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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사람은 언제 어디서 누구와 만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착하게 살아야 한다. 여행을 떠나기 불과 며칠 전에 연락이 닿아 모스크바에서 만난 이 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나의 길지도, 많지도 않은 사회생활 중 전전전 회사의 선배였다. 여행을 떠난다는 사실을 알고는 모스크바에 오면 꼭 연락하라고 했는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 잘 됐다는 생각으로 바로 연락했다. 잠깐 거쳐 가는 여행자로써 현지에 살고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건 행운(꼭 밥을 사준다고 해서 좋아했던 건 아니었...)이었다.

모스크바에 도착한 날은 무려 7일간의 이동을 끝마치고 난 뒤라 너무나 피곤했고, 아직 도시 적응도 덜 되었기 때문에 우린 다음날 키예프스카야역 근처에서 만났다. 여행 초반이긴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다연 선배, 그리고 한국인이라 정말 반가웠다.


며칠 내로 이동할 나라가 조지아였는데 우리가 간 곳은 ‘하차푸리’라는 조지아 레스토랑이었다. 당시엔 이름도 몰랐고, 하차푸리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는데, 조지아에 도착하니 빵 위에 치즈와 계란을 얹어서 먹는 조지아의 대표적인 음식 이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7일간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라면과 빵으로 끼니를 때운 나에게 맛있는 점심을 하사해 주셨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아르바트 거리를 돌아봤다. 모스크바 중심부에 있어도, 난 아예 몰랐던 곳인데 거리 구경하면서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니까 나름 편안하게 여행했다. 그렇지 않았으면 내가 어떻게 푸시킨을 알고, 빅토르 초이의 벽화가 여기 있는 걸 알았을까?


유모차와 함께 하는 거리를 걷는 것도 나에겐 색다른 경험이었다고 할까.


우린 그 다음날에도 만났다. 아마 혼자 여행 중이라면 절대 가볼 일이 없는 모스크바의 어느 일식집에서 초밥을 먹게 되었다. 언제 또 먹어보겠냐며 하나도 남김없이 깨끗이 비웠다. 


잠깐 남는 시간을 활용해 그리스도 대성당 구경을 했다. 원래는 노보데비치수도원을 가려고 했으나 시간이 없어, 그냥 어딘지도 모르고 따라갔다. 바실리 성당처럼 알록달록하진 않지만 역시 양파 모양의 독특한 외형을 볼 수 있는 곳이고, 모스크바의 도시 전경을 볼 수 있다.


저녁엔 집으로 가서 정말 오랜만에(사실 집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주 오랜만이라고 하긴 민망하지만) 쌀밥을 먹었다. 직접 만들어 준 닭볶음탕과 쌀밥을 먹으니 진짜 밥 먹은 느낌이 났다.


다연 선배는 모스크바에 살게 된지 몇 달 되지 않았지만,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 추운 날에 유모차 끌고 돌아다니기도 힘들 텐데 한국에서 온 후배 밥 사주고, 거리를 같이 돌아다니고, 심지어 아제르바이잔으로 이동하는 열차에서 먹으라고 여러 가지 챙겨줬다.

사실 직장 선배라고는 하지만 함께 했던 시간이 많지도 않았다. 고작 3개월만 일하다가 때려 친 곳이라 추억도 많지 않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만난 친한 동생처럼 대해줘서 모스크바 여행이 훨씬 값지고, 즐거웠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다연 선배, 아니 다연 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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