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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르툼에 도착한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나와 마사는 국경을 향해 떠났다. 새벽 5시부터 배낭을 메고 버스터미널로 향했고, 버스는 예상대로 정시에 출발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날은 점점 밝아왔다.


이집트에서 국경을 넘을 때와 마찬가지로 온갖 짐을 가지고 온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출발 전부터 피곤함이 몰려왔다. 여기까지는 그렇다 해도 내 배낭의 무게를 재더니 돈을 내라고 해서 순간 짜증이 났다. 남유럽에서 별도의 짐을 실을 때 약간의 비용을 냈던 적은 있어도 비행기처럼 무게에 따라 돈을 냈던 적은 없었다. 내가 약간의 화를 내니 그들은 이곳은 수단이라 그렇다며 넘어갔다. 수단에서 좋았던 기억이 많았지만 막판에는 짜증났던 적도 꽤 많았다.

 

버스는 예정 시간보다 무려 1시간이나 늦게 출발했다. 걸어 다닐 수 없을 정도로 통로에도 짐으로 가득 차 나와 마사는 어이 없는 웃음만 계속 지었다.


러시아에서 7일간 기차를 탔던 적도 있던 나는 장거리 이동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고 믿어왔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특히 아프리카에서 가장 힘들다고 느낄 때가 버스 타고 이동하는 순간이었다.


온몸이 뻐근했다. 새벽부터 나와 휴게소에서 먹은 게 햄버거가 전부라 배고팠다. 더 큰 문제는 잘 달리던 버스가 갑자기 도로 한복판에서 멈췄다. 그야말로 망연자실, 국경까지 약 100km 정도 남았는데 여기서 멈추다니 어이가 없었다.

 

주변에는 아무 것도 없어 다들 앉아서 혹은 누워서 기다렸다. 1시간이 흘렀고, 2시간이 흘렀다. 설상가상으로 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곳에서 일몰은 보고 싶지 않았다.


물론 에티오피아인도 많이 있었지만 그들의 입장에서 외국인이라고는 나와 마사뿐이라 가끔씩 말을 걸어 오는 사람과 사진을 찍어 달라는 아이들이 있었다


3시간 뒤에야 다른 버스가 왔다. 그러나 사람들이 짐을 옮겨 싣느라 버스를 타기까지 또 40분이 걸렸다. 국경마을인 갈라밧(Gallabat)에 도착했을 때는 11시가 넘었다. 늦은 시각에 도착한 우리는 저녁도 먹지 못한 채 자야 했다. 빵 하나와 콜라로 겨우 허기를 채웠다는데 만족했다.


거의 야외에서 자는 거나 다름 없는 수단의 호텔, 20파운드에 누울 침대가 생겼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은 별을 바라보며 수단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다음날 수단의 국경을 넘었다. 하지만 국경에서 여권에 거주지등록이 없어 잡혔다. 수단을 여행하는 외국인은 거주지등록을 해야 하는데 꼭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건 국경을 나갈 때는 거주지등록에 대해 물어보는 건 복불복이기 때문이다. 어떤 여행자는 아무런 말도 없이 도장을 찍어주었지만, 나는 운이 안 좋았던 것인지 거주지등록이 없다며 도장을 찍어주지 않았다. 그것도 2시간 동안이나. 거주지등록을 하지 않은 것은 내 탓일 수 있으나 수단을 여행하는 동안 어느 누구도 거주지등록을 해야 한다고 말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남은 돈은 10파운드에 불과하고, 어차피 수단에서는 신용카드나 ATM을 이용한 출금이 불가능해 돈이 없다고 버텼다. 그런데 거주지등록 문제가 아닌 나에게 그저 앉아 있으라고만 해서 화가 났다. 돈이라도 내라고 하거나, 아니면 페널티라도 부여하거나 해야 하는데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은 채 계속 기다리라고만 했다. 한참 후 책임자가 나타난 후에야 내가 이러한 상황에 대해 따졌더니 도장을 찍어줬다.

 

마사는 2시간 동안 기다릴 수 없기 때문에 먼저 떠난 뒤라 나 혼자 수단 국경을 넘었다. 그리고 에티오피아 국경에 가서 도장을 찍고 바로 넘으려 했는데, 여기서 또 걸렸다. 지금까지 50개국이 넘는 나라를 여행했지만 호텔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묻는 곳은 처음이었다. 나는 어차피 여기서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려줘도 나중에 그곳에 묵지 않으면 그게 무슨 소용이냐고 따졌는데 그럼에도 정말 집요하게 주소와 전화번호가 필요하다고 했다. 가이드북이 있냐고 물어보길래 그런 건 없다고 했다. 에티오피아 국경에서 30분간 잡혀있었던 것 같다. 지도를 보여주고 여기서 묵을 거라고 해도 도장을 찍어주지 않았던 그들은 끝내 지도로 대충 주소를 파악해 적은 뒤 입국을 시켜줬다.


