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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에 도착했다. JR사무실에서 유후인으로 가는 열차시간표와 나가사키 노면전차 노선표도 얻어 나온 뒤 비로소 나가사키 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나가사키 역은 최근에 보수가 되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쇼핑몰과 결합된 세련된 형태였다. 가이드북에서도 역에 있는 아뮤 플라자가 쇼핑하기 좋다고 나와있었다.


역으로 빠져나와서 걸어갈까 하다가 지도를 보면 생각보다 먼 것 같아서 노면전차를 타기로 했다. 이제 막 도착한 여행자가 낯선 노면전차를 타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마침 학생들이 내 옆에 있길래 물어보니 아주 착하게도 영어로 말을 했다. 이 친구들에게 오하토역까지 걸어가는 것이 좋을지 노면전차를 타면 좋을지 물어보니 걸어가면 20분 정도 걸릴거라면서 노면전차를 추천해줬다.

그리고는 어디서 타야 되는지 알려줬는데 육교를 건너 반대방향까지 안내해줬다. 자신들이 타는 노면전차의 반대방향인데도 말이다. 너무 착하기도 하고, 고마웠다. 남학생이 살짝 2PM의 닉쿤을 닮은듯 해서 "혹시 닉쿤 아니? 2PM이라고 한국 가수인데 아주 유명해." 라고 말을 했지만 전혀 모르는 눈치라서 닮았다는 말을 하려다가 그만뒀다.


아무튼 내가 타야되는 위치까지 친절하게 안내해준 친구들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니 흔쾌히 응해줬다. 비록 초점이 안 맞았지만 말이다.


잠시 후 나는 바로 앞에 멈춰선 노면전차에 올라탔다. 나가사키의 노면전차는 구간에 관계없이 무조건 120엔이었다.


이미 상당히 어두워진 밤거리를 노면전차가 가로질러갔다. 호주에서도 자주 타고다녔고, 나가사키에 도착하기 전에 머물렀던 구마모토에서도 타봤기 때문에 노면전차가 그리 신기한 것은 아니지만 나가사키의 노면전차는 뭔가 더 구식같았다. 그래서인지 더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운전석 바로 옆에서 빤히 구경을 했는지도 모른다.


오하토역은 나가사키 역에서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에 금방 도착했다. 이제 컴포트 호텔을 찾아가야 하는데 금방 보일 줄 알았는데 역시 10분 정도 헤맸다. 전혀 다른 골목에서 헤매다가 멀리 푸른색 호텔 간판을 보고 찾아갔지만 말이다.


체크인하고 안으로 들어가보니 1인실이라서 그런지 여태까지 머물렀던 곳 중에서 가장 좁았다. 시계를 보니 8시. 정말 몸은 천근만근 무겁고 힘들었다. 몸이 힘들어서 휴식을 취하던 것도 잠시 나는 9시에 호텔 밖으로 나갔다. 배낭여행자의 본능이랄까? 편안하게 쉬는 것보다 나가사키의 밤거리를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배가 고파서 견디기 힘들었다.


그렇게 늦은 시각도 아닌데 나가사카의 밤거리는 무척 조용했다. 도시의 규모가 다른 곳 보다 작아서 그런지 아니면 내가 있었던 곳이 중심부와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지나다니는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건물이며 나무에 온통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치장되어 화려했던 구마모토의 거리와는 상당히 대조적이었다.

심히 배고팠지만 잠시 참고, JR직원이 알려준 항구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대체 어떤 야경을 보여주길래 나에게 그렇게 어설픈 그림까지 그려서 설명하는지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던 것이다. 아니 그림까지 그려주면서 열심히 설명해줬는데 안 가는 것도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용서가 될 일은 아니었다.


지도를 살펴보니 내가 있었던 곳에서는 바다가 보이는 곳이 그리 멀지 않았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10분 정도 걸어가니 곧바로 항구로 보이는 곳이 나타났다.


배가 정박해 있는 곳을 살펴보니 항구의 야경치고는 꽤 화려했다. 역시 크리스마스 때문이랄까. 레스토랑으로 보이는 곳과 그 앞에 있는 배의 불빛으로 어두운 바다에 반사되어 더욱 반짝였다. 어두웠지만 제법 운치가 있었다. 물론 주변에 보이는 사람은 역시 아무도 없었다.


이번에는 좀 더 깊숙히 들어가 보기로 했다. 항구의 끝쪽을 살펴보니 반대편에 반짝이는 불빛이 보였기 때문이다. 아마 저곳이 JR직원이 알려준 그곳이라 믿고 어둠을 헤치고 걸어갔다. 항구의 창고와 같은 으슥한 곳이었고, 비는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게다가 군데군데 물웅덩이가 있어서 이미 발은 젖어버린 상태였다.


