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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요디아 왕국에서 라마가 태어나 자나카 왕의 딸인 시타와 결혼하게 되었다. 그런데 랑카(지금의 스리랑카)의 마왕 라바나에 의해 시타가 납치된다. 라바나는 브라마에 의해 권능을 얻게 되었고, 신조차도 그를 죽일 수 없게 되었는데 라마는 이 라바나를 죽이기 위해 태어난 비슈누의 화신이었다. 라마는 시타를 구출하기 위해 여러 모험을 겪은 뒤 원숭이 하누만 장군과 라바나의 친형제 비비샤나의 도움으로 랑카를 공격, 결국 라바나를 죽이고 시타를 구한다.

이후에 여왕의 순결에 대한 이야기가 더 있기는 하지만 보통 여기까지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바로 인도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라마야나(Ramayana)다. 인도의 대표적인 대서사시인데 인도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에 문화, 예술, 종교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 인기와 영향을 더 쉽게 설명하자면 우리에게 무척 유명한 서유기가 바로 라마야나에 나오는 원숭이 장군, 하누만을 모티브한 것이라고 한다.

사실 난 라마야나에 대해서 잘 몰랐다. 인도차이나 반도를 여행할 때도 유적지나 사원을 둘러보면서 으레 불교나 힌두교에 대해서만 생각했지 라마야나의 이야기가 담겨있는지는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조금만 기억을 더듬어 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캄보디아의 대표적인 불교 유적지 앙코르왓(앙코르 유적지 내에는 불교도 있고, 힌두교도 있다) 회랑에는 라마야나 이야기가 부조로 새겨져 있고, 태국은 국왕을 라마의 화신이라고 하여 현재 푸미폰 국왕을 라마 9세라고 부르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튼 이 유명하고 유명한 라마야나 이야기를 프람바난에서 공연으로 관람할 수 있다. 공연을 볼 때는 이런 자세한 이야기까지는 몰랐지만 라마야나에 대해 흥미를 가진 채로 공연을 본 것은 사실이다. 라마야나 공연은 프람바난 사원과 조금 떨어진 야외 공연장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난 여기서도 어김없이 길을 헤매기 시작했다. 프람바난이 문을 닫을 때에는 가로등이 거의 없어 무척 어두운데 잠시 사진을 찍다가 일행을 놓친 것이었다. 너무 어두워서 길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는데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에게 출구로 가라는 안내에 의해 더 이상한 길로 가버렸다. 너무 어둡고 혼자가 되었지만 별 걱정은 되지 않았는데 그때부터 난 라마야나 공연장을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가까울 줄 알았던 라마야나 공연장은 상당히 먼 거리에 있었고, 난 무지하게 걷게 되었다. 프람바난에서 아예 나와 도로가 있는 길을 걸었는데 그게 완전히 돌아가는 길이었던 것이다. 여기가 프람바난 유적지가 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어두컴컴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밤거리였다. 혼자 걷는 나를 발견한 오토바이 아저씨들이 접근해서 10000 루피아 혹은 5000 루피아에 공연장까지 태워주겠다고 꼬셔댔다. 그때마다 '공연장까지 멀어봐야 얼마나 멀겠어?'라는 생각으로 그들의 삐끼질을 물리쳤다. 근데 나중에 한 30분을 더 걷고 나서야 5000 루피아를 주고 탔어야 했다며 후회가 밀려왔다.

결국 이래나 저래나 라마야나 공연장까지는 걸어서 무사히 도착했다. 온갖 후회를 다 했지만, 한가지 다행스러웠던 점이라면 7시에 시작하는 공연 전에 도착했다는 것이었다.


라마야나 공연장 바로 앞에는 부페식으로 저녁을 먹을 수 있었는데 가격은 조금 비싼 7만 루피아였다. 근데 무지하게 배고팠다는 점도 있었지만, 맛은 정말 괜찮았다. 적당한 가지 수의 음식과 맛은 만족스러웠으며 특히 야외에서 프람바난의 야경을 보며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점이 무척 좋았다. 대신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무조건 음료를 주문해야 한다. 걸어오느라 땀도 나서 그런지 시원한 맥주가 땡겨 빈땅(2만 5천 루피아)을 식사를 하면서 마셨다.

걸어오면서 배고픔에 미칠 것 같았는데 정신없이 밥을 먹으니 그제서야 좀 살 것 같았다. 밥을 먹고 난 후 바로 눈앞에 보이던 프람바난 사원에 관심이 갔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노란 조명에 의해 은은한 야경을 쏟아내고 있었다.


가만히 프람바난의 야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저 신비로움에 휩싸이기 충분했다. 인공적인 불빛이라도 거대함 위압감이 느껴졌던 것이다. 현실세계와 과거의 경계가 조금 무너진 것처럼 느꼈다고나 할까? 항상 오래된 유적 앞에 서면 드는 생각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스쳐지나갔다.


