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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바 호수에서는 감히 이렇게 여행을 하라고 권하고 싶다. 아니, 이래야만 한다. 최대한 잉여롭게. 그게 바로 또바 호수를 여행하는 방법이다. 별다른 일이 없어도 빈둥빈둥 돌아다니고, 그렇다고 딱히 할 일도 없는 일정, 어쩌면 생산적인 일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그런 잉여로운 여행 말이다.

아마 시간에 쫓겨 여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또바 호수만큼 지루한 곳은 없을 테다. 난 그걸 뒤늦게 깨달았다.


무시무시한 돌의자를 보고 난 후 오토바이를 타고 동네를 돌았다. 수마트라에서 가장 유명한 지역이지만 아직까지도 때 묻지 않은 곳이라 마음에 들었다.


숙소로 돌아와 광호와 함께 초콜릿으로 범벅이 된 과일을 먹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사모시르 섬을 한 바퀴 돌아본 나로서는 딱히 다른 일정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니, 다른 무엇도 하고 싶지 않았다는 게 맞다.


리베르타 홈스테이 카운터 옆에 있던 지도의 축척만 제대로 봤다면 함부로 섬을 한 바퀴 돌자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거다.


여기선 다른 여행자들도 별 다를 게 없다. 하루 종일 앉아 책을 보거나 가끔은 동네 산책을 나가는 식의 일과가 전부다.


리베르타 홈스테이에는 강아지가 2마리 있는데 항상 식당 주변을 기웃거렸다. 순박하게 생긴 하얀 강아지가 식당에서 식빵을 얻어왔는지 구석에서 뜯고 있었다.


좀 쉬다가 오토바이를 타고 뚝뚝의 중심가라고 할 수 있는 곳으로 나갔다. 언덕을 몇 개 넘으면 사모시르 코티지 근처에 식당과 기념품 가게가 많은데 사실상 여기가 중심지라 할 수 있다. 중심지라고 했지만 사실 여행자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내가 여행을 했을 당시가 비수기였는지 아니면 원래 분위기가 이런지는 모르겠다.


기념품 가게에 들러 살만한 게 있는지 구경했는데 딱히 눈에 들어오는 건 없었다.


허름한 기념품 가게와 식당이 몇 군데 있지만 참 한적했다.


기념으로 삼기엔 엽서가 너무 오래돼서 팔기도 힘들 것 같다. 이미 색이 바래진지 한참 된 모양이다.


살만한 기념품을 찾으러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녔다. 간단하게 기념이 될 만한 또바 자석을 사려고 했는데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몇 군데의 기념품 가게를 돌아다니다가 결국 포기하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꽤 괜찮은 분위기의 식당이 모여 있는데 우리는 연기와 냄새로 동네를 가득 메운 바베큐집을 선택했다. 고기 굽는 냄새에 이끌려 들어갔는데 그냥 바베큐가 아니라 무려 돼지고기다. 인도네시아에서 돼지고기라니. 평소 가장 자주 먹는 게 돼지고기지만 대다수가 이슬람을 믿는 인도네시아에서는 가장 보기 힘든 고기다.


기대를 안고 먹은 바베큐 맛은 보통이었다. 매운 소스에 찍어 먹는 특이함은 있지만, 아주 맛있다거나 양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바거스베이 홈스테이로 돌아와 이번엔 맥주와 함께 치킨을 먹었다. 또바 호수에서의 마지막 밤이라도 그냥 하루 일과가 별 거 없다. 낮잠 자다가 동네 구경하고, 저녁에 심심하면 맥주를 마시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또바 호수에서 보낸 잉여로운 시간이 그리울 것 같다. 먹고, 자고, 쉬고, 평소에는 느끼지 못한 ‘여유’가 있던 순간이니까. 또바 호수를 여행하는 방법, 그건 좀 더 잉여스럽게 지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