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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창밖으로 계속해서 이어지던 사막이 저녁이 되자 갑자기 거대한 도시로 바뀌었다. 페루의 수도 리마에 대해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으나 확실히 기존에 지나온 곳과 확연히 다른 대도시라고 생각했다. 버스터미널에 내린 후 택시를 타고 한인민박으로 향했다. 보통 한인이 운영하는 숙소를 가지 않지만 어쩌면 택배를 받아야 할 수도 있기에 조금 편한 곳으로 선택했다. 숙소는 리마의 신도시라 할 수 있는 미라플로레스(Miraflores)에 있었다.


리마가 대도시이고 처음 도착한 낯선 곳이라 걱정을 했는데 미라플로레스는 깨끗하고 넓어 서울의 어느 대로를 걷는 줄 알았다. 심지어 늦은 밤이었는데도 말이다. 볼리비아와 페루를 지나면서 무너질 것만 같은 집만 보다 멀쩡한 건물을 보니 완전히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았다.


리마에서 오래 지낼지도 모른다는 생각하니 첫날부터 늘어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숙소에서 여러 여행자를 만나 같이 돌아다닐 기회가 저절로 생겼다. 미라플로레스에서 걷기도 하고, 오랜만에 한식당에 가서 김치찌개도 먹었다.


하루는 숙소에서 만난 한별이형과 동갑내기 미진이랑 구 시가지(Centro Histórico)를 같이 가기로 했다. 내가 지나온 작은 도시들은 대게 중심부에 아르마스광장(Plaza de Armas)이라고 하는 큰 광장이 있고, 여행자들이 머무는 거리 근처에 있었다. 그에 반해 리마는 워낙 큰 도시라 올드타운, 그러니까 구 시가지가 우리가 있던 미라플로레스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다. 메트로폴리타노라는 BRT를 타고 무려 1시간이나 걸렸다.


리마도 역시 끔찍한 교통난을 겪고 있는지 콩나물시루처럼 빼곡한 사람들 틈에 끼어서 갔다. 1시간 동안 매달려 메트로폴리타노를 타는 것으로도 피로감이 느껴졌다. 구 시가지에 도착한 후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을 때 가장 반가웠던 건 상쾌한 공기였다.


구 시가지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아르마스 광장(마요르 광장으로도 불린다)으로 향했다.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아르마스 광장에는 중요한 건물이나 큰 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역시 리마 대성당이다. 성당으로 가는 계단 위에서 사진을 찍고 있을 때 어느 아저씨는 우리를 보더니 웃으며 반갑다고 인사를 건넸다. 성당 내부를 들어가는 건 입장료가 있어 당연하게도 지나쳤다.


넓은 광장 중앙에는 원래 스페인의 침략자 피사로의 동상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허물고 잉카를 상징하는 콘도르나 퓨마가 물을 뿜고 있는 작은 분수가 있다. 


광장의 정면에는 대통령궁이 있다. 시간을 잘 맞춰 가면 대통령궁 경비원들의 교대식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사실 경비원들의 교대식이 있는 줄도 몰랐지만 만약 알았더라도 딱히 시간에 맞춰 올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 같다.


구 시가지는 스페인 식민시대의 건물이 다수 남아있다. 원래 리마는 잉카의 해안 마을에 불과했다. 잉카를 침략하고 정복한 피사로가 본국인 스페인과 연락 및 무역을 위해 세운 도시가 바로 리마다. 


잉카제국의 도시는 대부분 안데스 산맥에 위치하고 있어 더 발전하기 어려운 반면, 리마는 해안이라는 이점을 바탕으로 페루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로 더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인구 800만 명이 넘는 남미에서 손꼽히는 대도시다. 


구 시가지의 문에는 하얀 점선으로 표시를 했는데 이는 이곳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자료라고 한다. 오래된 집이니 계속해서 덧칠을 하고, 또 덧칠을 해서 여러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구 시가지 주변을 이곳저곳 둘러봤다. 차가 다니지 않는 널찍한 골목길을 걷어보고 어느 이름 모를 작은 도서관에 들어가기도 했다. 음침하고 복잡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여행자를 반기는 구 시가지의 매력이다. 우연히 볼리비아 데스로드 투어를 같이 했던 네덜란드 커플을 만났다. 비슷한 루트로 여행하다 보면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길에서 우연히 만나면 반가울 수밖에 없다. 얼떨결에 안부 인사를 하고 헤어졌는데 생각해 보니 그들의 이름도 몰랐다.   


