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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이 가시기도 전이었던 새벽 3시 반에 일어났다. 인도네시아 배낭여행을 하기 전부터 보로부두르와 더불어 가장 기대했던 브로모 화산을 오르기 위해서였다. 브로모 화산은 이른 아침부터 그것도 무려 새벽 4시부터 시작되었다. 우려와는 다르게 생각보다 나는 일찍 일어나 씻고, 남들보다 일찍 준비를 마쳤다. 이제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 새벽부터 게스트하우스 앞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이 사람들의 목적은 모자나 장갑 등을 팔기 위함이었다.


그랬다. 브로모는 정말 추워도 너무 추웠던 것이다. 전날 브로모 화산에 도착했을 때부터 엄습했던 추위는 인도네시아의 날씨라고 믿기 힘들 정도였다. 항상 반바지, 반팔에 쪼리를 신고 다녔는데 이날만큼은 긴바지에 겉옷까지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물건을 사달라는 사람들을 거절하려다가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고 해서 모자를 하나 구입했다.

잠시 후 게스트하우스 앞에 있었던 지프에 올라탔다. 마욤과 임마누엘도 역시 우리와 같은 지프였다. 아직 이른 새벽이라 주변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깜깜했는데 헤드라이트 불빛에 의해 간간히 마을이나 길이 보였다. 근데 정말 브로모 화산이 엄청나게 유명한 관광지인가 보다. 좁은 도로에는 브로모 화산을 보러 가는 수 많은 지프 행렬이 보이고, 간혹 걷는 여행자도 볼 수 있었다.


먼저 브로모 화산의 일출을 보기 위해 반대편의 산을 갔다. 한마디로 전망대라고 할 수 있다. 당연하지만 심하게 덜컹거렸던 지프를 타고 약 15분간 달렸던 것 같다. 지프가 정차했던 곳은 흙먼지가 가득한 등산로 아래였는데 이미 수많은 지프가 정차해 있었다. 이 장면만 봐도 브로모 화산을 보기 위해 찾아온 관광객이 얼마나 많은지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여기도 상당히 높은 위치라 조금만 올라가면 되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멀었다. 고작해야 잠깐 걷는 것이라고 만만하게 봤는데 이른 새벽부터 산을 걸으니 숨이 차기 시작했다. 뒤에서 사람들이 줄을 지어 가기 때문에 이거 어째 떠밀려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인터넷에서 본 이야기로는 올라갈 때 금방 도착하기 때문에 돈을 내고 말을 타는 것은 돈 낭비라고 했는데 나중에 타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도 여기는 그렇게까지 힘들지 않아 괜찮았다. 나중에 해가 뜬 후에 브로모 화산을 올라갈 때는 화산재에 발이 푹푹 빠져서 정말 말을 타고 싶었다.

아무튼 어두웠지만 간간히 보이는 불빛에 의지해 산을 올랐다. 한 발짝 한 발짝 걸으면서 뭔가 신비로운 브로모 화산을 보기 위한 사명감을 가진 여행자라는 느낌이었다. 좀 걷다 보니 숨이 거칠어졌다. 추운 날씨 탓에 숨을 쉴 때마다 입김이 나왔고, 들이 마실 때는 차가운 공기가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살그머니 땀이 흘러내렸다.

40분 정도 올랐나 보다. 힘들지 않은 척 올랐지만 더 멀었다면 브로모 화산을 보기도 전에 짜증을 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가득했던 작은 공터가 나타났는데 우리는 여기보다 조금 더 위로 올라갔다. 거의 길도 없었던 곳이지만 조금만 더 올라가야 더 멋진 일출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까지 올라오니 일출을 볼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이다. 해가 뜨지는 않아 아직 아무것도 볼 수는 없었지만 하늘은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다.


근데 우리가 바로 옆에는 이상한 물체가 보였다. 자세히 보니 침낭을 덮은 어느 사람이었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여기에서 자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이 사람은 언제부터 여기에서 자고 있었나? 이 추운 날에 설마 전날부터 있지는 않았겠지만 뭐, 아무튼 신기한 사람이었다.

“우와!”


날이 점차 밝아오면서 눈앞에 브로모 화산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커다란 분화구에 연기가 솟아있는 화산은 예쁘다, 멋있다라는 쉬운 말로 표현하기가 아까울 정도였다.


