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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 여행을 하면서 여러 전쟁박물관을 가봤지만 이곳에 발을 디딛는 순간 참 묘한 감정이 교차했다. 그건 내가 한국인이라는 증거이기도 했다. 누구나 다 학교에서 스쳐지나가듯 배웠지만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배를 겪던 시기가 있었고, 1945년 두 발의 원자폭탄으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은 일본은 미국에게 무조건 항복을 하게 된다. 사실 서구 열강에 의해 식민지배를 겪은 나라들이 엄청난 고통과 착취를 당했지만 일본이 저지른 만행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립을 쟁취한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더더욱 우리는 그들을 쉽게 용서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나가사키 원폭자료관 입구 앞에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입구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학생들이 그린 것으로 보이는 그림이 눈에 띄었다. 아마도 원자폭탄이 떨어진 도시이니 평화롭게 살자는 그림을 그리도록 학교에서 교육을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세상이 이렇게 아이들 마음과 같다면 전쟁 같은 것은 일어나지도 않을텐데 참 안타깝다.


나가사키 원폭자료관은 지하 2층에 입구가 있었다.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니 카운터가 있었는데 역시 일본답게 여기에서 표를 파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옆에 있던 자판기를 통해서 구입해야 했다. 카운터에 있는 사람은 그러면 뭐하라고 자판기까지 도입하는지 일본의 시스템이 재밌기만 하다. 원폭자료관의 입장료는 200엔으로 상당히 저렴한 편이었다.

다시 카운터 앞으로 가서 한국어 안내 가이드를 빌릴 수 있냐고 물어봤는데 전시관에는 대부분 한글로 적혀있어서 필요없을 것이라고 알려줬다. 아마 다른 나라였다면 무조건 먼저 빌려주고 돈을 받을텐데 일본은 있는데도 돈을 아끼라면서 안 준다. 카운터에 앉은 직원 중 한 사람은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며 나에게 몇 마디를 던졌는데 덕분에 금세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뤄졌다. 난 자판기에서 뽑은 입장권을 가지고 마치 지하철을 들어가는 것처럼 기계에 집어넣어 전시관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나가사키 원폭자료관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곳이 바로 피폭 전의 나가사키의 모습이었다. 특히 원자폭탄이 떨어지기 전에 있었던 우라카미 성당이 조금 재현되어있다. 이 우라카미 성당은 원자폭탄이 아니더라도 무척 의미있는 건축물이었다.

16세기 후반부터 천주교 포교지로서 역사를 가지고 있던 곳이 바로 우라카미 지구였는데 1587년의 천주교 금지령에서 시작된 기나 긴 박해를 견디고 1872년에 천주교 해금의 날을 맞이하게 된다. 천주교 신자들은 20년의 세월에 걸쳐 1914년에 우라카미 성당을 완성했다. 그 후 1925년에 두개의 첨탑을 완성했는데 이 탑은 26미터로 동양에서 가장 장대함을 자랑했지만 원자폭탄에 의해 다 날아가버렸고, 지금은 성당의 벽 부분만이 남아있다. 원폭자료관 밖에 보였던 바로 그 벽돌 탑이 바로 우라카미 성당의 벽이었던 것이다.


사실 나가사키의 원자폭탄이 떨어지기 전 많은 사람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했다고 한다. 계속되는 전쟁으로 포탄이 도시까지 날아왔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위력에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원래 목표점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명중이라고 볼 수 없는데도 무려 인구의 절반이 넘는 14만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당시 나가사키의 인구는 24만명이었는데 사망자는 73,884명, 부상자는 74,909명으로 집계되었다.


나가사키에 떨어졌던 원자폭탄 뚱보(원자폭탄의 이름이 Fat Man이었다.)도 재현해놨다.

일단, 결과적으로 원자폭탄이 우리의 독립을 가져다 주기는 했지만 이 위력이 새삼 무섭다는 느낌 갖기 충분했다. 원자폭탄이 무서운 것은 단지 폭탄이 가지는 위력이 쎄기 때문만은 아니다. 원자폭탄이 떨어지면 크게 4번의 재앙이 닥치는데 첫째로는 폭탄 자체의 위력으로 인해 보이는 모든 것들이 파괴되고, 두번째로는 열선으로 인해 건물은 다 타버리고(당시 일본은 나무집이었기 때문에 더 큰 피해가 발생했다), 사람다 뜨거운 열에 의해 사라져갔다. 이뿐만이 아니라 세번째로는 원자폭탄이 가진 폭풍에 의한 피해로 다시금 건물 등은 파괴된다. 네번째는 바로 방사선에 의한 피해다. 대량의 방사선에 그대로 노출된 사람들은 비정상적으로 변했고, 당시 사망하지 않았더라도 계속해서 고통 속에 살아가야 했다.


당시에 엄청난 고열로 돌이나 쇠붙이 등이 녹았던 것을 전시해놨다. 열선에 의한 피해는 다시 건물의 화재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많은 것을 파괴했다.


다소 끔찍한 사진들도 전시해놨다.


내가 전시관을 구경하고 있을 때 마침 근처 학교의 학생들로 보이는 친구들이 관람을 하고 있었다. 과연 이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어떤 역사관을 가지고 바라볼지도 사뭇 궁금해졌다.


전시관은 그리 크지 않지만 다양한 사진과 당시의 물건들을 잘 전시해 놓고 있었다. 게다가 대부분 4개국어로 적혀 있어서 보는데 크게 지장은 없었다. 물론 간혹 일어와 영어로만 설명을 해놓은 것도 있었지만 크게 이해를 못할 부분은 아니었다.


원자폭탄이 떨어졌던 상황과 당시 입었던 피해를 돌아보고 나면 이제는 당시 급박하게 돌아갔던 전시상황과 현재의 핵무기에 대한 전시를 볼 수 있다. 세계에서 유일한 핵전쟁이 되었던 일본과 미국의 전쟁은 당시의 여러 이념적인 갈등을 뒤늦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도 명분은 전쟁을 억제하기 위해 원자폭탄을 만들고, 일본에 투하를 했지만 사실 당시 일본의 국가 예산보다 더 많은 돈이 투입된 일명 '맨하탄 계획'의 성과를 보여주기 위함도 있었다.


현재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 혹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은 중국, 미국, 러시아, 인도, 이스라엘, 파키스탄, 프랑스, 영국 그리고 북한이 있다. 아직도 지구상에는 엄청나게 많은 핵무기들이 있고, 언제 세상을 불태울지는 알 수 없다.


전시관은 현대의 핵무기를 소개하는 것과 영상실로 이어지면서 마무리된다. 아마 나가사키에 오지 않았다면 원자폭탄에 대해서 전혀 생각도 못했을테고, 이런 원폭자료관도 가볼 수 없었을 것이다. 당연히 핵무기는 어떠한 경우라도 다시는 사용되지 않아야 한다. 좀 평화롭게 다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


원자폭탄으로 인해 나가사키는 쑥대밭이 되었고, 시민들은 대부분이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 당시에는 조선인이 강제로 끌려와 노역을 하고 있었는데 정말 이국땅에서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전쟁을 하면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전부 무고한 사람들 뿐이다. 일본의 야욕 때문에 원자폭탄은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떨어졌고, 오키나와에 있던 무고한 시민들은 자결을 하거나 방패가 되기도 했다.

어린 아이들이 그린 그림으로 보이는 작품들이 원폭자료관에 많이 비치되어 있었다. 대부분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나 웃는 얼굴을 그려넣었다. 정말 세상은 아이들 마음과 같을 수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