잠깐의 휴식은 달콤하다. 카페 야외 테이블에 걸터앉아 카푸치노를 한 모금 마시고, 주변을 살폈다. 세련된 카페에 외국인 손님이 앉아 있는 모습은 이곳에서 그리 눈에 띄는 풍경은 아니었다.


리마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분수공원(Parque de la Reserva)이 있다. 구 시가지에서 조금 떨어져 있긴 하지만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분수공원 근처는 굉장히 어두컴컴했다. 근처에 축구 경기장이 있는데도 조명은 별로 없고, 입구는 잘 보이지 않았다. 분위기를 대변하듯 마침 지나가던 사람은 우리에게 조심하라는 말을 전했다. 실제로 많은 여행자들이 이곳을 찾을 때는 택시를 추천한다. 잠깐 더 걸으니 알록달록한 화단과 조명이 반전을 만들어냈다. 분수공원 근처는 이렇게나 화려하고 밝았다. 입장료는 고작 4솔로 약 1,200원 정도였다.


분수공원을 들어가자마자 거대한 물기둥이 우리를 반겼다. 물론 저녁에도 시원한 분수를 볼 수 있지만, 아무래도 조명과 함께 어우러지는 분수쇼는 밤에만 가능하기 때문에 어두워진 뒤에 오는 편이 좋다.


막상 들어와 보니 공원의 규모에 놀랐다. 총 13개의 분수가 각기 다른 모양의 물줄기를 뿜어내고 있는데 실제로 리마의 분수공원은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커서 기네스북에도 등재되었다고 한다.


가족 단위로 나온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며 구경하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물줄기가 여기저기서 뿜어져 나온다. 큰 기대를 했던 곳은 아닌데 생각했던 것보다 볼거리가 정말 많았다.


입구 근처에 있는 이 분수가 가장 높이 올라가는 듯 하다. 언뜻 봐도 10m 이상 올라가는 것 같다.


우리는 중앙에 있는 분수대 앞에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미리 중앙에 있는 분수대에서는 저녁 7시 15분, 8시 15분, 9시 30분에 분수쇼를 한다고 들었다. 


알록달록 분수가 올랐다가 시간이 되자 분수의 물줄기를 스크린으로 삼아 영상과 레이저를 쏘기 시작했다. 번쩍이며 순식간에 지나가지만 주로 페루의 역사나 문화를 아름답고 입체감 있게 보여줬다. 화려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였다.


분수쇼를 보고 난 후 다시 다른 분수대를 향해 이동했다. 여러 개의 층을 이루며 솟아 오르는 분수가 인상적이었다.


분수공원은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다리 아래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가면 작은 또 하나의 공원이 나오는데 여기에도 여러 모양의 분수가 있다.


가장 인기가 많았던 분수. 사람들은 분수 아래에서 걷고, 사진을 찍고 즐거워했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촬영하는 커플도 보였다.


입장료가 4솔이 아니라 20솔이었어도 전혀 아깝지 않았을 공원이었다. 다양한 종류의 분수가 있어 볼거리도 풍부했다.


며칠 뒤 한별이형과 다시 구 시가지로 나왔다. 남미를 여행하다 보면 도시 전체를 내려다 보는 전망대를 쉽게 찾을 수 있는데 대부분 '산크리스토발'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리마도 마찬가지다. 다만 리마의 산크리스토발은 걸어서는 가기 어렵고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버스표는 아르마스 광장에서 안내판을 들고 있던 아주머니로부터 구입했다.


산크리스토발로 가는 버스는 다른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티투어버스와 비슷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주변 경치를 감상하거나 사진 찍기 좋다.


구 시가지에서도 저 멀리 산크리스토발이 보인다.


