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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벳푸는 원래 계획에 없던 곳이었다. 이미 온천 마을이었던 운젠을 가봤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최대 온천도시라는 벳푸를 그냥 지나치기는 괜히 아쉬웠던 것이다. 없는 시간을 쪼개서 결국 하카타를 가기 전에 벳푸로 이동했다. 일단 벳푸에 도착하고 보니 바닷가에 형성된 도시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생각보다 더 한적하고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근데 운젠처럼 마을 곳곳에서 온천 수증기가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에서 나와도 그런 수증기는 보이지 않았다. 

벳푸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지옥순례를 하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고 간나와 지역으로 가야했다. 운젠과 마찬가지로 이곳도 지옥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1200년 전부터 뜨거운 증기, 흙탕물, 열탕 등이 분출하고 있어 주민들이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지역이라 지옥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배낭을 역 앞에 있던 코인락커에 넣은 뒤 버스를 타기 위해 기웃거렸다. 때마침 앞에 기다리고 있는 버스가 보여 들어가서 물어보려고 했는데 유후인에서부터 만났던 여학생 3명이 맨 뒤에 앉아있었다. 나도 모르게 "이거 지옥으로 가는 버스 맞아요?"라고 물으니 깔깔거리며 맞다고 한다. 지옥으로 가는 버스라니 다시 생각해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절로 나왔다.


여학생들 근처에 앉아 같이 갔는데 역시 친해지지 않았다. 나이 차이가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나 혼자 있어서 뻘쭘해서 그런지 그것도 아니면 같은 한국 사람이라 그런지 영 어색했다. 간혹 농담이나 주고 받으면서 대화를 이어갔던 것도 잠시 그냥 창밖을 쳐다봤다.

버스는 매우 한적했다. 우리들 외에도 다른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이 몇 명 보이기는 했지만 승객은 많지 않았다. 간나와 온천 일대는 내 생각보다 훨씬 멀었다. 난 왜 이곳까지 걸어서도 갈 수 있을거라는 착각을 했는지 의문이다. 간나와 온천까지는 약 30분 걸렸다. 

버스에 내리니 바로 앞에 바다지옥(우미지고쿠)이 보였다. 벳푸에는 총 9개의 지옥이 있는데 운젠처럼 이어져 있던 것이 아니라 각 지옥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했다. 대부분 400엔이었고, 8개의 지옥을 한꺼번에 둘러볼 수 있는 패스권은 2000엔이다. 각 지옥을 들어가 보면 알겠지만 400엔이라는 금액이 상당히 비싸다는 느낌이 든다. 

아무튼 바다지옥을 향해 걷고 있는 아까 버스에 있었던 두 분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알고보니 한국 분이셨는데 어머니와 딸로 보이는 모녀지간이었다. 아주머니는 내가 혼자 다니고 있다고 하니 대단하다며 부럽다는 말을 하셨다. 이분들도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니까 똑같은 것 아니냐고 물었는데 놀랍게도 벳푸에 오늘 왔고, 오늘 한국에 돌아간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니까 부산에서 배를 타고 잠깐 일본 나들이를 오신 것이었다. 


바다지옥 앞에는 매표소가 있다. 8곳의 지옥을 다 볼 수 있는 시간이 없기도 했지만 2000엔이나 드는 벳푸 패스권은 너무 비싸다고 느껴져 그냥 바다지옥의 입장료만 냈다. 400엔도 무척 비싸게 느껴졌다. 운젠은 지옥순례가 무료였는데 여기는 정말 일본의 상업주의가 철철 넘쳤다. 


바다지옥의 엽서를 준다. 마치 400엔짜리 엽서를 산 기분이 들었다. 


아직 지옥이라고 느끼기엔 주변의 풍경이 너무 평화스러웠다. 간간히 수증기가 올라오는 모습은 보였지만 운젠에서는 가득했던 유황냄새는 별로 없었다.


바다지옥을 가기 전에 나왔던 발의 온천이 궁금해서 따라가봤다.


작은 언덕길을 오르니 몇 개의 평상이 보였고, 그곳에 앉아 온천에 발을 담글 수도 있었다. 혼자 여행을 왔는지 발을 말리고 있는 한 여인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여행을 하면서 너무 걸어다녔기에 나도 온천에 발을 담그고 쉬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는데 우선 바다지옥부터 보고 와서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발의 온천 옆으로 가보니 수증기가 계속 올라와 눈앞의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설마 여기가 바다지옥? 


