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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린 눈을 겨우 비비고 일어났지만 여전히 비몽사몽인 상태로 미야자키역에서 내렸다. 야간열차를 탔지만 침대칸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는데 덕분에 미야자키 여행 출발부터 피곤에 쩔어서 시작해야 했다. 빨리 숙소로 들어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새벽이라 그런지 바람이 무척 쌀쌀했다. 그러면서도 눈앞에 보이는 이국적인 풍경에 놀랄 수밖에 없었는데 고작해야 큐슈의 남쪽으로 내려왔을 뿐인데 곳곳에 보이는 열대나무는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어딘가 익숙한 풍경이기도 했다. 내 머리속 깊숙한 곳에 숨어있던 어떤 도시가 떠올랐는데 다름아닌 호주에서 이국적인 분위기를 뿜어내던 케언즈와 첫느낌이 매우 비슷했다. 

그런데 이런 풍경을 보기에는 너무 피곤해서 지쳐있었고, 너무 이른 아침이라 버스가 지나다니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었다. 야간열차를 타고 미야자키까지 내려온 것은 좋았는데 막상 도착하니 미야자키 시내에서 무지하게 멀었던 시가이아 리조트까지 찾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아마 1시간쯤 기다렸을 거다. 날이 밝아오면서 버스가 운행되는지 몇 대의 버스가 우리 앞을 지나갔고, 그 중에서 시가이아 리조트로 가는 방향의 버스에 올라탔다. 


일본에서 처음 버스를 타보는 순간이었는데 조금 신기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 혼자 버스에 올라탔다면 조금 두려운 마음(?)이 생길 정도로 생소한 시스템이었는데 우선 타는 방향부터 틀렸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버스는 앞문으로 이용하지만 일본은 뒷문으로 타서 앞문으로 내리게 된다. 뒷문으로 올라가자마자 마치 은행에서 번호표를 뽑는 것처럼 하얀색 종이인 정리권을 뽑으면 숫자가 적혀있는데 이 숫자를 보고 나중에 내릴 때 정리권과 함께 요금을 지불하면 된다. 


어떻게 그 요금을 아냐면 바로 맨앞을 바라보면 전광판이 보이는데 친절하게 요금을 표시해 주고 있었다. 자신이 뽑은 숫자 아래에는 요금이 나오는데 먼거리를 이동할 수록 요금이 계속 올라간다. 이 버스를 탔을 때는 출발한지 얼마되지 않아서인지 160엔부터 시작했지만 가끔 버스를 타고 먼거리를 이동하다보면 일본의 살인적인 교통비가 새삼 실감이 나기도 했다. 


미야자키에 도착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시내를 빠져나가는 버스를 타고 있었다. 


어느덧 버스는 시골마을을 연상케하는 길로 접어들었고, 주변을 살펴보니 떠오르는 해로 인해서 대지는 붉은 물이 들고 있었다. 


아직 미야자키에 적응도 되지 않았는데 시가이아 리조트까지는 참 멀기도 멀었다. 어쩌면 미야자키 시내로 나오는게 너무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게 더 걱정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이라면 도로 이정표에 시가이아가 보이는 것을 보면 제대로 가는 것은 맞긴 맞나 보다. 

하지만 거의 다 도착했을 무렵 버스는 우리를 이상한 장소에서 내려줬다. 시가이아까지 운행하는 버스가 아닌지 아니면 지금 시간에는 거기까지 가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그보다 우리가 내린 장소는 정말 생뚱맞은 곳이었다는게 가장 큰 문제였다. 지나다니는 버스나 택시는 전혀 없었고, 제대로 위치를 파악할 수도 없었다. 멀리 시가이아 리조트가 보이는데 바로 앞에는 숲이 있어서 거리상으로 가까운지 먼지는 구분이 되지 않았다. 

택시를 타고 싶어도 탈 수 없었던 상황이니 그냥 걸어가보기로 했다. 어차피 리조트에 일찍 도착해도 너무 이른 시각이라 체크인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조금 걷다보니 우리가 가던 길은 버스를 타고 오던길로 즉 다시 말하자면 되돌아가는 중이었다. 이렇게 가다간 1시간도 더 걸리지 않을까 싶어서 근방에서 청소를 하시던 아주머니께 시가이아 리조트를 가고 있다고 물으니 마치 신비로운 숲속으로 가는 문을 여는 것처럼 작은 길을 안내해줬다. 


그러고보니 큐슈에서 가장 좋은 리조트를 가는 우리 두사람이 배낭을 메고, 캐리어를 낑낑대며 들고 다니는 모습이 여간 어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쨋든 아주머니의 안내에 비밀통로로 내려가봤다. 


비밀통로에서 나오니 시가이아 리조트가 모습을 제대로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멀리 돌아가도 되지 않아도 되었으니 비밀통로는 비밀통로인가 보다. 언뜻 보기에도 시가이아까지는 그리 멀어 보이지 않았다. 


여행자가 길을 헤매면 가끔 이런 길도 걷게 된다. 그것도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말이다. 그래서 난 배낭을 더 선호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아주머니의 안내로 순식간에 가까워진 시가이아 리조트를 바라보며 걷기 시작했다. 여기는 시골길을 연상케 하는 곳으로 밭으로 사용되는 것처럼 보였다. 


숲속공원으로 들어서니 시가이아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시가이아로 가는 길이 이리 힘들 줄이야! 물론 버스를 잘못타서 헤맸던 것도 있지만 큐슈여행을 하면서 유일한 리조트에서 머물게 되었는데 꼴은 말이 아니었다. 야간열차에서 내려서 버스를 타고, 그리고 헤매다가 시가이아까지 걷고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우리 눈앞에는 거대한 시가이아 리조트가 나타났다. 시가이아 리조트는 해안에 펼쳐져 있는 거대한 복합센터로 총 길이만 10km라고 한다. 여기에 온천, 골프, 동물원, 컨벤션센터 등이 있어 시가이아 리조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거대한 관광타운을 형성하고 있었다. 과연 미야자키가 일본인들의 신혼여행지라고 불릴만한 곳이구나!  

'이런 멋진 곳에 무사히 도착했으니 미야자키 여행은 이제부터 괜찮겠지?' 

탄탄대로 일거라는 나의 착각과는 달리 이제부터 나의 험난한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미야자키 여행은 처음 시작부터 그랬지만 끝까지 헤매임의 연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