항구의 끝쪽으로 가보니 과연 도시의 야경이 보였다. 비록 아주 멋진 야경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JR직원이 알려준데로 찾아가서 야경을 봤으니 이곳이 맞든 틀리든 만족했다. 어설프게 그린 그림에서 엿볼 수 있는 그 지형으로 볼 때 이 근처가 맞을 것이라는 위안도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잠시나마 나가사키의 야경을 보며 사진을 찍고 있을 때 뒤에서 빨간 불빛이 번쩍이며 나에게 접근하는 차량이 있었다. 한눈에 봐도 경찰이었다. 그들은 차에서 내리더니 혼자 있던 내가 의심스러웠는지 다가왔다. 어두운 항구에 혼자 있었으니 이들의 눈에 정말 의심스럽긴 했나보다.

경찰 두 명은 나에게 오더니 말을 걸었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말을 하니 영어로 바꿔서 여행을 하고 있냐고 물어봤다. 처음 의심하던 눈초리보다는 조금 누그러졌지만 여전히 경계를 하는 눈빛을 가진 경찰(실제로 인상은 굉장히 푸근했다)은 어떻게 여행을 하냐고 꼬치꼬치 물었다. 잘못한게 없는 나는 언제 일본에 입국했고, 큐슈지역을 여행하고 있는 중이라고 다 이야기해줬다. 그리고 방금 전에 나가사키에 도착했는데 JR직원이 여기에서 야경을 보라고 알려줘서 항구쪽을 걸어왔다고 말을 했다.

이들은 내가 큐슈를 여행한다고 하니까 깜짝 놀라면서 아주 흥미롭게 쳐다봤다. 어디가 좋았냐는 식의 이야기는 물론 한국에도 가보고 싶다는 의사도 전했다. 이제는 의심하는 것보다 아예 여행 이야기를 듣는데 열중했다. 죄를 지은 사람이라면 경찰과의 대면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겠지만 나는 이런 일도 재미있다고 느껴졌다.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눈 경찰은 나에게 여권을 보여달라고 했다. 내가 잠깐 머뭇거리자 그들은 자신들의 신분증을 보여주면서 경찰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다. 그들의 신분증을 자세히 살피고서야 나는 가방에 있는 여권을 보여줬다. 내 여권에 찍힌 스탬프를 보면서 여행자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고, 일본 입국도 파악했다. 아무튼 여권을 확인한 후에도 우리는 그자리에 서서 30분을 넘게 대화했다. 처음에는 심문당하는 느낌이었지만 나중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심지어 음식점을 추천해달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여행하면서 별의별 일을 다 겪어봤지만 경찰의 심문을 당하다가 대화를 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이들은 즐거운 여행을 하라고 하면서 본연의 목적인 순찰을 하러 떠났다. 나도 배고파서 이 으슥한 곳을 벗어나기로 했다.


나가사키 역까지 가는 길에 음식점이라고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고, 가게들도 없어 뭘 먹어야 하는지 선택권은 커녕 어디든지 보이기라도 한다면 아무데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20분을 넘게 걸어도 보이지 않자 다시 호텔방향으로 돌아와서 사람들이 가득한 라멘집으로 들어갔다.

일본 라멘집스러운 주방과 테이블이 놓여져 있었고, 직장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시끌벅적 드나들었다. 뭔가 맛집같아 보였다. 앉아서 주문을 하려고 하는데 메뉴를 봐도 일본어로만 적혀있으니 내가 알리가 없었다. 게다가 내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주방에서도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지 난감해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내 옆에 앉아있었던 아저씨가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내가 차슈라멘이 맛있냐고 물어보니 이 아저씨는 자신도 방금 이것을 시켰다면서 추천해줬다. 그래서 나도 망설임없이 차슈라멘을 주문했다. 잠시 후 아저씨 앞으로 등장한 차슈라멘은 정말 맛있어 보였다. 후루룩 소리를 내면서 먹던 아저씨는 나에게 말을 걸고 싶은지 "자네 일 때문에 일본에 왔나?" 라고 물어봤다. 내가 여행을 하고 있다고 하니까 아까 만난 경찰아저씨들처럼 흥미롭게 바라봤다.


내 앞에도 드디어 차슈라멘이 등장했다. 한국에서 라멘을 먹으면 고기가 거의 없는데 확실히 일본에서 먹던 라멘들은 보기에도 푸짐했다. 좀 느끼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너무 맛있었다. 국물까지 다 먹은 후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정말 맛있었다고 이야기를 할 정도였다.

배를 채우자 이제는 나가사키의 차이나타운 방향으로 걸어갔다. 사실 나가사키는 과거부터 다른 나라와 교역하는 항구로 유명한 곳으로 특히 중국 상인들이 왕래를 하던 곳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차이나타운이 형성되었고, 다양한 음식문화도 형성되었는데 특히 '나가사키 짬뽕'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지도를 보면서 정말 힘들게 헤매면서 차이나타운에 도착을 했는데 역시 조용했다.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밤에도 활기찬 야시장 비슷한 분위기라도 연출될 줄 알았는데 무척 아쉽기만 했다.


나는 그렇게 계속해서 나가사키의 밤거리를 걸었다. 이정도면 하루는 걷기에서 시작해서 걷기로 끝났다고 봐도 될 정도로 무지막지한 강행군이었던 셈이다. 심심해서 근처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사들고 들어갔는데 호텔에 가서 그대로 뻗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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