밧이면 정말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한국과 비슷한 음식 혹은 치킨이 생각난다면 사쿠라에 찾아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보였다.

아침을 먹은 뒤에 공항 미니버스를 예약하고 돌아온 뒤에 배낭을 쌌다. 배낭을 가지고 내려와서는 아래에서 책을 읽기도 하고, 사람들이 노는거 구경을 하기도 했다.

4시가 가까워질 무렵 나는 약간의 친분이 있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준형은 미얀마 갔다와서 같이 맛있는거 먹으면서 술 한잔 하자는 이야기를 했고, 아저씨는 인도에는 가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가는 거라면서 자신도 미얀마에 가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어쨋든 짤막한 작별인사와 함께 큼지막한 내 배낭을 메고 미니버스를 타러 갔다.


수완나폼 공항에는 너무 이른 시각인 4시 40분경에 도착했다.


드디어 미얀마에 가는구나! 낯선 땅이라 두려운 마음이 가득하긴 했는데 나의 가슴은 더 떨려오는게 결코 두려움으로만 가득찬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재미있을거 같았다.

방콕에서 양곤까지는 불과 1시간 반 밖에 걸리지 않기 때문에 저녁을 미리 먹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실제로 배고프기도 했다. 다만 내 수중에 가지고 있었던 돈은 고작해야 200밧도 되지 않았다. 공항은 전부 비싼 식당 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우연찮게 푸드코트 비슷한 곳을 발견했다. 마치 호주에서 떨이로 팔던 플라스틱 용기에 밥이 담겨 있었는데 35밧 밖에 되지 않았다.


35밧짜리 밥과 20밧짜리 닭다리 하나를 먹으니 나중에 내가 태국에 돌아와서 공항버스를 탈 수 있는 150밧이 남았다. 밥은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 매콤한 고기요리와 계란후라이, 그리고 닭다리는 나에게 최고의 도시락이었다.


밥을 먹으니 다급해진 마음이 좀 더 여유로워졌다. 난 그제서야 출국 도장을 찍고 면세점이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면세점에서 쇼핑할 수 있는 날이 과연 언제일까?


서점에 가서 책을 둘러보기도 하고, 전자제품 매장에 가서 구경도 했지만 기다리는 시간은 상당히 지루했다.


내가 비행기에 올라탄 시각은 7시였다. 상당히 작은 비행기 자리에 앉아 바로 맞이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동글동글한 미얀마 언어였다. 전부 비슷하게 보여졌던 미얀마어를 마주 대하면서 나는 비로소 미얀마 여행을 시작했던 것이다.


비행기는 한 눈에 봐도 비좁아 보였는데 좌석은 가득찼다. 미얀마로 가는 비행기가 인기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그만큼 취항하는 횟수나 항공사가 적기 때문으로 보였다.


출발하기 전에 나누어준 물티슈였는데 손을 닦아도 이상하게 깔끔하지 못했다.

미얀마 항공이 더욱 재미있었던 것은 이륙할 때 였다. 이륙하기 직전에 승무원들이 사람들이 타고 있는 좌석을 비집고 들어와서는 비어있는 좌석에 앉았다. 옆에 있던 외국인들도 그 장면이 무척 신기한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니까 승무원 전용 좌석이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일반 좌석을 비어놓고 이용했던 것이다. 물론 이륙하고 나서는 다시 승무원들이 일어났다.


이륙하고 곧바로 나왔던 기내식이었는데 당연히 식사가 나올리는 없었다. 짧은 비행거리 탓에 머핀과 샌드위치가 나왔고 음료수나 커피는 갖다 줬다.


내가 가자고 있던 미얀마 가이드 북은 총 2권이었다. 하나는 한국어로 이루어진 '미얀마 100배 즐기기'였고, 다른 하나는 '론리 플래닛 동남아 슈스트링'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둘다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가이드북으로서는 론리플래닛이 100배 나았다. 미얀마 100배 즐기기의 엉뚱한 지도 덕분에 고생을 엄청 했다.

내가 미얀마 100배 즐기기에서 좋았던 것이라면 가이드북의 역할 보다는 한국어로 적혀 있었기 때문에 미얀마의 역사나 문화, 그리고 언어를 쉽게 익힐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어쨋든 나는 기내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도착하면 어디로 가야할지 생각했다. 폐쇄적이고 여행자가 그리 많지 않을것으로 예상되는 나라에 가는데도 정확히 어떤 계획이 있지도 않았다는게 나의 문제점이었다.

그런데 책을 좀 읽다가 그것도 그냥 지겨워서 책을 덮고는 '그냥 술레 파고다쪽으로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만 가지게 되었다. 미얀마 그곳은 과연 어떤 곳일까? 


양곤 공항에는 도착했을 때는 그 규모에 살짝 웃음을 지었다. 착륙을 막 했던 우리 비행기 외에는 아무 것도 없을정도로 썰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항에 들어가보니 생각보다 깨끗하고 현대화된 공항에 무척 놀랐다.

입국할 때 입국카드, 신종플루 관련 종이, 여권에 붙은 종이, 그리고 세관신고서까지 무려 4장이나 제출해야 했다. 입국은 정말 간단하게 이루어졌다. 원래 내 여행의 목표였던 미얀마에 드디어 들어왔던 것이다.

재미있었던 것은 입국 심사 때 외국인 전용은 텅텅 비어있었고, 우루루 사람들이 몰려가는데 그 곳은 미얀마인을 위한 입국심사대였다. 새삼 미얀마는 태국과는 정반대라는 것을 조금 실감했다. 그만큼 여행자가 많지 않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드디어 미얀마에 들어왔다고 좋아하던 것도 잠시 내 짐이 나오지 않았다. 입국 심사는 정말 빨리 했는데도 짐이 나오지 않아서 무려 20분간 기다렸다.