산크리스토발에에 올라 가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2층 버스 위에서 보는 구 시가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구 시가지를 여러 번 돌더니 이제 도심 밖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구 시가지를 벗어났을 뿐인데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얼기설기 대충 지어진 집들이 빼곡했다. 벽돌과 슬레이트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한눈에 봐도 빈민촌임을 느낄 수 있었다. 남미 대부분의 나라가 마찬가지지만 리마 역시 극심한 빈부격차가 존재한다. 돈을 벌기 위해 리마로 몰려든 사람들은 점점 불어나 800만(통계에 따라 1,000만이 넘기도 한다)이 넘는 대도시가 되었으니 잘 사는 지역과 못 사는 지역이 극명하게 나뉘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그런데 시에서는 빈민촌의 사람들과 섞이는 것이 싫었는지 아예 구역을 나누는 벽을 세웠다. 때문에 같은 리마에 살고 있는 사람도 벽 너머로 가려면 한참 돌아 가야 한다. 누구는 돈이 있고 없음으로 사람을 갈라 놓은 이 벽을 가리켜 '수치의 벽'이라고 부른다.


여기선 오토바이를 개조해서 만든 뚝뚝이 일반적인 대중교통인가 보다.


본격적으로 좁은 도로를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산크리스토발 아래 어지럽게 늘어선 전선과 벽돌 사이로 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지난다. 


구불구불 이어진 좁은 도로를 달리는 버스는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는 듯 했다. 2층 버스 위에 있으니 더 아찔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산크리스토발 정상이 보였다. 다른 도시의 산크리스토발에는 보통 예수상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는 커다란 십자가가 있었다.


정상에 도착한 후에는 버스에 내려 잠깐의 시간을 준다. 볼거리가 많지는 않지만 리마를 내려다 볼 수 있다.


안타깝게도 리마의 하늘은 회색빛이었다. 날씨가 안 좋아서인지 아니면 스모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빌딩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연 전경이었다. 


반대쪽도 볼 수 있는데 이쪽 방향은 하늘이 깨끗했다. 


산크리스토발에 올라 리마 시내를 여유롭게 구경하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그보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었다. 비록 세계일주를 하고 있는 중이었지만 가만히 변화를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어 페루에서 이렇게 참여를 했다. 나 역시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었다. 


결국 리마에서 택배를 받지 못하고 어영부영 시간만 보내게 됐다. 장기 여행을 하다 보면 이렇게 허무하게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할지, 여행은 어떻게 해야 할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때였다. 


하루는 한별이형과 리마 외곽에 있는 파차카막 발물관(Museo de Pachacamac)을 가보기로 했다. 사실 난 아예 모르고 있었는데 한별이형이 리마에서 가볼 만한 박물관이라고 꼬셔서 얼떨결에 따라가게 되었다. 파차카막 박물관은 리마에서 약 30km 떨어진 곳에 있기 때문에 대중교통으로 가려면 여러 번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완전한 사막이었다. 리마 시내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문명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황량함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곳에는 과거 문명이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파차카막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당시에 사용했던 유물을 관람할 수 있다. 전시관은 그리 크지 않다.


우스꽝스러운 가면이 있다.


전시관을 나서면 복원된 것으로 보이는 유적지가 보인다.


흔히 페루하면 잉카의 유적지만 떠올리는데 당연히 여러 문명이 존재했다. 파차카막 역시 잉카와는 별개의 문명으로 1,300년간 존재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잉카인들은 이곳을 신성한 곳이라 여겨 태양신을 섬기는 피마미드를 세웠다.


유적지는 굉장히 넓다. 하지만 유적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어 어떤 곳인지 알 수 없다.


거대한 피라미드를 향해 올라갔다. 이렇게 건조한 땅 위에 1,300년 동안 문명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아쉽게도 내부로 출입은 금지되어 있다. 주변을 크게 한 바퀴 돌아볼 수만 있다.


태평양으로 향하는 바다가 보인다. 바다가 이렇게 가깝다.


작은 길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되는데 표지판도 없고, 날씨는 더워 지친다. 따가운 햇빛을 가려줄 어떤 공간도 없다. 


내가 피스코에서 봤던 탐보콜로라도와 비슷한 형식인지 피라미드는 흙벽돌로 만들어졌다. 허물어진 벽면이 세월의 흔적을 대신 말해준다. 


피라미드 정상에서는 황량한 사막과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유적지는 굉장히 거대하지만 역사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는지 정확히 모른다. 복구가 많이 필요해 보인다. 


진흙을 구워 만든 벽돌을 촘촘히 쌓아 올려 만들었다. 파차카막에서는 이런 흙벽돌이 5천만 개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멀리서 보였던 마을은 경계선이 분명했다. 보통 마을은 어느 지점이 끝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계속 이어지곤 하는데 여기는 케이크를 자른 단면처럼 너무 정확하게 경계선이 있었다.