국경은 여태껏 넘었던 어떤 곳보다도 허술했다. 나무 막대기를 몇 개 엮어 경계를 만들었지만 그 옆은 여전히 개방된 상태라 사람들은 자유롭게 왕래하고 있었다. 국경 바로 옆에 앉아있던 남녀 3명은 세관직원이라며 내 가방을 잠깐 검사했다. 가방을 몇 번 만지더니 통과란다. 이런 허술한 국경을 넘기가 그렇게 힘들었다니 혼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국경을 넘은 후 환전부터 했다. 메테마에는 ATM이 없어 에티오피아 비르를 구해야 했다. 다행히 수중에는 40달러가 있었는데 환전소에서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가격을 불렀다. 40달러에 640비르라고 해서 확인해 보니 공시환율은 840정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적당히 해먹어야 하는데 너무 심하게 후려쳐서 다음 곳을 가니 700, 다시 다른 곳을 가도 700이라고 하길래 적당히 타협을 해서 800까지 받을 수 있었다.

 

환전을 하고 바로 맞은편에 커피를 파는 곳이 있어 잠깐 시선이 멈췄다. 다들 커피 한 잔 하고 가라고 해서 배고픔에도 털썩 주저 앉았다. 커피의 원산지라고 하는 에티오피아의 커피 맛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가격은 20비르(약 1000원)였는데 결론적으로 이것도 당한 거다. 당시는 국경을 넘은 직후라 몰랐는데 보통 에티오피아식 커피는 5~8비르에 불과하다.

 

국경마을 메테마는 길을 따라 형성된 곳이라 딱히 중심가라고 할만한 곳이 없었다. 계속 걸어야 버스터미널이 나온다 해서 그저 걷기만 했다. 외국인을 신기하게 쳐다보기도 하고 나름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던 곳이었다.


배가 너무 고팠다. 빨리 곤다르로 이동해 밥부터 먹고 싶었다.


도대체 나온다는 버스터미널은 어디에 있는지 하염없이 걷고 있는데 뚝뚝을 타고 있던 남자가 타라고 했다. 나는 걷겠다고 완강히 말했으나 그는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며 타라고 했다. 어차피 가까운 거리였지만 정말로 돈은 내지 않았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수단에서는 아예 볼 수도 없었던 술을 여기서는 아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나를 도와준 친구로 영어를 무척 잘해서 물어보니 예전에 가이드를 했다고 한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대화 상대가 되어주고, 아무런 조건 없이 도와줬다. 그래서 에티오피아인은 친절하다는 인식을 갖게 만들었는데, 나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판단은 유보해야 할 거 같다. 버스를 탈 때 말도 안 되는 짐 값을 받을 때 옆에서 원래 그렇다고 말했는데 실제로 에티오피아를 여행하면서 짐을 싣는 비용을 터무니 없이 높게 받았던 적은 없었던 것으로 보아 나를 속인 게 아닌가 의심이 살짝 든다. 어쨌든 버스를 타고 떠날 때도 손을 번쩍 흔들어 당시 이미지는 무척 좋았다.


온통 사막이었던 수단과 달리 에티오피아에서는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진 산을 달렸다.


마을을 지날 때마다 체크포인트가 있어 경찰이 일일이 승객을 검사했다. 수단에서도 체크포인트가 있긴 했지만 몇 시간을 달려도 한 군데를 볼까 했는데 에티오피아에서는 곤다르까지 가는 5시간 동안 8군데가 넘는 체크포인트를 지나쳤다.


귤처럼 보여서 호기심에 아이들에게 샀는데 너무 셨다.


곤다르까지는 금방 도착할 줄 알았지만 수많은 체크포인트 그리고 고개를 계속 넘는 험준한 산을 통과하느라 무려 5시간이나 걸렸다. 곤다르를 오기 전까지는 나무와 흙으로 만든 집만 보였다면 이곳은 작지만 제법 도시의 분위기를 갖춘 곳이었다.