공항 출구로 나가니 역시나 삐끼들이 달라 붙었다. 내가 '술레 파고다'까지 택시로 얼마냐고 물으니 단번에 7달러를 제시했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나는 적정가격이 5달러이고 그 밑으로도 가능하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비싸다고 했다. 하지만 다른 삐끼들이 다가와서 얘기하는 것은 전부 7달러였다.

나는 단호하게 4달러라고 이야기를 하니까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6달러는 가능하다고 했다. 사실 밤 9시가 가까웠기 때문에 협상이 전적으로 나한테 불리하긴 했다. 그래도 5달러 밑으로 갈 수 있을거라 판단해서 내 의지를 굽히지는 않았다.

나는 가만히 서서 사람들이 택시에 올라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한 택시기사는 "나 택시기사인데 내 차 일본차니까 얼른 타"라고 얘기를 했는데 그의 말이 맞기는 했다. 하지만 그 일본제 택시는 언듯 보기에도 최소 30년은 되어 보이던 심하게 낡은 차였다.

택시 기사는 아니고 손님을 끌어주던 삐끼가 나에게 와서 4달러에 해주겠다면서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했다. 한참 뒤에 가족들로 보이는 사람들과 합승을 시켜줬다. 가격만 싸다면야 합승도 나는 상관이 없었다. 택시 아저씨한테 뭐라고 이야기를 한 뒤에 출발을 시키면서 나한테는 연신 "스미마셍 스미마셍"이러면서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다.


정말 30년도 넘어보이던 택시는 당연히 계기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뿐더러 웅장한 소음을 내뿜으며 달렸다. 쿨럭거리기는 했지만 다행히도 도로를 쏜쌀같이 달렸다.

뒤에 탔던 가족은 날 신기하게 생각했는지 일본어로 말을 걸어왔다. 나는 한국인이라고 영어로 말하려다가 책을 뒤지면서 "쩌노.... 꼬레아....(저는.... 한국....)"라고 말을 했다. 뒤에 가족들도 웃고, 택시 아저씨도 나를 살짝 보더니 씨익 웃었다.

처음 본 양곤의 모습은 상당히 괜찮았다. 도로도 잘 갖춰진듯 보였고, 내 생각보다는 훨씬 깨끗해 보였다. 다만 도로 위에 달리고 있는 차들은 적어도 30년은 넘어 보이는 오래된 차들 뿐이었다. 맙소사! 그 생각을 하자마자 앞에 있던 택시의 뒷꽁무니에서 엄청난 연기를 내뿜었다. '저거 고장난거 아닐까?' 라는 생각이 무색할 정도로 잘 달리고 있었다.


택시는 요리조리 추월하면서 잘 달렸다. 어느 한 동네에서 뒤의 가족들을 내려주고는 다시 어떤 아저씨를 태워 달렸다. 또 다시 합승을 했는데 뒤의 아저씨 역시 나를 신기하게 생각했는지 말을 걸었다.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까 영어로 이것 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여기가 어디인지 도무지 분간을 할 수 없을 깜깜한 도시 한 가운데서 갑자기 거대한 황금빛 탑이 나타났다. 웅장한 배경음악이라도 깔아줘야 할 것처럼 너무나 멋진 야경에 나는 너무나 신기하게 쳐다봤고, 다급하게 사람들에게 저거 '쉐다공 파고다'냐고 물었더니 껄껄껄 웃으면서 맞다고 맞장구를 쳤다.

내가 너무 아름답다고 하니까 그들도 흡족한 듯 "Very nice"라고 얘기했다. 근데 실제로도 너무도 아름답고 멋졌던 황금빛 건축물이었다. 나중에 야경을 보러 꼭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윽고 나의 목적지였던 술레 파고다에 도착했다. 술레 파고다는 양곤의 중심지 역할을 하던 사원이었는데 이 근처에 숙소들이 많이 몰려있었다. 택시 아저씨는 어느 게스트하우스로 가냐고 물어봤는데 나는 딱히 정하지 않았지만 지도상으로 가장 가까웠던 오키나와 게스트하우스로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택시 아저씨와 뒤에 탔던 아저씨는 그런 게스트하우스는 처음 들어본다면서 어디에 있냐며 지도를 살펴봤다. 오키나와 게스트하우스는 공원 옆에 있는 것으로 보였지만 그 주변은 아무 것도 없었던 것이다.

잠시 뒤에 이 아저씨들은 택시에서 내리고 헤드라이트 불빛을 이용해 지도를 계속 살펴보면서 서로 상의를 했다. 아저씨는 주변을 살펴보기도 했는데 그 장면이 너무 웃기기도 하고, 친절한 마음이 그대로 묻어나서 너무 고마웠다. 내가 지도를 다시 한번 살펴보니 이 옆 골목인듯 보였다.

이분들이 찾아준다는 것을 한사코 만류하고 내 짐을 챙겼다. 내가 찾아갈 수 있다는 말을 했지만 이 아저씨들은 걱정하는 표정과 어쩔 줄 모르겠다는 행동을 했다. 나는 다시 빙그레 웃으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배낭을 메고 4달러를 준 뒤에 조금 걷다가 술레 파고다 앞에 섰다.


숙소를 찾는 것도 잠시 잊고 나는 황금빛으로 빛나던 술레파고다를 바라봤다. 깜깜하고 으슥해 보이는 골목뿐이었지만 이 술레 파고다를 보자마자 미얀마 여행이 너무 즐겁게 느껴졌다. 아니 방금 전의 나를 걱정해주던 아저씨들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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