사진 찍기에는 조금 어두운 상황이었음에도 주변 사람들은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마욤과 임마누엘도 간간히 대화를 하면서 옆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기도 했다.


우리가 올라있는 이 산이 정말 높긴 높은지 아래에는 운해가 깔렸다. 아찔하게도 이 부근은 일부러 전부 90도로 깎은 것 같은 절벽이었다. 그나마 새벽에는 운해라도 깔려서 아래가 보이지 않았지 정말 까마득했다. 이런 산은 머털도사 만화에서나 나올 법했다.


브로모 화산의 일출은 정말 황홀했다. 마치 바다처럼 자욱하게 깔린 운해와 멀리 보이는 거대한 브로모 화산은 끊임없이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연기는 그냥 그대로 멈춰있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실제로는 저 화산이 언제 터질지도 몰라 무척 위협적이지만 여행자들은 그저 신기하고, 아름답다고 여겨졌다.


함께 브로모 화산을 올랐던 동료들과 사진을 찍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날이 완전히 밝아졌을 때는 정말 한 폭의 그림이 펼쳐졌다.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신비한 섬처럼 보였다.


이렇게 멋진 장면을 보면서 카메라를 놓을 수 있을까? 나는 쉬지 않고 셔터를 눌러댔다. 마욤과 임마누엘은 좀 일찍 내려갔지만 우리는 충분히 브로모 화산을 감상하고, 즐긴 후 아래로 내려갔다.


아래에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역시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차를 파는 노점이 형성되어 있었다. 허기진 사람을 위한 간단한 요기 거리도 있었다. 역시 아무리 오지의 작은 마을이라도 여행자가 몰리는 곳은 어떻게든 시장을 형성하기 마련이다. 여행사와 연계한 지프도 그렇고, 오르고 내려갈 때 타는 말이나 이런 노점이 그런 예다.


원래 바로 내려가려고 했는데 뭔가 아쉬웠다. 충분히 봤다고 하지만 자꾸 뒤를 돌아 브로모 화산의 사진을 찍었다. 그러고 있을 때 갑자기 재미있는 장면이 연출됐다. 수 많은 사람들이 왠 단체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어쩌다가 나도 이 무리에 끼어 들게 되었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앉았는데 전날 요시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던 슬로베니아 사람이 나를 알아보더니 내 카메라를 받아 사진을 찍어줬다.


단체로 사진을 찍고 난 후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우연히 뒤에 있던 사람 사진을 찍어주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한국에서도 꽤 지내서 한국말도 할 줄 알았다. 능숙하지는 않아도 충분히 대화가 가능한 수준이라 좀 놀랐다.


내가 찍어줬던 사진이 마음에 들었는지 갖고 싶다고 해서 이메일 주소를 적어달라고 했다. 그리고 나와 같이 사진을 찍었다. 아직 한국에서 만나지는 않았지만 최근 미국에서 다시 한국에 올 계획이라는 연락을 받아서 그런지 언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주변에 다른 몇 명의 친구가 더 있었는데 더 한국말을 잘해서 깜짝 놀랐다. 산을 내려오면서 외국인들과 한국말로 대화하니까 무척 신기했다.


이제 연기가 솟아오르는 브로모 화산을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서둘러 내려갔다. 화산 활동이 있는 산이기 때문에 간혹 브로모 화산이 통제되기도 하는데 운이 좋은지 내가 갔을 때는 올라갈 수 있었다.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추위는 서서히 물러가고, 살짝 따스한 기운이 느껴졌다. 내려갈 때의 발걸음은 가볍고, 빨랐지만 흙먼지를 계속 들이켜야 했다. 그리고 주변에 떨어진 말똥을 잘 피해야 했다.


서서히 운해가 물러가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신기했던 주변의 지형이었다.


새벽에는 워낙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날이 밝으니 정말 많은 말이 보였다. 이 주변에 사람이 이렇게 많이 살고, 이렇게 많이 말을 많이 키우나 싶을 정도였다. 어쩌면 하루에 한 명이라도 탄다면 이들에게는 삶을 유지할 수입원일지도 모른다. 다만 너무 경쟁이 심해 장사가 될까 모르겠다.


산을 내려오고 나서도 화산의 여운이 가시지 않을 만큼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제 그 브로모 화산을 올라간다는 사실에 한껏 흥분되었다. 브로모의 정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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