숙소를 찾아 체크인을 한 후 곧장 저녁을 먹으러 내려갔다. 고기를 매달아 놓고 써는 모습이 무척 신기했다. 저녁을 허겁지겁 먹고 있을 때 수단에서 국경으로 가던 버스에서 만났던 꼬마 아이가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 마침 지나가던 아이의 엄마도 나에게 여기에 혼자 있냐며 물었다.


저녁을 다 먹은 후 에티오피아인들에게 인사나 하고 헤어지려고 안에 들어갔는데 그들이 앉으라고 계속 권해 같이 술을 마시게 되었다. 마침 이 식당의 내부에는 작은 무대가 있어 에티오피아 전통 공연도 하고 있어 즐거움을 더했다. 난 재빨리 숙소로 돌아가 포토프린터 가지고 온 후 사진을 뽑아줬다. 그랬더니 나중에 아디스아바바에 오면 연락하라고 전화번호를 건네줬다. 계속 맥주를 마시자는 그들의 제안에도 이날은 너무 피곤해 맥주 3병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상 수단까지 중동으로 치는 경우가 많은 까닭에 에티오피아가 실질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아프리카에 가깝다. 수단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들떴다. 게다가 맛있는 음식까지 있으니 에티오피아 여행 초반에는 좋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에티오피아에 오면서 여행자도 꽤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 독일인 아저씨도 아침을 먹다가 우연히 만났다. 젊었을 때 여행을 많이 했고, 지금도 터키에 거주하면서 휴가 때마다 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과연 커피의 나라답게 어디에서나 쉽게 커피를 마실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에티오피아식 커피는 여행자의 눈에 신기할 수밖에 없다. 보통 숯불에 호리병을 올려 커피를 끓인 후 손님에게 내주기 직전에 향을 피운다. 그런 후 커피를 작은 잔에 따라주는데 커피 맛은 개뿔 아무 것도 몰라도 쭈그려 앉아 마시는 게 나름 재밌다. 가격도 200~300원 정도로 워낙 싸고. 개인적으로 에티오피아 커피는 신맛이 강하게 나는 것 같다.


동네에서 짐을 짊어지고 가는 당나귀나 양떼를 자주 보게 된다. 우리 입장에서는 소나 당나귀나 줄로 묶어야 할 거 같은데 여기서는 그런 거 없다. 그냥 옆길로 새는 당나귀를 몽둥이로 후려칠 뿐이다.


생고기를 우리나라만 먹는 줄 알았는데 에티오피아에서도 즐겨 먹는다. 어떤 식당을 지나다 생고기를 먹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는데 그때 옆에서 지켜보던 종업원이 손님의 고기를 한 점 집어 소스를 찍은 뒤 내 입에 넣었다. 물컹거리는 식감에 내 인상이 살짝 변하기 시작하자 주변 사람들이 전부 웃었다. 실제로 고기는 먹을만하나 간혹 질기다.


흔히 아프리카를 생각하면 무더운 날씨와 말라비틀어져 가는 사막만 떠오르는데 에티오피아는 정반대다. 에티오피아는 높은 산이 많아 내가 여행할 당시 아침, 저녁으로는 매우 추웠다.


곤다르의 유명한 관광지 성이 있지만 입장료가 200비르나 한다고 해서 들어가지 않았다. 나중에 얘기하겠지만 에티오피아의 평균 물가에 비해 관광지는 터무니 없이 비싸 아예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게 만든다. 당연히 이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입장료다.


중심가를 벗어나 길을 걷고 있을 때 멀리서 장발의 남자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일본 사람 아니냐고. 아무튼 덕분에 잠깐이나마 동행자가 생겼다. 버스터미널로 가려던 후미코와 같이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점심을 먹었다.


에티오피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팁스(Tips), 근데 보통 화로에 올려진 이걸 가리켜 샤키라(정확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난 항상 이렇게 부름)라고 했다. 확실히 수단에서 넘어오니 먹을 게 풍성해진다. 그리고 뭐든 다 싸다. 맥주 1병에 12~13비르였으니, 이건 뭐 뭘 먹어도 부담이 없다.


그리고 에티오피아 음식에서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인제라다. 빵처럼 뜯어 먹거나 쌈처럼 안에 고기나 야채를 넣어 먹는데 처음에는 인제라가 익숙하지 않았다. 신맛이 살짝 돌고 구멍이 숭숭 뚫린 모양도 낯설었기 때문이다.


게으른 여행자는 곤다르에서 늘어지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