붉은색 연못만 봐도 바다지옥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다른 이름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다른 지역의 지지고쿠와 색깔이 비슷하다고 한다. 시간이 별로 없다면 바다지옥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두 군데의 지옥을 보는 셈이다. 붉은색 연못은 쉬지 않고 부글부글 끓고 있었고, 계속해서 수증기가 올라와 제대로 사진을 찍기가 힘들었다. 


그 옆에는 온실도 있었는데 온천의 열을 이용한듯 보였다. 좋은 향기가 나온다고 친절히 한글로 적혀있다는 점은 눈에 띄었지만 크게 다른 온실과 차이점을 느끼지 못하겠다.


이제 가장 핵심적인 장소인 바다지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나가다가 재미있는 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바로 연꽃을 타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여름 방학에 아이들을 대상으로 연꽃타기 이벤트를 한다는 내용이었는데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어 보였다. 내 몸무게가 20kg미만이었다면 당장 타보고 싶을텐데 불가능한 일이다. 


바다지옥을 가기 위해서는 일본의 철저한 상업주의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기념품 가게를 지나야 했다. 세상 어느 관광지를 가더라도 기념품 가게를 마주하는 것은 당연한데 이상하게 일본만 보면 더 교묘하고 상업적인 색채가 더 짙다고 느껴졌다. 벳푸시의 특산품을 파는 것은 물론 온천과 지옥에 관련된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내 눈에 가장 띄었던 것은 다름아닌 티셔츠였는데 지옥 온천답게 해골이 좋다고 몸을 담그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있었다. 


기념품 가게를 지나면 곧바로 바다지옥이 나타난다. 과연 바다지옥이라고 불릴만큼 새파란 색깔의 온천이 팔팔 끓고 있었고, 수증기는 계속 올라와 내 시야를 가렸다. 수증기 사이로 간간히 보이는 온천을 찍어보고자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면서 사진을 찍었는데 그때마다 수증기는 나한테 왔다.


바다지옥은 1200년 전에 쯔루미산 폭발에 의해 생긴 커다란 연못이라고 하는데 이 연못이 푸른 바다처럼 보이기 때문에 바다지옥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파란색이라 별로 안 뜨거울 것처럼 보이는데 온도는 200도라고 한다. 


바다지옥에도 계란을 팔고 있었는데 지면의 열이 아닌 바다지옥에 담궈서 익히고 있었다. 그래, 이런게 바로 지옥 계란이지. 운젠에서는 지면에서 익힌 계란을 먹은터라 조금 아쉬웠는데 여기는 진짜 지옥식 계란같았다. 다만 담궈놓은 것만 보였지 주변에 아무도 없어 누가 파는지는 알 수 없었다. 


바다지옥을 실컷 구경한 뒤 나는 피로를 풀기 위해 발의 온천으로 갔다. 아까와는 다르게 꽤 많은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발을 담그고 있었다. 


온천에 발을 담그기 전에 사진을 몇 장 찍는데 반대편에 있던 일본 아가씨들은 알아서 포즈를 취해주기도 했다. 사진을 보여주니 잘 나왔다면서 좋아했다. 


나도 양말을 벗고 온천에 발을 담궜다. 조금 심심하기는 했지만 온천물에 발을 담그며 쉬는 것도 참 좋았다. 내 앞에 앉아있던 일본 아가씨들이 일어나자 나는 주변을 천천히 살펴봤는데 멀리서는 인도나 동남아시아쪽 사람으로 보이는 부부가 보였고, 내 옆에는 한국인 가족이 보였다. 확실히 유후인이나 벳푸나 한국 사람은 많이 있는듯 했다. 

잠시 후 아저씨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가이드북과 똑같다면서 자연스럽게 말을 하게 되었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북큐슈를 여행하고 있다고 하셨다. 내가 어디를 가봤냐고 물어보자 며칠 전에는 네덜란드를 그대로 옮겨 놓은 하우스텐보스도 다녀오셨다고 한다. 우리는 그렇게 잠깐 대화를 나누다가 일어났다. 그리고는 길이 다른 여행자는 바다지옥 앞에서 서로 즐거운 여행이 되라는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다. 나는 곧장 다른 지옥을 찾아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