사실 난 뙤약볕에서 봤던 서로 비슷했던 파차카막 유적보다 나가기 직전에 본 야마에 더 관심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리마에서 머무는 동안 놀라운 일이 있었다.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을 보고 자신도 지금 리마에 있다고 당장 만나자는 친구가 있었으니 캐나다인 마이키였다. 마이키는 여행 8개월 차에 코소보에서 아주 잠깐, 정말 딱 하루 만나고 헤어졌던 여행자였다. 나는 중동과 아프리카, 마이키는 유럽과 북미를 여행하다 남미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었다. 서로 연락도 없이 여행하다 우연히 같은 나라, 같은 도시에서 만나게 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


밖으로 나가 마이키와 맥주라도 한 잔 할까 생각했는데 숙소에서 초대해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해서 불렀다. 다시 만난 마이키는 나를 보자 정말 반가워했다. 코소보에서 몇 날 며칠을 여행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여행은 인연을 더욱 끈끈하게 만들어준다. 마이키는 캐나다인이었지만 어머니가 한국 사람이라 매콤한 부대찌개도 잘 먹었다. 우리는 맥주를 계속해서 마시며 쉴 새 없는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리마 구 시가지와 완전히 다른 분위기인 미라플로레스는 걷기 무척 좋은 지역이다. 해안을 따라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고, 깨끗한 데다가 공원도 몇 개 있다. 


뭔가 어울리지 않지만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


세련된 고층 빌딩과 쇼핑몰, 절벽 아래는 도로가 길게 이어져 있다.  


걷다가 바다를 내려다 봤을 때 새까만 무언가 둥둥 떠다니길래 처음에는 물개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전부 서핑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해안을 따라 계속 걷다 보면 사랑의공원이 나온다. 이름만이 아닌 듯 유난히 이곳에는 커플이 많았다.


사진을 찍으며 공원을 둘러보고 있을 때 마침 사랑 고백하는 이벤트가 바로 앞에서 벌어졌다. 분위기로는 청혼인 것 같았다.


여행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일몰을 봤는지 모르겠지만 해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모습은 언제 봐도 신비롭다. 감상에 빠지기 딱 좋은 시간이다.


숙소에서 키우고 있던 작은 고양이의 이름은 '꾸이'였다. 꾸이는 페루에서 즐겨 먹는 기니피그 요리인데 귀여운 고양이에게 붙이면 이상할 법한 이름이지만 이상하게 잘 어울렸다.


여행은 800일이 넘어가고 있었다.


숙소에서 만났던 다른 한국인 여행자 충희, 그리고 이제 막 도착해 정신이 없었던 혜영, 혜민이와 함께 마이키를 만나러 바랑코(Barranco)에 갔다. 바랑코는 미라플로에서의 남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저렴한 숙소가 꽤 있어 이곳 역시 배낭여행자가 찾아 온다. 미라플로레스에서 그리 멀지 않다고 생각돼 걸어갔다. 


우리는 페루식 염통꼬치인 안티쿠쵸를 먹어보기로 했다. 일단 어두워지기 전 바랑코를 한 바퀴 돌아봤다. 확실히 깨끗하고 현대적이었던 미라플로레스와 비교해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오래된 건물이 많이 보이고, 벽면에는 흥미로운 벽화가 가득했다.


오늘도 일몰을 보기 위해 바다로 나갔다. 육교를 건넌 후 모래사장에서 해가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다시 지평선을 붉게 물들였다. 어제보다 더 아름다운 일몰이었다.


드디어 안티쿠쵸 만났다. 안티쿠쵸는 소의 염통(심장)으로 만드는데 흔하게 볼 수 있는 요리라고 한다. 그런데 페루를 여행하는 동안 세비체나 치파(페루식 중국 요리)는 무수히 많이 먹었어도 안티쿠쵸를 먹을 기회는 없었다. 마침 바랑코에 안티쿠쵸를 파는 전문 식당이 몇 군데 있다고 들어 같이 가보게 된 것이다. 맛은 기대했던 정도는 아닌 것 같다. 


갑자기 만나게 된 여러 사람들과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이렇게 여러 사람들과 어울린 것도 쿠스코 이후 오랜만인 것 같다.