라마야나 공연(Ramayana Ballet)은 좌석에 따라 요금이 달랐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무대와 가장 가깝고, 중앙에 위치할 수록 비싼 자리다. 비록 라마야나에 대해 흥미가 생기겠지만 공연이 재미있을지는 확신이 들지 않았고, 무엇보다 좀 괜찮은 자리는 가격이 꽤 비쌌다. 가장 비싼 VIP는 25만 루피아(약 3만원)이었고, 그 다음 비싼 Khusus는 17만 5천 루피아였다. 낮은 좌석에 속하는 클래스1(Klas I)과 클래스2(Klas II)는 각각 15만 루피아, 7만 5천 루피아였다.

공연이 어떤지도 모르는데 15만 루피아 이상이라는 거금을 들이는 비싼 좌석은 역시 부담이었다. 라마야나 공연이 무엇인지만 구경하고 싶다는 생각에 가장 낮은 클래스2 좌석을 선택했다. 또 하나 이런 선택을 한 이유가 인터넷에서 누군가가 이 좌석만으로도 공연을 충분히 볼만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7만 5천 루피아짜리 좌석을 구입하고, 더불어 카메라 요금인 5천 루피아까지 냈다. 근데 비디오 카메라의 요금은 무려 10배인 5만 루피아를 내야 한다. 어차피 카메라에 동영상 촬영도 될터인데 비디오 카메라 요금을 낼 필요는 없어 보인다.

TIP) 한국에 돌아와서도 몰랐는데 라마야나 공연이 끝나고 족자카르타로 돌아가는 교통편을 이 매표소에서 신청할 수 있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프람바난을 구경했고, 버스가 끊긴 시점에서 라마야나 공연을 본 것이었다. 6시 이후라면 버스가 끊기는데 돌아가는 교통편은 아무런 대책도 하지 않았다. 분명 돌아가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만 하고,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정말 공연이 끝나고 족자카르타로 돌아가는 밴과 접촉해서 무사히 돌아 갈 수 있었다. 물론 흥정을 해서 조금 더 싸게 갔지만 애초에 혹시라도 있을 아주 작은 걱정은 할 필요도 없었다. 매표소에서 3만 루피아를 내면 족자카르타까지 가는 교통편을 해결할 수 있다.

입구에서는 그들의 전통의상으로 보이는 옷을 입고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남자인데도 치마로 보이는 하의를 입고 있었다. 뭐, 유명한 관광지이니까 당연할 수도 있지만 미소를 머금고, 아주 친절하게 대해줬다.

라마야나 공연장은 야외다. 따라서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작지 않은 무대가 드러났고, 저 멀리에는 프람바난까지 보였다. 그러니까 프람바난이 자연스럽게 배경으로 깔려서 특별히 무대 장치를 하지 않아도 멋스러웠다. 대신 가장 낮은 클래스답게 돌로 이루어졌다. 게다가 제 자리를 찾아 가보니 정면이 아니라 살짝 옆에서 보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역시 가격이 싼 이유는 확실히 있었다.


라마야나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공연을 본다는 것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이다. 정확한 스토리도 몰랐고, 좌석의 특성상 무대와 거리가 멀어 제대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 프람바난의 라마야나 공연은 좀 느릿느릿한 동작에 밋밋하다는 특징이 있었다. 솔직히 말해 좀 졸렸다. 내 옆에 인도네시아 사람으로 보이던 분도 꾸벅꾸벅 졸더라.

카메라로 무지하게 당겨서 잡았기 때문에 흔들려도 사진을 찍을 수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공연을 볼 때는 누가 누구인지, 어떤 이야기인지 구분이 안 되서 좀 힘들었다. 하지만 나중에 다른 곳에서 라마야나를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는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대략적인 이야기도 아니까 말이다.


물론 순전히 내 추측이기는 하지만 라마와 시타가 아닐까 생각된다. 초반에 나오는 장면이니 라마의 탄생이나 시타와의 사랑이야기 등이 대충 맞는 것 같다. 전반적으로 공연은 뚱땅거리는 소리와 함께 배우들이 연기를 펼치는데 이게 손과 몸을 흐느적거려 춤인지 연기인지 모르겠다 .


마왕 라바나는 브라마에게 얻은 권능으로 인해 신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브라마가 신도 죽일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나 원숭이라면 라바나를 죽일 수 있었는데 힌두교의 3대 신이라고 할 수 있는 비슈누는 라마로 태어나 라바나를 죽이러 간다.

힌두교에서 비슈누는 신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 세상이 어려울 때마다 구했다고 하는데 그것을 가리켜 화신이라고 한다. 비슈누는 여태까지 9번의 화신이 있었는데 10번째는 미래에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다. 그 중 7번째 화신이 바로 라마이고, 재밌는 점은 9번째가 부처(Budda)다. 힌두교에서는 부처조차 비슈누의 화신으로 포함시켜 버린 것이다.


라마가 원숭이 장군 하누만을 만나는 것과 라바나와 시타의 이야기를 표현한 것 같다. 라마는 바로 하누만 장군과 함께 시타를 구출하러 가게 된다.


