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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쿠라에 도착을 하기는 했지만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할지 몰랐다. 미야자키행 야간열차는 12시에 출발하기 때문에 엄청나게 시간이 남아 도는 상황이었는데 그렇다면 남는 시간동안 키타큐슈를 여유있게 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대충 계산을 해보니 저녁 때 모지코를 갔다와도 될 것 같았다. 

사실 이 주변은 관광지로 매력이 넘치는 곳은 아니었다. 가이드북에서도 그리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소개를 하지도 않았는데 그나마 고쿠라에서 볼만한 것은 고쿠라성 주변인듯 했다. 어차피 시간도 널럴하니 고쿠라 시내를 걷다가 고쿠라성을 구경하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도 아니었는데 도시는 지나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을 정도로 너무 조용해 보였다. 원래도 고쿠라를 돌아다니자는 생각이기는 했지만 예상보다 도시가 너무 심심해 보여서 바로 고쿠라성을 찾아가기로 했다. 문득 내가 걷는 이 방향이 고쿠라성으로 가는 길이 맞는지 의심스러워 지도를 꺼냈다. 지도를 펼치자마자 내가 가고 있었던 길이 고쿠라 성과 전혀 반대 방향이라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재빨리 지도를 살펴보면서 큰도로가 있는 쪽으로 돌아갔다. 


반대방향으로 돌아가니 확실히 고쿠라의 중심지로 보이는 곳이 나타났다.   


주말이라 그런지 여전히 도시는 조용했다. 조금 걷다보니 정말 친절하게도 거리에 지도가 있었다. 어차피 나도 지도를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이 지도를 살펴보니 고쿠라성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이 지도는 영어는 물론 한글로도 표기가 되어 있어서 한국인인 나에게는 더욱 쉽게 알아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물론 키타큐슈가 한국과 가까운 지역이기는 하지만 여기에서도 한글을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은 매우 놀라웠다. 


사람들이 갑자기 많아졌다. 모르긴 몰라도 여기가 바로 고쿠라의 중심 상권인 것처럼 보였다. 이왕 가는거 쇼핑센터를 지나쳐 가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아서 쇼핑센터가 밀집한 방향으로 갔다. 그런데 멀리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었고, 그 방향에는 노래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곧바로 거리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나도 구경하기 위해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어차피 고쿠라성만 보기에는 시간도 남아도는데 마침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어서 처음에는 뒤에서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없었다. 키로 보나 앳띤 얼굴로 보나 멀리서 봐도 단번에 어린 아이들임을 알 수 있었는데 춤은 무지하게 열심히 추고 있었다. 게다가 어린 아이 4명이 딱 맞는 동작에 수준급 댄스를 선보이는데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켜보는 사람들도 연신 박수세례가 쏟아졌다. 


그런데 내가 막 도착했을 때는 마지막 공연이었는지 간단한 인터뷰를 하고 끝이 났다. 멋진 모습을 카메라에 담지 못해서 마냥 아쉽기만 했는데 다행히 이 길거리 공연은 끝나지 않았다. 

배낭여행의 즐거움이라면 언제든 원하는 때에 멈춰설 수 있다는 점이다. 나 역시 이런 재미있는 구경거리에 고쿠라성은 잊어버린채 바닥에 주저앉아 사진을 찍으며 관람하기 시작했다. 어린 아이들의 댄스타임이 끝나고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의 공연이 이어졌다. 일본어를 전혀 못했기 때문에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는 못해도 음악을 듣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준비한 흥겨운 공연이 시작되었다. 


가만히 지켜만 봐도 저절로 흥이나고 즐거웠다. 비록 그들의 실력이 대단하지 않을지라도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이 즐겁고 나도 즐거워 기분이 좋아졌다. 실제로 내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뜨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는데 어린 아이부터 할머니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이 함께하고 있어 특히 인상적이었다. 


아까 마이크를 잡고 춤을 추던 아이들을 인터뷰했던 소녀도 노래를 불렀다. 사회만 보는 줄 알았는데 오늘 무대에 서는 보컬이였던 것이다. 


이 친구는 가장 많이 노래를 불렀는데 중간에는 우스꽝스러운 안경과 머리핀을 꼽고 등장해서 깜짝 놀랐다. 처음 노래를 불렀을 때는 가장 수줍음을 많이 타는 것처럼 보였는데 나중에 나왔을 때는 이상한 행동을 마다하지 않고 선보이는 의외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이 고등학교는 보컬을 얼굴로 뽑나보다. 여자 보컬들이 다 수준급 미모를 자랑해서 그동안 일본의 여자들이 다 이렇게 예뻤는지 기억을 더듬기도 했다. 이 소녀가 부른 노래는 나도 익숙한 노래였는데 정확히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려다가 말을 해도 일본어라서 못 알아들을거 같아서 그만뒀다. 

그대신 중학생으로 보기엔 조금 나이가 있는 것 같아서 옆에서 관람하고 있는 여자분에게 슬쩍 물어봤다. 이 아이들은고등학생이라고 대답을 해줬는데 나는 다시 키타큐슈 고등학교 학생들이냐고 물어보니 맞다고 했다. 그러니까 주말을 이용해서 키타큐슈 고등학교 학생들이 공연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맨 앞에서 쭈그려 앉아 사진을 찍느라 다리가 무진장 아팠지만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아마 고등학생들이라고 해서 실력이 형편없었다면 내 발길을 붙잡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쉽게 뜨지 않고 계속 고등학생들의 공연을 보는 것은 물론 호응도 역시 매우 높았다. 


멀리서 집채만한 강아지도 신이 났는지 아저씨에게 달려들었다. 


고쿠라 시내 한복판이라는 무대 위에 관객은 만원이었던 공연은 잠깐 스쳐지나가는 여행자에게도 매우 즐거웠다. 원래 목적이었던 고쿠라성은 잊고 무려 1시간 동안 관람을 했을 정도였는데 아마 이들의 공연이 계속되었다면 더 있었을지도 몰랐다. 고등학생들의 공연이 끝나고 대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무대를 준비할 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으니까 말이다. 키타큐슈 고등학생의 멋지고 즐거웠던 공연관람을 마치고 나는 천천히 고쿠라성이 있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