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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그 이상했던 숙소도 하루가 지나니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침대가 넓으니까 이란 남자와 침대를 같이 써도 괜찮다고 웃으며 말할 땐 황당하기만 했는데 주인장 미카일도 생각보다 훨씬 친근했다. 그렇다고 배낭여행자에게 마냥 추천해주긴 참 뭐한 곳이다.

침대 6개만 있는 작은 숙소엔 독일인 1명, 헝가리인 1명, 중국인 1명, 에콰도르인 1명, 폴란드인 2명이 머물고 있었다. 독일인 필립과 헝가리인 커팅카와는 조금 친해졌을 뿐, 딱히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지냈던 건 아니다.

오전에는 국경에서 통역해줬던 루스란과 만나기로 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허탕만 쳤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연락이 되던 사이인데 그 이후로는 연락이 되질 않는다.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 못 나온 건지,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해서 그런 건지. 좋은 만남이 그대로 이어진다면 좋겠건만,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그렇게까지 원망하지 않았다.


바쿠 올드 시티까지 걸어서 돌아왔다. 이미그레이션 센터를 가보려 했으나 바쿠 시내와는 상당히 멀어 택시를 타면 30마나트 이상 든다는 소리를 듣고 접었다.

아제르바이잔에서는 항상 비자 문제가 걸렸다. 입국한 이후에도 3일짜리 비자 때문에 혹시 기차를 타게 되면 국경에서 날짜를 넘겨 문제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그리고 그런 걱정은 안 하더라도 일단 3일 체류는 너무 짧았다. 아제르바이잔이 좋건, 싫건 더 머물고 싶었다.

그래서 이미그레이션 센터를 가느니, 외교부를 가느니, 여행사와 연락을 해보는 식으로 비자 연장을 시도했던 것인데 어느 하나 성공한 건 없다. 아제르바이잔에서는 내가 더 머물고 싶어도 방법이 없었다.

숙소로 돌아와 좀 쉬다가 주인장 미카일과 좀 얘기를 해보다가 결국 3일 내에 떠나기로 결심했다. 미카일은 출국한 후 자신에게 연락하면 싸게 비자를 발급해 줄 수 있다고 했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아제르바이잔을 여행하고 싶진 않았다.


오후엔 트빌리시행 기차를 예매하기 위해 역으로 갔다. 역으로 가는 방법은 지하철을 타고 가면 간단한데, 지하철 입구에서 카드가 없어 다른 사람에게 돈을 주고 대신 찍어줘야 했다.


처음으로 타보는 바쿠 지하철인데 모스크바 지하철과 매우 비슷했다. 들어갈 때 카드로 찍고 나갈 때는 그냥 나가는 것도 그렇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깊은 터널을 내려가야 하는 것도 매우 비슷했다. 아무래도 캅카스(코카서스) 지역이 소련과 연관이 깊은 곳이니 당연한 것일까.


지하철도, 차량 내부도 비슷했지만, 러시아보다 더 낡아 보였다.


바쿠의 지하철은 노선이 2개라 타는데 크게 어렵진 않다.


바쿠에 처음 도착했을 땐 미처 몰랐는데 지하철역과 바쿠 기차역은 상당히 가까웠다. 지하철 출구에서 나와 바로 왼쪽으로 가면 기차역 1층으로 갈 수 있다.


바쿠역 내로 들어가면 낡아 보이는 창구와 복도가 보인다. 다른 나라의 경우 보통 기차역은 사람들로 붐비기 마련인데 바쿠는 예외였다. 오후임에도 상당히 조용한 역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일단 창구로 가서 트빌리시행 기차표를 사고 싶다고 하니, 나에게 거의 호통을 치면서 통역하는 사람을 데리고 오라는 거다. 역 내에는 통역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데 마침 내가 갔을 때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신경질을 부릴 필요는 없지 않나. 황당하기도 하고, 우물쭈물하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도와 달라고 했다.


다행히 이 사람이 통역을 해줘서 기차표를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트빌리시행 야간 기차표의 가격은 29마나트였다.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나에게 대뜸 페이스북 아이디를 알려 달라고 했다.


우린 밖으로 나가 사진을 함께 찍었다. 악수를 하면서 몇 마디를 나눴는데 내가 조지아 다음으로 아르메니아를 여행할 계획이라고 말하니 이 친구가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이런 말을 했다.

“조심해, 아르메니아 사람은 믿으면 안 돼.”

양국 감정의 깊은 골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저는 지금 세계여행 중에 있습니다. 이 글이 마음에 든다면 다양한 방법으로 도움 및 응원을 해주실 수 있습니다. 작은 도움이 현지에서 글을 쓰는데 큰 힘이 됩니다. 세계를 여행하고 있는 배낭여행자에게 커피 한 잔 사주시겠습니까?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