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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다바야시로 가는 길은 정말 복잡했다. 무리도 아니다. 미리 구입했던 가이드북에도 돈다바야시에 대한 정보가 없을뿐더러 전철 노선도에도 돈다바야시는 찾을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난 오사카에 도착한 이후 단 한 번도 가이드북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어쨌든 돈다바야시를 찾아 가긴 해야 하는데 처음 간사이 공항에 떨어진 이후 보게 된 오사카의 교통은 왜 이렇게 복잡하던지 노선은 그렇다 해도 각 역마다 정차하는 열차가 다르게 구분되어 있는 것은 5가지 이상 될 정도였다. 즉, 시외로 나갈수록 급행을 선택해도 내가 내리는 역에 정차하느냐 안 하느냐를 알아야 했다. 이미 난 전철을 타고 이동 중이었기 때문에 확인을 해보지 않았지만 얼핏 돈다바야시로 가는 리무진 버스가 있다고는 들었다. 공항이라면 분명 버스가 더 편하긴 할텐데 그건 좀 아쉽다.


간사이 공항에서 돈다바야시로 이동한 방법은 이렇다. 일단 간사이 공항에서 난카이 본선을 이용해 텐가차야역에 도착한 다음 난카이 고야선을 탔다. 그리고는 가와치나가노역까지 이동한 다음 돈다바야시역으로 가는 킨테츠 나가노선을 타면 된다. 좀 복잡하게 가기는 했는데 사실 텐노지에서 출발한다면 킨테츠 미나미오사카선을 타면 돈다바야시로 한 번에 갈 수 있다.

이렇게 공항에서 출발해 여러 번 전철을 갈아타니 돈다바야시까지 더 멀게만 느껴졌다. 난 그렇게 오사카에 도착하자마자 화려한 도심을 보는 것이 아닌 시골 마을로 향하고 있었다. 실제로 전철 밖에는 낡은 맨션과 회색빛이 도는 오래된 주택이 보일 뿐이었다. 전철에서 내리기 직전 맞은편에 앉은 아주머니는 돈다바야시역에 내리면 남쪽 출구로 가면 된다고 일러줬다. 돈다바야시역에 도착해 아주머니가 알려 준대로 남쪽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자 처음에는 ‘대체 여기가 왜 특별한 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평범한 시골마을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역의 바로 앞에는 시골스럽게 색이 바란 초록색 버스가 몇 대 보였다. 역 앞이었지만 도시는 그만큼 한가해 보였다.


돈다바야시로 온 목적은 오랜 역사를 간직한 마을 ‘지나이마치’를 걷기 위해서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무작정 찾아갔기 때문에 어디가 어딘지 알 리가 없었지만 다행히 역 맞은편에 인포메이션 센터가 있었다. 여행자에게 있어 낯선 땅을 여행할 경우 대게 인포메이션 센터부터 시작하기 마련이다.

인포메이션 센터로 들어가니 당연하겠지만 아주 친절하게 반겨주셨다. 지나이마치로 가는 길을 물어보니 바로 인포메이션 센터가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면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다행스럽게도 한글로 된 지도를 아주 쉽게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나이마치의 주요 볼거리에 대해 물어봤는데 가장 오래된 건물과 사원을 지도에 표시해 줬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 지역에서 맛있는 소바 가게와 빵집도 알려줬다. 이제 필요한 정보는 얻었으니 본격적으로 골목을 걷기로 했다.


지나이마치는 돈다바야시의 가장 대표적인 관광지로 볼 수 있다. 총 600채의 주택 중에서 250채 정도가 여전히 전통적인 상가주택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역사를 간직한 도시,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도시이기에 걷는 즐거움이 있다.


어느 정치인일까? 아무리 까막눈인 내가 봐도 정치인의 선거 벽보라고 눈치 챌 수 있었다. 근데 일본의 선거 벽보는 원래 이렇게 오래된 질감의 종이를 사용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조차도 건물과 함께 세월을 같이 보낸 것처럼 느껴졌다.


한가해 보이는 좁은 골목길이었지만 심심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어쩌면 한국과도 다름이 없는 일본의 어느 거대한 도심지보다 이 거리는 여행자에게 훨씬 정겨운 풍경이었다.


오래된 골목길을 구석구석 누비다 보면 몇 년이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지 짐작조차 쉽지 않은 가게들이 많이 보인다. 인구 12만명의 돈다바야시가 마냥 작다고 볼 수 없는데도 여기에서만큼은 도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편의점은 찾을 수 없었다. 대신 골목에는 터줏대감처럼 자리잡고 있는 가게들이 많이 보였다. 어느 사진관에 쌓여있는 카메라들은 오래된 세월을 확인시켜줬다.


멀리서 고양이가 빤히 쳐다보길래 가까이 갔더니 대문 안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지나이마치에는 꼭 전통적인 가옥이 아니더라도 이 주변의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이 거리를 걷다보니 큐슈 지역에서 오랜 전통을 간직한 마을인 시마바라가 생각났다. 시마바라는 구마모토에서 배를 타고 건너가 들린 작은 마을로 돌담길과 가옥이 있고, 가운데 수로가 있어 한가하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졌던 곳이다. 그 거리가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언뜻 지나이마치도 비슷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골목에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과 애견을 데리고 산책에 나선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밤이 되면 불이 들어오는지 등이 보였다. 오래된 옛 거리를 비추는 은은한 불빛 사이로 걸으면 몽환적인 느낌이 들 것 같은데 실제로 밤이 되면 불이 들어오는지 확인도 하지 못해 아쉽기만 하다.


사실 대단히 화려하다거나 볼거리가 가득한 그런 거리는 아니다. 내가 인상적이라고 했던 시마바라는 돌담길 사이로 수로가 흘렀고, 어느 골목에는 잉어를 키우는 골목길도 있어 무척 특이했지만 지나이마치는 그런 독특한 장소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점도 전신주도 그리고 새로 지은 것처럼 색이 선명한 어느 집도 이 골목길에서는 서로 조화를 이루었다. 그저 천천히 골목길을 걷다가 소박한 식당을 만나는 게 재미라면 재미였다.


유치원에서 하교를 하는지 노란 모자를 쓴 아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지나이마치의 박물관인지 작은 전시 공간이 있었는데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아무래도 일어로만 적혀 있기 때문에 무슨 내용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대충 당시 이 지역에서 사용된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거나 이곳의 건물들이 어떻게 지어졌는지 보여주는 것들이 있었다. 특히 돌아다닐 때는 몰랐는데 이곳 기와의 끝부분에는 독특한 무언가가 매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나이마치는 구석구석 살펴보면 재미있는 요소가 많았다.


스기야마가의 주택은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주택이다. 안내 지도에 첨부된 자료에 따르면 스기야마가 주택은 지나이마치가 형성되기도 전에 내려오던 옛집이라고 하는데 에도시대부터 메이지시대 중기까지 양조장으로서 가와치 양조업의 중심 역할을 담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1650년에 지어진 토방이 가장 오래되었고, 현재의 모습은 1734년에 완성되었다고 하니 거의 400년 가까운 세월을 지켜온 것이다. 이 스기야마가 주택은 지나이마치에서 유일하게 입장료가 있어 400엔을 내야 한다.


이 골목길의 풍경처럼 아주 천천히 여유롭게 걸으며 주변을 돌아봤다. 빼곡하게 늘어선 빌딩보다 어쩌면 이런 풍경 사이로 걷는 편이 좀 더 여행다웠다고 할까? 아마도 날씨가 따뜻했다면 좀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날씨가 춥거나 말거나 뛰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무척 정겹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