하누만은 라마야나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고 할만큼 굉장히 중요한 존재다. 원숭이지만 여러 명으로 분신을 하기도 하고, 몸집이 작아져서 숨어 들어갈 수 있는 요술을 부리는데 그 유명한 서유기의 기원이 된다. 꼭 서유기가 아니더라도 라마를 도와 라바나를 무찌르는 역할을 하니 당연히 중요할 수밖에 없다.


초중반에 좀 졸다가 여기서부터 잠이 확 깼는데 분위기도 조금 빨라지고, 본격적으로 라바나를 물리치기 위해 랑카를 공격하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하누만의 활약이 두드러지게 나오는데 라마야나에서는 전쟁의 상처로 인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 라마를 위해 한 걸음에 랑카로 달려가거나 요술을 부려 라바나에 잡혀 있는 시타와 연락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라바나에게 잡혀 화형에 처해지게 되는데 하누문은 오히려 이 불을 이용해 라바나의 군대를 모조리 불태운다. 여기서 공연장 내에 실제로 불이 붙기 시작하는데 아무리 라마야나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집중해서 보게 된다.

여기까지 공연을 한 후 잠시 휴식을 갖는다. 아무래도 라마야나의 전체 스토리가 길어 좀 환기를 시킬 필요도 있고, 안전을 위해서 불도 꺼야 하니까 그런듯 하다. 공연장 밖으로 나오면 차를 마시거나 다과를 할 수 있는데 VIP의 경우 무료로 커피도 제공된다. 초반 공연을 보면서 너무 열심히 졸았기 때문에 잠깐의 휴식이 아주 달콤하다. 뻑쩍지근한 몸을 푼다.

짧은 휴식을 마친 후 다시 공연을 보러 가는데 내부의 감시가 초반보다는 허술했다. 그러니까 자리를 이동해도 큰 문제가 없었다. 그렇다고 VIP석에 갈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고 클래스2에서 클래스1쪽으로 이동해서 볼 수 있는데 생각보다 가깝고, 정면이라 보기가 괜찮았다. 아무리 눈이 좋아도 너무 멀어 사람의 얼굴조차 구분하기 힘들었는데 여기에서는 조금 보였다. 당연한 소리일테지만 이래서 좋은 자리가 비싼 것이로구나!


공연은 막바지로 달하는데 신조차 죽일 수 없는 라바나를 신의 힘을 빌은 사람과 원숭이가 무찌른다는 내용이다. 라마의 주무기는 활인데 여기에서는 활을 쏴서 라바나를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원래 시타를 구출한 이후의 내용도 있지만 공연은 여기에서 끝이 난다. 사실 그 다음의 내용이라고 해봐야 시타의 정절을 의심하는 라마의 이야기라서 앞의 박진감(?)이 넘치는 진행을 이어갈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무대로 올라와 같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타임을 갖는다고 했다. 여태까지 너무 멀어 얼굴은 커녕 제대로 된 움직임도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가까이에 가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같이 사진을 찍는 것도 재미난 기념이다. 얼른 무대로 달려갔다.


가까이에서 보니 공연보다 더 재밌다고 느꼈다. 익살스러운 그들의 표정, 섬세한 의상과 분장, 그리고 바로 앞에서 보니 어떤 인물을 묘사했는지 대충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많은 관광객들이 이들과 사진을 찍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사람은 많고,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으니 돌아가면서 순식간에 사진을 찍곤 했는데 친절하게도 배우들이 적극적이었다.


나도 기회다 싶어서 사진을 찍었다. 그것도 마왕 라바나의 부하들과 라마의 충직한 장군인 하누만과 함께 말이다. 사진을 찍을 때 내 뒤에서 배우들이 인상을 쓰면서 포즈를 취해주는데 무척 재밌다.

모든 공연을 마친 후 이제 족자카르타로 돌아가야 했다. 막상 족자카르타로 돌아가는 시간이 돌아오자 어떻게 가야하나 걱정이 슬슬 되기 시작했는데 왜냐하면 이미 버스는 끊긴지 한참 오래 전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심정으로 거리쪽으로 걷고 있었는데 다행히 출구쪽에서 먼저 삐끼 아저씨가 접근했다. 족자로 돌아가는 밴에 자리가 세 자리가 남는데 타라고 말이다.

아저씨가 먼저 제시했던 가격은 3만 루피아였지만 흥정에 돌입하자 쉽게 2만 루피아로 깎였다. 밴을 타러 가려고 하자 아저씨는 돈을 미리 달라고 했다. 이유를 묻자 지금 밴에 타고 있는 관광객들은 전부 3만 루피아로 탔는데 너희들만 2만 루피아를 받으면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일리가 있기도 했고,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2만 루피아를 내고, 족자카르타 소스로위자얀까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무대가 너무 멀리 있어 동영상이 촬영이 쉽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사진 찍기에도 배터리가 부족해 라마야나 공연은 초반부와 마지막부분만 동영상으로 담았다. 중간에 화려하게 불을 붙이던 하누만을 동영상으로 담지 못해 무척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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